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 美] 욕망의 끄트머리에서

■ 제목 : 나쁜 소년 (Bad Boy)
■ 작가 : 에릭 휘슬 (Eric Fischl)
■ 종류 : 린넨 유화
■ 크기 : 167.5cm x 244cm
■ 제작년도 : 1981
■ 소장 : 개인소장

현대 사회에서 대중의 힘은 전방위적이며, 그 힘도 엄청나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거의 일방적으로 대중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던 매스 미디어 조차도 지금은 대중의 취향에 적지않게 영향을 받는다. 현대의 대중은 매스 미디어의 파급 효과를 수동적,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까지 한다.

이 같은 현상은 순수 예술의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는 그 어떤 예술가도 대중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른 채 자기만의 정신 세계를 고집하는 게 만만치 않다. 실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미국에서도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가 엄격한 여론의 눈에 의해 좌절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과거 미술사에서 예술가의 작품이 대중 앞에 보여질 수 없었던 이유는 주로 성에 대한 지나친 묘사에 있었는 데 비해 현대에는 종교 혹은 사회적인 이슈와 관계되는 부분에서 부적절한 반향을 일으켰을 때 거부되는 경향을 보인다.

2001년 뉴욕의 9.11 테러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된 에릭 휘슬의 브론즈 조각 ‘텀블링하는 여인’은 테러 직후 무역센터에서 뛰어 내리던 사람들의 형상을 연출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조각은 불온하다는 여론의 항의 속에 철거됐다.

에릭 휘슬은 1948년 뉴욕에서 태어나 이 곳에서 자라고, 살고 있는 뉴요커. 그는“내 고향에서 일어난 참혹한 사건을 진심어린 비애감으로 표현했다”고 항변했는데, 이 경우는 작가의 의도와 관람자의 해석이 교감하기 어려운 갈등을 겪은 셈이다.

에릭 휘슬의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는 미국 중산층 사회의 부조리다. 물질적으로는 한없이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피폐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의 실체를 에릭 휘슬은 노골적인 묘사로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 또한 부적절한 성적 관계와 이에 따른 비인간적인 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현실 속의 인간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장지선 미술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3/01/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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