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개혁 대통령의 과제

새해다.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면서 새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새해의 한국정치에 대해서도 새 희망을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노무현 당선자로부터 나온다.

당선이 거의 확실해 보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배경에는 낡고 썩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고자 하는 유권자의 기대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을 정치인 ‘노무현 개인’에 대한 기대와 지지라는 좁은 뜻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이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게 희망을 걸게 된 것은 ‘국가 지도자로서의 역량과 자질’보다는 ‘일관된 소신과 원칙의 정치’때문이었다. 특히 지역주의 극복과 언론개혁이라는 현안을 피해가지 않고 기꺼이 맞섰던 ‘일관된 개혁적 태도’가 노무현을 새로운 정치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점 때문에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노무현 지지로 옮겨갈 수 있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라는 권위주의 시절의 ‘거대 개혁’을 상징하는 김근태 의원이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지지를 끌어들이지 못했던 것도, 일정 정도 개혁적 이미지를 갖고 있던 이인제나 이회창이 실패한 것도 이런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후보 당선의 가장 큰 원동력은 그 동안 보여준 그의 정치적 행보가 시대정신인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유권자들에게 갖게 했다는 점이다. 낡고 썩은 정치에 실망하고 좌절했던 국민이 새로운 기대를 노무현에게 걸었던 것이다.

그래서 16대 대선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바로 개혁이었다. 다시 말하면 개혁만이 살길이다. 개혁에 실패한다면 노무현 정부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도 앞날은 없다.

개혁은 노무현 후보가 대선 기간 중에 제시했던 가치들을 실천하는 일이다.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에게 감동을 국민과 함께 기적을’, ‘깨끗한 새 정치가 펼쳐지는 대한민국’, ‘열심히 땀흘린 만큼 대접받는 대한민국’, ‘소외받는 사람 차별 받는 지역 없이 누구나 잘 사는 대한민국’, ‘여성이 당당히 어깨 펴는 대한민국’, ‘분단을 넘어 동북아의 중추국가로’, ‘21세기에 우뚝 서는 대한민국’, ‘상식과 정의가 파도처럼 넘실대는 우리 모두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개혁이다.

최우선 개혁과제는 낡고 썩은 정치의 틀을 바로잡아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정치개혁이다. 지금까지의 정치가 갈등과 대립의 정치였다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은 화합과 조화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국민을 평소에는 소외시키고 배제시켰다가 필요할 때만 동원했던 동원의 정치에서 참여의 정치로 바꾸어야 한다. 밀실에서 패거리들이 움직이던 닫힌 정치를 광장에서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열린 정치로 바꿔야 한다. 돈과 지역감정 등 비합리적 요인들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깨끗한 정치가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핵심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국민의 정부 5년을 잘 살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상당한 업적을 쌓고서도 부패·무능 정권으로 비친 김대중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는 길이다. 노무현 시대는 문민과도기인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가게 될 것이다.

문민과도기에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대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고장난 불량정치’는 지난날을 반성하기보다는 정파적 이해에 매달려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등 퇴행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사회 전체가 갈등과 대립에 시달렸으며, 생각의 차이를 근거로 상대를 증오하는 증오의 정치가 일상화되었다. 이 같은 야만과 광기의 역사를 청산하는 과제가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따라서 통합과 조정, 올바른 인사, 국민 설득이 중요해진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 선거일을 ‘엘리제궁의 새로운 세입자를 뽑는 날’이라고 부른다. 대통령은 엘리제궁의 주인이 아니라 국민이 허락한 기간 동안에만 세 들어 사는 세입자이다. 노무현 당선자도 마찬가지로 국민이 주인인 청와대에 세 들어 살게 된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자신은 오로지 ‘국민에게만 빚을 졌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세 들어 사는 5년 동안 이 빚을 모두 갚고 국민의 아쉬움과 박수 속에 청와대를 떠나기를 기대해본다.

손혁재 시사평론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입력시간 2003/01/0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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