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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을 맞은 포크가수 윤연선

시간의 마술도 비켜 간 그리움의 '얼굴'

누구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주는 노래 하나쯤은 가슴에 담고 있기 마련이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올라갔던 하아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는 눈동자/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30년 가까이 가요 팬들의 감성을 적셔온 '얼굴'의 노랫말이다.

비록 가수이름은 기억이 흐릿해도 '얼굴'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리운 얼굴들과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놓는 신통한 마력을 지닌 노래이다. 오래 전 MBC TV의 인기드라마 '사랑'과 2001년엔 KBS드라마 '순정'의 배경음악을 채택되고 KBS FM의 시그널 뮤직으로 친숙한 이 노래의 주인공은 포크가수 윤연선.

생 머리에 청순한 이미지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녀는 대학시절 짧은 활동 후 오랜 기간 가요계를 떠나있었다. 2년 전부터 미미하게나마 활동을 재개했던 그녀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데뷔30주년 기념 감동의 작은 음악회

2002년 12월 20일 초저녁, 홍대 앞에 위치한 20평 남짓한 작은 까페 '얼굴'은 모처럼 흥분된 표정의 30여명 팬들로 북적거렸다. 포크가수 윤연선의 데뷔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작은 음악회에 참석하려는 그녀의 팬들이 모여든 것이다.

이 자리에는 혼성 듀엣 뚜와에무와, 남성듀오 4월과 5월, 그리고 DJ겸 코미디언 송영길이 찬조출연을 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 장면은 지난 12월 21일 KBS 2TV 아침 방송 '추억의 노래 그리운 얼굴'에 소개되어 옛 추억을 되살려주는 잔잔한 파장으로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윤연선은 1972년 대학신입생 시절 명동의 대학연합음악동아리에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참여하면서 노래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백순진과 함께 4월과 5월의 멤버로 활동하다 병으로 쉬고 있던 이수만의 절친했던 음악친구.

그녀는 방송국 구경을 가 유명DJ 이종환을 사귀고 대학축제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72년 가을 이수만과 함께 데뷔음반을 발표한 그녀는 오세은, 김의철, 이정선, 백순진등 많은 포크가수들과 인연을 맺었다.

현재 한국포크싱어연합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필원은 특별한 인연을 간직하고 있다. 1972년 늦가을 무렵, 파트너인 박인희와 결별한 후 새로운 여성파트너를 찾던 그는 여대생가수 윤연선과 2기 뚜와에무와를 꿈꾸며 '님이 오는 소리', '그리운 사람'등 녹음작업을 함께 했었다.

본격적인 활동은 못했지만 우수에 젖은 듯 가슴을 파고드는 하모니의 노래들은 윤연선의 첫 독집음반<평화의 날개-유니버샬,1972년 11월>에 수록되어 있다. 이 독집앨범은 인터넷 가요음반 경매사상 최고가인 170만원에 낙찰되는 진 기록으로 놀라움을 안겨준 귀한 음반이다.

이필원은 "아직도 윤연선의 얼굴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랬다. 그녀와 뚜엣 결성을 위해 잠시 음악작업을 했었지만 솔직히 당시에는 화음이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불발탄으로 끝났었다. 그때 녹음한 노래를 들은 팬들이 '박인희를 능가하는 화음'이라는 아쉬움을 많이 전해 왔다"고 전한다.

코미디언 송영길은 "70년대 중반 기독교방송에서 청소년 음악프로 DJ를 했을 때 게스트로 출연한 윤연선과 처음 만났다. 당시 순수하고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로 노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방송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얼굴'하고 오세은 곡 '고아'는 라디오를 통해 참 많이 흘러나왔다"고 들려준다.


작곡가 신귀복 교사에 "곡 달라"

윤연선은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도 않은 제 노래를 아직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 놀랬어요" 수줍게 이야기는 하는 윤연선은 우연하게 접한 동요처럼 맑고 순수한 '얼굴'의 듣고 마음을 빼앗겼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소극적인 활동으로 했던 그녀는 이 노래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용기를 냈다. 그녀는 1974년 작곡자 신귀복의 허락을 얻기 위해 서울 마포의 동도중학교를 찾아갔다. 수업 중이었던 음악교사 신귀복은 윤연선을 음악실로 데려가 손수 피아노를 치며 노래테스트를 했다. 트로트창법으로 노래하는 가수일까 걱정했던 그는 맑은 포크어법으로 노래하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기쁜 마음에 악보를 전해주었다.

윤연선은 "허락을 얻기 어려울 것 같아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찾아뵈었는데 너무도 쉽게 곡을 주셔서 의외였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는다. 당시 막 교사생활을 시작했던 현 동도중학교 조만호 교장선생은 "음악실 문 앞에서 노래 테스트를 받던 윤연선씨를 직접 보았다. 하얀 옷을 입고 왔는데 참 우아했던 분으로 기억이 난다. 오늘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고 감격스러워 한다.

사실 '얼굴'은 윤연선씨가 처음 부른 곡은 아니었다. 이 노래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1967년 3월 2일. 신학기를 맞은 동도 중학교의 첫 교무회의는 평소보다 무척이나 길었다. 맨 뒤쪽에 자리했던 음악교사 신귀복은 지루함이 느껴지자 옆자리의 생물교사 심봉석에게 엉뚱한 제안을 했다.

"제목은 '얼굴'로 정했으니 사귀는 애인을 생각하면서 가사를 지어 보라. 나는 곡을 만들겠다" 두 젊은 교사는 순간적으로 의기투합,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불과 5분 후 교무회의은 끝났다. '얼굴'은 이렇게 단 5분만에 만들어진 즉흥적인 곡이다.

11년 동안 KBS라디오에서 '노래고개 세 고개'라는 음악프로의 심사위원을 맡았던 신귀복은 3부 '악보보고 부르기'시간 참가자들에게 이 노래악보를 부르게 했다. 이후 최초의 포크그룹 '아리랑브라더스'의 멤버였던 성악가 석우장이 처음 노래했다.

이후 '얼굴'이 사회교육방송 전파를 타고 해외에까지 알려지자 악보를 요구하는 7천여 통의 편지가 국내외에서 날라들었다.


소프라노가 부른 노랜 포크로 재 탄생

'얼굴'은 윤연선보다 4년 앞선 1970년 신귀복 가곡집 1집을 통해 처음으로 음반으로 발표가 됐다. 이때는 소프라노 홍수미에 의해 불리어진 가곡이었다. 4년 후 포크 곡으로 재 탄생된 윤연선의 '얼굴'은 두 번째였다.

1974년 10월 동료가수 박승룡과 함께 꾸며진 윤연선의 세 번째 음반에 수록된 '얼굴'은 사실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후 새롭게 녹음을 해 1975년 2월에 발표된 그녀의 두 번째 독집음반<고아/얼굴-지구레코드>이 발표되면서 광주등 지방도시에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달 후 타이틀 곡 '고아'가 금지의 멍에를 쓰며 판매금지조치가 내려졌다. 조바심이 난 지구레코드는 발빠르게 '고아' 대신 '얼굴'을 타이틀곡으로 변경해 음반을 발매했다. 이 음반이 빅히트를 터트린 것이었다.

'얼굴'은 순식간에 젊은이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고진감래랄까. 마음의 상처를 입고 두문불출하던 윤연선에게 어느 날 음반사 사장은 금일봉까지 주며 "음반을 한 장 더 찍자"며 매달려 왔다.

작곡가인 신귀복 선생도 학내 외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사실 한국 중고등학교 음악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음악교육가이다. 불암초등학교, 공진중, 서울과학고, 국립경찰대등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가 작곡한 곡을 교가로 채택한 학교가 전국 각지에 84개교에 이른다.

또한 그가 집필한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는 8종의 음악교과서 가운데 전국 46.2%의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할 정도. 신용남 동도중공고 이사장은 "신선생이 우리학교 음악교사로 있을 때 서울시에서 음악성적만은 항상 1등이었다. 어찌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특별히 표창을 했던 훌륭한 음악선생님이었던 기억이 난다"고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신귀복선생은 "이태리 밀라노 유학시절 그곳에서 '얼굴'을 행진곡 풍으로 편곡해 발표한 적이 있다. 음악의 본고장 사람들도 어찌나 좋아했던지 12명이 지원한 베르디 음악원 교수선발 시험에 외국인인 내가 이태리인 11명을 제치고 최종 선발이 되었다"고 전해준다.

그는 동도 중공고에서 20년 간 봉직한 후 금옥여고, 국립국악고 교감, 서울시 음악담당 장학사, 공진중학교장등을 거쳤다. 그는 현재 한국작곡가협회 수석부회장과 음악저작권협회 이사로 재직하며 모교인 경희대 음대등 대학에서 화성학 강의를 하고 있다.


작사자는 '얼굴' 주인공과 진짜 결혼

'얼굴'의 주인공인 윤연선 신귀복이 2002년 12월 29일 신귀복, 윤연선 두 사람은 뜻깊은 동도중학교 교정에서 28년 만에 다시 만났다. 신귀복 선생은 "노랫말을 지은 심봉섭 선생은 '얼굴'의 진짜 주인공과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당시 애인이었던 '얼굴'의 주인공은 지금의 부인인 덕수 중학교 김말순 교장선생님"이라고 밝힌다. 또한 "미팅에서 만난 동도중학교와 금옥여고 제자들이 같은 선생님에게 배운 '얼굴'을 좋아한 인연으로 결혼을 한 일도 있다. 그때 주례를 보았다"는 숨겨진 사연을 들려주었다.

이에 윤연선도 "동도중학교와 금옥여고를 졸업하신 분들이 가끔 제가 운영하는 카페에 찾아온다. 그들에게 들은 신귀복 선생님의 별명은 복을 가져다주는 분이라 하여 이름을 거꾸로 한 복귀신"이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두 사람이 모처럼 동도중학교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신용균 이사장과 중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한 식구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당시의 추억을 정담으로 나누었다.

또한 두 사람은 추억이 서린 28년 전의 음악실을 찾았다. 지금은 소강당으로 변해있는 그곳에서 신귀복 선생의 피아노 반주에 윤연선의 노래 가락은 소강당 곳곳을 '얼굴'의 음률로 가득 채우며 세월을 돌려놓고 있었다.

28년 전의 수줍고 긴장된 그 정경이 환생되는 듯 싶었다. 그 간의 안부와 음악이야기꽃을 피우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얼굴'의 가사 그대로 정겨움이 배어 나왔다. 한기가 돌던 실내는 살며시 들어와 온풍기를 틀어준 어느 후배 동도중학교사의 마음처럼 어느덧 따뜻한 온기가 넘실거렸다.

밖은 영하의 세찬 날씨임에도 '얼굴'이 탄생한 동도중학교는 따뜻하고 가족 같은 푸근함이 전해지는 공간이었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2003/01/1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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