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행복한 날들

장이모우(張藝謀)는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중국 5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자신이 발굴한 여배우 공리와 함께 한 <붉은 수수밭>(1988)으로 감독 데뷔하여, 화려한 스타일이 돋보이는 <국두> <홍등> <인생> <상하이 트라이어드>로 베니스, 칸느 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 영화의 위상을 높인 국제적 성과와는 달리, 중국 내에서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영화는 오늘의 중국 현실을 외면한 국제 영화제용”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장이모우 감독은 <귀주이야기>(1992) 이후, 현재 중국 민중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댄 다큐멘타리풍의 소박한 영화를 내놓고 있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와 <집으로 가는 길>은 <귀주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한 감동적인 소품이다.

자본주의로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있는 중국 대륙, 그 변방에서 착실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작은 꿈. 동화처럼 희망적인 결말은 중국 정부와의 타협물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이전의 화려한 영화들 못지않은 재능을 확인하게 된다.

장이모우 영화 중, 유일하게 극장 개봉되지 못하고 비디오로만 출시된 2000년 작 <행복한 날들 幸福時光 Happy Times>(12세, 폭스)도 <귀주이야기> 이후 영화와 맥을 같이 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중국 변방이 아닌,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정도다. 베를린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고, 미국에서도 개봉을 하여 소박한 리얼리즘에 대한 찬사를 들었다.

“초기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떠올리게하는 달콤함과 명료함”이라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의 평가는 적절해 보인다.

<행복한 날들>의 제작자 명단에는 <천국의 나날> <씬 레드 라인>으로 유명한 감독 테렌스 말릭, <크로우> <아메리칸 싸이코>를 제작한 에드워드 R 프레스턴의 이름이 올라있다.

반면 스탭진은 <집으로->와 <책상->을 함께 한 이들이다. 촬영에 호우 용, 음악에 산 바오, 편집에 자이 류가 할리우드 영화와는 거리가 먼, 영화답지 않은 영화로 은은한 감동을 선사한다.

극적 과장이 없는 이 사실주의 영화에서, 좋은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 두 배우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장 노동자 출신의 50대 남자를 연기한 자오 벤샨은 중국의 인기 코미디언이자 영화 배우. 지방 극단에서 활동하던 오동통한 아저씨는 1990년부터 CC-TV의 코미디 프로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고, 첸 카이거의 <시황제 암살> 등에 출연하였다.

공리와 장쯔이를 발굴했던 장이모우 감독은 <행복한 날들>을 위해 무용을 전공한 동지를 찾아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갸날픈 소녀 역을 맡은 동지의 꾸밈 없는 연기는, 난생 처음 연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연기 경력, 나이 차가 현격한 자오 벤샨과 동지의 따뜻한 호흡은 “<시티 라이트>처럼 밝음과 어두움, 웃음과 눈물, 사랑을 담은 영화”(‘시카고 트리뷴’)라는 평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모얀의 ‘시푸, 넌 웃음을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거야’가 원작인 <행복한 날들>은 맞선 보는 아저씨 모습으로 시작된다. 번번이 퇴짜를 맞다가, 18번째로 만난 뚱뚱한 아줌마에게 큰 호텔 부지배인이라고 속여, 겨우 데이트 약속을 받아낸 노총각 자오. 탐욕스런 아줌마는 전 남편이 버리고 간 앞 못보는 소녀 우에게 일거리를 주라고 한다. 친구들과 가짜 안마소를 급조해 우를 데려오고, 우는 돈을 벌어 아버지를 찾고 눈도 고치겠다는 희망을 품는다.

옥선희 비디오, dvd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3/01/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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