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忖 보존이냐? 개발이냐?

오늘을 사는 도심의 과거, 북촌 한옥 마을의 현재

서울의 명물 북촌 한옥 마을이 개발이냐 현실이냐를 두고 펼쳐져 온 해묵은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적당한 굴곡이 있다. 오르락 내리락하며 정겨운 골목을 따라 쭉 걷다 보면 어느새 번화한 서울 길거리다. 인위적으로 마련된 한옥 지구가 아니라 옛 권문세가의 주거지를 중심으로 현재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주민들이 호흡하고 있는 땅이라 그 문제를 속시원히 풀어 줄 해법이 만만치 않다.

전통이냐, 현실이냐.

전국 유일의 생활 전통 한옥 보존지인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 마을은 현실속에서 살아 있다. 보존이냐 개발이냐 라는 문제는 여기서 코앞의 현실이다. 가회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안국동 등 10개의 동이 이루고 있는 19만여평의 땅이다. 현재 924동의 한옥이 밀집, 전국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독특한 정취가 가득하다.

국내외의 신청자들을 중심으로 펼쳐 오고 있는 북촌 문화 체험 프로그램(오후 3시~5시)에서는 전통 매듭, 부적 탁본, 오죽 공예 등 전통 생활 예술이 대금 가야금 등 전통 악기 공연(오후 5시~5시 40분)과 어우러진다.

북촌 문화 체험 투어, 북촌 마을 잔치 등 올망졸망한 행사도 구경꾼들을 붙들어 맨다. 경복궁, 인사동 등 전통 문화의 향취가 그득한 관광지가 바로 옆에 즐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앞서 오후 2시~4시에는 한옥 밀집 지역 탐방, 한옥 개보수 현장 견학, 장인들의 공방 탐방 프로그램이 기대감을 높인다.

또 오후 5시 40분부터는 북촌문화센터에서 잔치 음식을 나누는 등 뒷풀이 행사가 마련돼 있다.

북촌의 상징적 의미는 2002년 10월 29일 문을 연 ‘북촌 문화 센터’(계동 105번지)에 잘 압축돼 있다. 조선말기 권문세가였던 ‘민재문관댁’ 또는 ‘계동마님댁’으로도 알려진 이곳은 첨단 컴퓨터 시설을 갖춘 문화관으로 변모했다.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문화관을 비롯, 전통 문화 강좌와 연주회 등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과거와 현재, 야누스의 얼굴

북촌가꾸기 사업이 본격 논의 된 것은 인접한 인사동이 세월에 따라 급격히 변질한 때문이었다. 복합 문화 공간의 성격을 띠며 점점 상업화의 길을 걷고 있던 인사동의 압력이 증가일로에 있던 2000년 10월 서울시가 ‘북촌 가꾸기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인사동에 뿌리 내리고 있던 고미술상과 장인공장들이 옮겨 갈 적당한 장소가 필요하게 됐고, 그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인근의 유서 깊은 지역인 북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초 긴밀할 것 같았던 인사동과의 연계가 희박해지면서 예기치 못 한 길을 걷고 있는 것.

북촌의 역사는 인구 과밀의 첨단 도시속에서 전통은 어떻게 존재해 왔나를 선명히 보여주는 텍스트다. 1998년 시정개발연구원을 주축으로 시작된 ‘북촌마을 주거 개선 사업’이 그 도화선이었다. 인구 증가로 다세대 주택이 난립해 감에 따라 먼저 원서동 일대의 한옥 1,000여채가 사라진 것이 첫 출발점이었다. 1999년에는 가회동 31번지 한옥밀집지역 대지를 ㈜한화가 매입해 대단위 빌라가 들어서면서 주민의 위기 의식은 촉발됐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북촌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20세기 초반의 도시 주거지 구조를 고스란히 간직한 덕택에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정취가 있지만, 현대 도시 생활을 하는 데는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주차장 부족, 골목 환경 악화, 생활 편의 시설 부족 등은 주민들에게는 코앞의 문제다.

이 일대의 평당 싯가는 현재 200~250만원이다. 보존 지역으로 묶여 있기만 한 이 지역은 DJ 정권 이후 주민들은 한옥 보존 지역화에 대한 반대를 시위 등의 형태로 노골화한 것이다. 2001년 서울시가 북촌 일대 한옥의 가치에 주목, 토지개발공사를 통해 북촌의 한옥을 ‘싯가’로 사 들인 것이 전환점이었다.

‘계동공인중개사’ 사장 김재창(38)씨는 “직전 싯가보다 평당 100만원씩을 더 지불해 매입하자 결과적으로 지가가 경쟁적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지가를 이 정도 선에서 유지시켰다면 개발 시세 차익을 노리고 빌라 등 대단위 주택 시설이 이렇듯 우후죽순격으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 했다.

초등학교 이래 이 지역서 살았다는 김씨는 “계획대로 2004년까지 현대 본사 건물에서 중앙고 사이에 도로 정비 사업이 마무리된다면 주민들의 삶도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턱없이 부족한 주차 시설도 확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대-중앙고 간 도로 바로 옆에 있는 재동 초등학교 운동장의 지하에 주차장을 신설한다면 주차난은 산당히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즉 운동장 을 파 공간을 확보하고 주차 공간을 확보한 뒤, 위를 복개해 주차장으로 쓰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이다.

현재 이 일대의 시세는 도로에서 많이 떨어진 작은 한옥의 경우 평당 600~700만원 사이, 도로 뒷편의 한옥은 700~800만원선, 도로에 인접한 한옥은 평당 1,000만원선이라고 김씨는 전했다.


살아있는 ‘문화 타운’ 만들어야

실제로 한옥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개보수를 해나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관련 인력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만만치 않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목수의 나이는 거의 60대 이상으로 고령화돼 있고, 그 이하 연령대의 수급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이 일대는 물론 삼청동, 원서동 등지에 남아 있는 한옥 수리를 전문으로 해 온 목수 김정선(56)씨는 “40평 이상의 큰 집들이 대부분인 원서동, 삼청동, 가회동에서 공사 부탁이 자주 들어 오는 편”이라며 “송진이 많아 단단한 한국산 소나무 대신 그보다 절반이 싼 외국산 소나무를 선호한다”며 걱정한다.

또 흡습력이 뛰어난 전통 회칠을 쓰지 않고 90%가 시멘트로 보수하는 추세가 압도적인 현실도 걱정 거리라는 지적이다.

서울시 주택국 도시정비반 소속으로 북촌 한옥 보전팀장으로 근무중인 한병용 팀장은 “워낙 복잡한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는 북촌 가꾸기 사업은 미리 계획을 입안해 그대로 밀고 나가는 추진 방식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며 “진행해 가면서 계획을 입안하고 수정하는 프로세스 플래닝(process planning)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매년 요구 사항이 조금씩 달라지는 데다, 아직도 양반 동네라는 특성이 한몫 한다는 것이다. 즉, 주민들은 매우 보수적이라 여간해선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고 한 팀장은 말했다.

건축 전문지인 월간 ‘건축문화’는 2003년 1월호에 북촌마을가꾸기를 특집으로 다뤄, 이 문제를 두고 집중 토론을 벌였다. 대표 김영섭씨는 “문화탐방로 구축 등 외형적 실적에 관심을 기울이는것보다는 쾌적한 주거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며 “쓰레기 처리, 용도 규제, 주차장 확보 둥 주거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주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옥 밀집 지구인 가회동 31~32번지 주민들이 주축이 돼 만든 ‘한옥 마을 지킴이 연대’ 노진민 대표는 “주민 스스로 마을을 지키는 주체가 돼 전체적인 경관을 해치는 신ㆍ개축 행위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건물 구조의 특수성상 증축과 수선의 경계가 모호한 한옥의 특징도 현실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북촌문화포럼 이주연 사무국장은 “역사탐방로 조성이란 명목 아래 현재 살고 있는 보행자의 행태는 고려하지 않고 겉보기에 그럴싸한 길을 만들어 결과적으로는 전통문화를 박제화시켜 온 것이 현실”이라며 “달동네의 생활 형태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주거 문화처럼 공동체적 문화를 살려 나가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시정 개발연구원 도시설계팀 정석 연구위원은 서울시가 벌이고 있는 북촌 정비 사업에 대해 “돈 쓰고 욕 먹기 좋은 일”이라며 “난립한 전봇대를 지중화해 한옥의 경관을 살리고 어지러운 간판을 정리하는 등 되도록이면 주민 발의에 따라 하나 둘씩 정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2001~2006년까지 모두 844억의 예산이 잡혀 있는 ‘북촌 가꾸기 사업’은 현재 200여억이 소요된 상태라고 서울시 관계자는 밝혔다. 개발 불가론과 아파트 타운 등으로의 개발론 사이에서 북촌은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중심으로 도심속에 ‘살아 있는’ 마지막 한옥 마을의 명맥을 이으려 애쓰고 있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3/02/27 11:3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