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정당개혁의 애매한 잣대

대선이 끝나자 정치권이 개혁바람에 몸살을 앓고 있다. 민주당은 재창당과 신당 창당이란 승부수를 띄웠고, 한나라당도 지도부 퇴진이란 압박 속에 당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덩달아 자민련마저 당의 쇄신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의 출현은 정치ㆍ사회적으로 혁명적 상황이다. 3김이 퇴장했고 우리에게 낯설은 개혁ㆍ진보적인 성향의 50대 대통령이 등장했다.

이런 급격한 기류변화에 따라 민주당은 대선승리의 기쁨도 잠시, 선별적 구제라는 사실상의 ‘살생부’를 둘러싸고 초긴장 상태다.

‘탈레반’이란 별칭까지 얻은 소장 개혁파들은 연일 동교동계와 후단협 등을 중심으로 한 구 주류들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다. “저항하면 죽는다”는 엄포도 서슴지 않는다. 한나라당도 초ㆍ재선 그룹에서 민정계 위주의 지도부를 향해 공개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민주당 주류세력은 대선 후보를 뽑아놓고도 다른 당 후보를 옹립하려고 탈당까지 일삼는 불경죄를 저질렀고, 한나라당도 안이한 지도부의 대선전략으로 역전패 했다. 그래서 세대교체와 개혁을 앞세워 구 정치의 산물이자 구악(舊惡)에 찌든 노(老)정객들을 내몰려는 양당 소장파의 심정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그동안 선거를 앞두고는 선거용 신당, 집권에 성공하면 대통령용 사당 만들기에 앞장섰다. 늘 “이번만은 다르다”는 토를 달았지만 똑같은 정치행태를 반복했다. 이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민주당 인적자원 교체의 이면에는 노 당선자의 선거를 도왔느냐 여부가 잣대다. 노 당선자의 선거를 도왔으면 신 정치를 이끌 개혁세력이고 아니라면 구 정치인으로 지목된다.

한나라당의 패인은 저조한 젊은 층 득표율이다. 젊은 표를 겨냥해 30~40대 개혁성향의 인사들을 전면 배치했다. 그러나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30~40대 소장파들이 이제 대선 패배의 모든 책임을 ‘늙은’ 지도부에게 전가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개혁이란 미명아래 신구 세대간 인위적 교체에 다름 아니다.

점령군이 전리품 챙기는 식의 무조건적인 세대 교체는 노른자위 확보를 위한 소장 세력의 아귀다툼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다음 총선에서 지면 어떡할 건가. 40~50대가 주류였으니까 20~30대가 주도하는 정당으로 바꿀 것인가. 아니면 지역중심의 민정당-평민당 시절로 되돌아갈 건가.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1/02 14:41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