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시대] '수도 충청' 꿈을 먹고 산다

[르포] 행정수도 이전으로 달아오르는 대전·아산

“경상도 대통령, 전라도 대통령은 다 나왔어도 충청도 대통령은 없었잖수. 촌사람들이 서울 사람 한 번 돼 보겠다고 하는 거지.” 호남고속도로 유성 IC를 빠져 나오면 언뜻 보기에도 새로 막 지어 올린 것임을 알 수 있는 아파트 단지가 곧바로 시야에 들어온다. 대전의 신흥 명문 주거지로 알려진 노은 지구, 대전 유성구 노은동이다.

2월4일 오후 그곳에서 만난 50대 초반의 한 아주머니는 대전의 민심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었다.

“저~어기 시골 사람들이 노무현을 더 많이 찍었어. 집안 일 모두 제쳐두고 삼삼오오 모여 나가서 투표를 했다지. 그리고는 서로서로 땅을 절대 팔지 말라고 노래처럼 부르고 다닌다는 거야.” 결국 얘기는 여기에 미친다. “충청도 사람들이 괜히 노무현을 찍었겠어? 다 행정 수도 땜에 그런 거지. 노무현은 공약 꼭 지켜야 돼.”


천정부지로 치솟는 땅값

대부분 입주가 완료된 59만여평의 이 지역은 노은 지구 중 1차로 개발이 이뤄진 1지구다. 동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이제 막 택지 개발 공사가 한창인 2지구가 펼쳐진다. 이미 분양한 4,000여 가구의 분양권 전매율이 60%를 넘어서는 등 ‘묻지마 투자’가 극성을 부리자 이튿날인 5일부터 투기 과열 지구로 지정된 곳이었다.

“외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땅값이고 분양권 가격이고 천정부지로 뛰더라니까.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은 꼭 물건을 사겠다는 것 보다는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야. 선거 전만 해도 평당 300만원 하던 땅값이 두 달 남짓 지난 요즘 400만원, 아니 450만원이 됐어. 거래는 없고 호가만 높아지는 거지.” 처음에는 “요즘 언론에서 너무 호들갑을 떤다”며 대꾸도 않던 K공인중개사 사무소 이언성(57) 사장이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대전 지역 중에서도 노은 지구가 계룡 신도시, 공주 장기 지구, 충북 오창 등 행정수도 후보지와 가장 인접한 곳이라는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말을 거든다.

“사실 요즘 여기 보다 관저 지구 아파트 값이 더 뛴다니까. 계룡 신도시와 바로 인접한 곳이거든. 어느 곳이 행정 수도로 유력하다는 얘기만 나오면 주변 지역 부동산 가격이 금세 치솟는다니까, 나 참.”


행정수도 어디에 들어선답디까?

행정 수도가 들어서면 뭐가 좋을 것 같냐고, 혹시 괜히 사람만 많아지고 번잡해지는 것은 아니냐며 의뭉을 떨자 “생활이 윤택해질 것 아니냐”는 현답으로 돌려친다.

“그간 사실 대전 사람들 별로 대접을 못받았잖수. 느릿느릿하고 차분한 정서 탓에 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 속으로는 불만들 많이 갖고 있었을 거야. 문화 시설도 들어서고 기업도 내려오면 생활의 질이 한층 높아지겠지. 땅 있는 사람들이야 땅 값이 올라서 좋을 테고 말야.”

역시 이곳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행정수도가 어느 곳에 들어설 것이냐 였다.

“후보지 중 어디라도 혜택을 받는다”고 했지만 그래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테니까. “기자 생활하니까 필(감)이 있을 것 아닙니까? 어디에 행정수도가 들어설 것 같습니까?” “내일(5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내려온다는 데 혹시 행정수도를 어디로 할 지 얘기를 할까요?” (이런 기대와 달리 노 당선자는 5일 대전 국정토론회에서 행정수도 후보지를 내년 상반기에 확정하겠다고 밝혔지만) 건설업에 종사한다는 박한교(42)씨, V공인중개사사무소 안중선(42) 사장 등 만나는 사람마다 기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비슷했다.

대전 서남부쪽, 계룡 인근에서 만난 60대 할아버지는 믿어도 좋을지 말지 한 옛 이야기를 끄집어 내며 계룡으로 행정수도가 이전돼야 한다고 말을 꺼낸다. 무학대사가 한양 천도론을 강력히 주장했다는 것 밖에는 아는 것이 없고 또 확인하기도 힘든 터였다.

“조선 건국 초기에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한양은 500년 도읍지, 계룡산은 1,000년 도읍지라고 했다지 않어. 한양이 도읍지가 된 게 벌써 600년이 넘었으니 지금 청와대 자리는 기가 다 빠져 나간 거야. 누구든 청와대에 들어가면 다 끝나고 나서 감옥에 들어가고 욕을 먹고 하잖어. 계룡 쪽으로 도읍을 옮기면 국운이 융성할 것이여.”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 천안

대전에서 50분 가량 북쪽으로 이동하면 천안과 아산이 맞닿는 접경 지역이다. 21번 국도변에 ‘아산 신도시 개발 예정지’라는 표지판 뒤로 고속철 천안 역사가 눈에 들어온다. 서울 기점 96.3㎞ 지점, 충남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다. 질퍽질퍽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200㎙쯤 들어가자 여기저기 앉아 담배를 피우는 공사장 인부들을 만날 수 있다.

“생각보다 그리 바쁜 것 같지 않다”고 운을 떼자 “대부분 공사가 다 끝나고 시승 등 막바지 작업에 들어가서 그렇다”고 한다. 7년 전부터 이곳 공사장에서 일해왔다는 서광T&C 양막동(43) 소장은 “고속철 개통이다, 신도시 개발이다, 행정수도 이전이다 해서 요즘 들어 부쩍 이 일대 주변 지역에 관심을 갖는 외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정작 천안, 아산 지역 주민들은 행정수도 이전에 별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보다는 십수년 전부터 선거 때마다 공약 사항에만 머물렀던 아산 신도시 개발만 이뤄지면 고속철 개통과 함께 살기 좋은 지역이 될 거라는 믿음이 더 강한 듯 했다.

“천안이 한자로 하늘 천(天), 편안 안(安)이요.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얘기지. 지형도 주변 보다 높아 안전하고 큰 재해도 없어. 행정수도다 뭐다 번잡한 것은 필요 없고 그냥 교통이 편리해지고 신도시만 들어서면 정말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거지.” 인근 주민 김은수(59)씨의 말에는 전형적인 충청 지역 사람들 특유의 느긋함이 묻어난다.

꿈꾸고 원하는 것은 제각각 다를 지 모른다. 그러나 조만간 대전이, 천안이, 그리고 인천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지역이 될 거란 기대는 한결 같았다. 또 하나, 이들 지역이 새 정부에서는 좀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 역시도.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2003/02/17 10:15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