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강·온대립, 한나라 보·혁갈등, 자민련 신·구 이몽

여야가 당 체제 개편을 둘러싸고 미묘한 갈등 기류에 휩싸여 있다. 민주당은 동교동계가 쥐고 있던 당의 주도권이 신 주류인 친노(親盧)파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에 따른 당 쇄신체제로 본격 접어들었다. 자민련도 당 쇄신을 골자로 한 위원회를 만드는 등 덩달아 움직이고 있다.

각 당 소속 의원들은 당 체질 개혁이란 총론에는 한 목소리로 동조하면서도 개혁의 방법과 시기 등 각론에서는 저마다 이해득실에 따른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개혁 주체 세력사이에서도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는 양상이고, 한나라당은 개혁파의 선공에 현 지도부가 경계 움직임을 보이면서 보혁갈등 구도로 굳어지고 있다.

자민련도 이인제 총재대행을 중심으로 한 신파(新派)가 목소리를 내려 하고 있지만 김종필 총재 중심의 기존 주주들이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당 체질개혁과 세대교체라는 대세에는 공감하면서도 속도조절론을 고리로 신구세대간 한바탕 진흙탕 싸움을 벌일 태세다.


민주당 신 주류, 독자 쇄신안 관철 주력

민주당은 일단 사실상 반노(反盧)편에 섰던 전 지도부와 이적행위를 한 후단협 소속 의원들이 노 당선자 체제 출범과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계 해체지시로 완전히 수면아래로 잠수한 상태다.

개혁주도 세력인 친노파의 처분만 기다릴 뿐 별도의 모임이나 세를 형성해 당 개혁의 대세를 거스르는 행동은 자제하는 중이다. 한화갑 정균환 박상천 의원 등 구 주류는 당 개혁과 관련, 아예 입을 다물었고 김영배 최명헌 의원 등 후단협에 몸담았던 인사들은 당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친노파의 당권 장악은 기정사실화 돼 있지만 문제는 신 주류사이에서 불거지는 이견이다. 당의 발전적 해체와 중앙당 축소 및 원내정당화를 주장하는 소장파에 맞서 중진의원들은 점진적인 온건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소장 개혁파 의원들은 1월6일 새해 첫 모임을 갖고 당 개혁을 위한 세 결집에 나섰다. 이날 모임에는 12월 22일 ‘발전적 해체’ 서명에 참여했던 조순형 신기남 김성호 송영길 의원 등 23명 외에 이만섭 김근태 의원 등 중진급 의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들 개혁파 의원들은 개혁 특위의 활동이 미진할 경우 독자적 쇄신안을 마련, 관철시킨다는 입장이다.

김성호 의원은 “당 개혁특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연대기구 성격의 모임을 운영하면서 개혁특위의 논의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며 “당내 범 개혁파는 물론 과거에 개혁파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던 의원들도 포함시켜 한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경 개혁파들은 당 개혁의 핵심으로 당권투쟁의 산물인 최고위원제도를 없애고 시도 권역별 대표 50여명으로 구성된 집행위원체제로 바꿔 원내총무가 당 대표를 맡는 원내중심정당으로 가는 선진국 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또 제왕적 총재-대표 구도와 1인 독단식의 현행 지구당위원장 운영체계를 개편하기 위해 현 대의원들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호남출신과 50대 이상이 당원ㆍ대의원의 8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구도에서는 전국정당화의 기틀 마련이 요원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반면 김원기 개혁특위 위원장과 정대철 최고위원 및 이상수 사무총장 등 노 당선자의 측근이자 핵심 중진들은 온건개혁파로 분류된다. 개혁 프로그램에는 적극적이지만 혁신적 변화보다는 점진적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당 지도부 선출과 총선의 공천 문제에서의 국민참여경선제 도입은 뜻을 같이하면서도 지도부 체제의 전면 수술에는 난색을 표시하는 입장이다.

개혁특위 위원인 이재정 의원은 “폭넓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조정하고 개혁방향을 효율적이고 탄력적으로 추진하는 차원의 모임이 돼야지 이견으로 인한 당내 파벌은 곤란하다”며 강경개혁파의 분파적 성격의 모임을 경계했다.

구 주류에 속하는 박양수 의원도 “현재 대의원이 1만4,000여명이고, 이중 선출직이 8,000여명이나 되는데 하루 아침에 자격을 박탈하기가 쉽지 않다”고 반대의 뜻을 전했다. 이들의 주도권 다툼에는 당의 실질적 권한을 갖는 대표 자리의 향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장파에게는 1인 권력집중 체제가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고, 중진급은 영향력 유지를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지도부ㆍ개혁파 팽팽한 대립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이후 현행 지도부와 개혁파들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단 서청원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직자 대부분이 좌표를 잃은 당의 기틀을 잡고는 있지만 밑에서부터 솟구치는 개혁의 물결에 연일 뒤뚱거리는 양상이다.

민주당이 “누가 실질적인 주인이 되느냐”에 고민하고 있다면 한나라당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인 “누가 공천을 주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다. 민주당이 방향은 같지만 속도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다면 한나라당은 방향 설정부터 투쟁의 싹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에서도 개혁파 의원들이 먼저 치고 나왔다. 이부영 김홍신 의원 등 개혁파 10명은 1월5일 당 정치개혁 실천모임인 ‘국민속으로’를 결성, 독자 개혁 추진과 개혁세력 확대를 위한 포문을 열었다. 이들은 발기인 모임에서 독자적 개혁 주장에 그치지 않고 원내외 지구당위원장을 적극 끌어 들여 수적 열세를 조직화로 극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당내 개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당을 떠날 가능성도 제기되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보수파 진영에서는 “탈당을 위한 수순밟기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국민속으로’ 발기인에는 이부영 이우재 김홍신 김부겸 김영춘 원희룡 이성헌 서상섭 안영근 조정무 의원 등 수도권 출신 10명이 참여했지만 당내 비주류의 대표격인 김덕룡 의원은 발기인에서 제외됐다.

김부겸 의원은 “우리가 탈당할 것이라는 의심도 제기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우리의 취지는 당의 개혁을 돕겠다는 것”이라며 “빠른 시일내 ‘국민속으로’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만들어내 당내 압박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개혁파들의 집단 행동에 보수성향의 중진 의원들은 해당행위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서청원 대표는 “개혁특위의 안이 성안도 되기 전에 편가르기식의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우리 당을 지지한 많은 국민들이 당의 단합과 함께 쇄신을 요구하는 만큼 파열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당이나 본인에게 좋지 않다”고 경고했다.

하순봉 최고위원도 “우리 우물은 우리가 아껴야 하며 우리 당 지지자들에게 신뢰를 잃지 않고 젊은 층 지지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영남지역 한 의원도 “‘국민속으로’ 참여 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차기 총선에서 입지가 흔들리는 사람들”이라며 “1차로 당권을 겨냥하다 안되면 탈당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나라당은 현재 정치개혁특위(공동위원장 현경대 홍사덕 의원)에 3개 분과위를 두고 지도체제 및 권력구조 개편 등에 대한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 당내 특위는 원내정당화와 개헌 및 권력분산, 선거제도개편 등 총 8개 주제, 20개 항목에 대해 논의 중이다.

특히 집단지도체제 유지 등 당 지도체제 개편은 물론 내각제와 분권형 대통령제 등 권력구조개편 문제에 대해서도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1/10 10:09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