[이상호의 경제서평] 성장이냐 침체냐, 기로의 2003년


■ seri 2003
(홍순영 외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이 책을 접하면 떠오르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벌써 한 해가 갔구나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년에는 우리 살림살이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에 관한 것이다. 특히 새로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 궁금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 책은 일단 이 같은 의문을 풀어주는데 적격이다. 세상이 워낙 빨리 변하다 보니 경제 전망이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믿거나 말거나 식이지만 그래도 앞날을 미리 그려보기 위해서는 준거의 틀이 필요하고, 이 책은 그 참고 자료의 하나로 활용할 수 있다.

‘2003년은 우리 경제가 최근의 성장 추세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2001년의 침체 상황으로 회귀할 것인지 분기점이 되는 해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2003년을 예측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불확실한 미래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2003년의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 책을 출간하는 이유다’라고 저자들은 밝히고 있다.

우선 경제의 큰 흐름을 살펴보자. 이 책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진입 이후 우리가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경제회복을 위해 그 동안 쓰지않고 아껴둔 두 개의 카드를 사용했다.

첫 번째 카드는 재정 건정성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에게 남겨진 수단이라고는 건전한 재정과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국민적인 의지 외에는 없었다. 금융기관 및 기업의 부실을 처리하기 위해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건전했던 정부 재정의 힘이 컸다.

두 번째 카드는 2001년 이후 경기 침체 상황에서 사용된 소비자 및 내수의 잠재력이었다. 지난 30년간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우리는 생활을 즐기기보다는 꾸려나가기에 무게를 두었고, 소비보다는 저축을 우선하는 경제문화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가계의 재무상태를 튼튼히 했다. 2001년의 경기 침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가계부문은 큰 무기가 됐다. 정부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고, 한시적인 특소세 인하 등 소비심리를 자극했다. 가계는 싼 금리로 대부를 받았으며 이는 내수 촉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 같은 카드 사용은 국가 채무의 증가, 가계 부채의 급등 및 신용 불량자 양산 등 커다란 부담감을 남겨 놓았다. 과연 내藪?경제 상황이 악화할 경우에도 쓸 수 있는 카드는 남아있는 것일까 라고 이 책은 묻고 있다.

내년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먼저 올해를 돌아보자. 올해 우리 경제의 특징은 세계 경제의 둔화라는 외풍에서 벗어나 나홀로 성장하는 글로벌 디커플링 현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가 이례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소비 중심의 성장 때문이었다.

디커플링 현상의 또 다른 요인으로는 상대적으로 균형잡힌 산업구조다. IT산업은 위축되었으나 자동차 선박 일반기계 등 굴뚝산업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호조를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내년 경기는 성장세의 연장인가 아니면 변곡점인가. 현재 우리 경제는 1990년대 초반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저자들은 보고 있다. 당시 정부는 경기 부양과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조치로 주택 200만호 건설을 추진했으며,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자산가격이 상승하자 과소비 현상이 지속됐다. 요즈음과 비슷하다.

내년에 현재의 내수 중심에서 수출 중심으로 성장의 축이 전환되지 않는 한 경기는 다시 하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대외여건이 개선되어 수출이 살아날 경우 우리 경제는 현재의 경기를 유지할 수 있겠으나 대외 여건이 악화할 경우 다시 2001년의 침체 상황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년에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들로는 밖에서는 미국 경제의 침체와 유가 불안, 안에서는 부동산 거품 붕괴와 개인 파산 급증, 선거 이후의 정책 혼선 등이 꼽히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두 가지를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첫째는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확대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것으로, 정부가 가장 힘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투자 활성화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입력시간 2002/12/2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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