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금기를 깬 역사학자의미래 예측


■ 역사론
에릭 홉스봄 지음/ 강성호 옮김/ 민음사 펴냄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영국 역사학자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갈파한 이 말은 1980년대 젊은 대학생의 가슴을 뒤흔들었고 지금도 인기가 있다.

이를 비웃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로 빠짐없이 거론되는 사람이다. 에릭 홉스봄(85)이다. 그는 <역사론>에서 미래를 예견하는 일은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며 심지어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미래 예측은 역사학계의 금기였다. 인간의 보편적인 관심사임에는 분명하지만 학문적 차원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점쳐보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가치중립적 자세로 접근해야 하는 역사학의 연구방법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좌파 역사학자인 홉스봄은 프랑스 대혁명에서 구소련의 몰락까지를 다룬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극단의 시대’ 4부작 등을 통해 역사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공산당원이었기에 모교인 케임브리지나 옥스포드 대학 강단에 서지 못했고 사상적 고향이었던 구소련에서는 마르크시스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의 책이 번역되지 못했다. 역사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언제나 이방인의 삶을 살아온 셈이다.

이 책은 최근 30여년 동안 일반인을 상대로 한 강좌 서평 논문 등 21편을 모았다. 그는 역사학자로서는 드물게 역사적 통찰, 즉 미래에 대한 예견을 강조한다. 그는 일례로 1980년 핵미사일 위기를 든다.

미국 핵 관제 시스템에 소련 핵미사일로 보이는 물체가 탐지(사실은 기계의 오작동 때문이었음)돼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미국의 관리들이 세계 전쟁이 어떤 경고나 신호도 없이 돌발하지 않는다는 역사적 통찰력을 발휘해 맞대응을 하지 않아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역사에는 기본적인 경향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은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던지는 또 하나 메시지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역사는 상당 부분 날조된 것이며 역사가는 “(날조를 바로잡기 위해) 사람들의 눈가리개를 조금 들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민족주의에 기대어 역사와 신화를 날조하는 행위를 경계한다. 역사의 흐름을 꿰어내는 노역사학자의 혜안이 돋보인다.

김경철 차장

입력시간 2003/01/0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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