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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손보기] 역대 정부의 재벌 손보기

'걸면 걸렸던 괘씸죄'

‘재벌 개혁’인가, ‘괘씸죄 처벌’인가. 정권 초기 정부와 재계간의 갈등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새 정권이 출범할 때면 ‘통치 명분’으로 재벌 개혁 등을 단행하기도 하지만 ‘특정 재벌 손보기’로 일탈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새로 권력을 잡은 집권 세력이 초기에 “특정 재벌이나 기업을 겨냥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과거 정부의 행태에 ‘괘씸죄 처벌’ 성격이 있었다는 전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하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통령이 되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곤 했다. 검찰ㆍ국세청ㆍ공정거래위원회ㆍ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칼을 활용하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문제는 그런 착각이 착각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른바 ‘괘씸죄’라는 웃지 못할 용어가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 보복ㆍ정계 개편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권력 기관의 칼이 동원됐는가 하면,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해 권력 기관이 나선 경우도 적지 않았다. 후유증은 곧 법과 정부에 대한 신뢰의 실종이다. ‘칼’을 뽑을 때면 언제나 ‘법대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민심과 여론은 법 집행에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대통령이 개별 사안에 대해 ‘엄정 수사’를 지시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은 항상 엄정수사를 해야 하는 기관이지, 어떤 일을 골라 엄정 수사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뿌리깊은 정경유착의 역사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재벌 길들이기는 서슬 퍼렇게 되풀이 돼 왔다. 언제나 경제를 위해 재계는 유야무야 면죄부를 받았고, 동시에 정경유착은 끊이지 않았다. 그 결과, 기업은 정권의 젖줄로 자리를 잡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 뿌리 깊은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 왔을까.

첫 갈등은 해방 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신 백화점 설립자인 고 박흥식 회장 등이 일제와 협력, 부를 축적했다는 이유로 1949년 반민족행위 특별 조사위원회에 의해 체포됐다. 이들은 결국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1960년 4ㆍ19 혁명 직후 과도정부는 자유당 정권에 돈을 주고 기업을 키웠다는 이유로 23명의 기업인을 부정 축재자로 몰았다.

또 5ㆍ16 군사 쿠데타가 터지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쿠데타 12일 만에 칼날을 세웠다. 9명이 특별 구치실로 연행됐고 해외체류 기업인에게 구속명령이 내려졌다. 물론 이들은 산업재건에 이바지할 기회를 준다는 방침에 따라 풀려났다.

재벌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은 5공 당시다. 정통성이 취약했던 전두환 정권은 집권직후 주요 공직자를 부정축재 혐의로 처단하면서 부정 축재를 도왔다는 이유로 기업인들을 몰아붙였다. 국제그룹과 명성그룹은 이른바 괘씸죄에 걸려 아예 공중 분해되기도 했다.

국제는 1985년 2월 부도를 내고 해체될 때까지 2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7위의 기업이었다. 제2 금융권에서 2,000여억원의 여신을 회수한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이는 2개월여 전인 1984년 12월 정부가 국제그룹에 대한 약 860억원의 ‘완매 대체환 지원 방침’을 바꿔 ‘정부 눈밖에 났다’는 것을 알린 후 예고된 것에 가까왔다.

국제그룹 해체를 둘러싸고 구구한 해석이 있으나 당시 양정모 회장이 전두환 대통령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93년 7월, 국제그룹 양 전 회장이 낸 헌법소원에서 5공화국 당시 국제그룹 강제 해체 작업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첫 위헌 심판이었다.

최근 경제부총리 물망에 오르는 김종인씨가 경제수석으로 재벌 개혁을 진두지휘하던 6공 당시, 불요 불급한 재벌 소유 부동산을 팔아치우게 강요한 5ㆍ8부동산 조치로 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악화됐다.

현대에 대한 전면 세무조사와 1,300여 억원의 세금 추징, 금융 제재 등 정부가 강행했던 현대와의 전쟁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문민 정부 시대에 현대는 정주영 전 회장에 대한 보복으로 핍박을 받은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92년 대선 이후 나와 현대에 가해진 정치 보복은 생각하기도 싫다. 소도 말도 웃을 후진국적 정치 폭력이 백주에 횡행했다”고 기술했다.

당시 현대는 산업은행의 설비자금 대출중단, 해외주식예탁증서(DR) 발행 불허 등 여러 가지 제재를 당했다. 산업자원부의 한 국장급 간부도 “대선 전에 금융기관과 함께 설비도입 계약을 마쳤는데 선거가 끝나니까 아무런 설명 없이 대출을 중단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할 정도였다.

역사는 기술하는 사람에 따라 아이러니컬 할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의 회고록에서 정 반대의 입장을 피력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나는 그(정 회장)를 인신 구속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를 청와대로 불러 ‘당신은 처벌 받아야 할 사람이지만 경제를 염려해 사면할 것’이라고 통보해 주었다. 그는 뜻밖의 관용에 크게 놀라면서 대단히 고마워했다.”(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하권 92쪽)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1995년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 정태수 당시 한보그룹 총회장을 비롯, 재계 총수 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기도 했다. 또 2월 고 최종현 선경(현 SK) 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한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업종 전문화 등 정부 정책을 비판하자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은 돌연 선경그룹 계열사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최 회장이 홍재형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을 찾아가 사과한 뒤 정부 조사는 서둘러 마무리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개혁의 칼에 부침 거듭

DJ 정부도 임기초반 공정거래위원회를 동원해 재벌 개혁에 나섰다. 1997년 대선에서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것으로 지적을 받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 대해 국세청은 99년 9월 보광 그룹 세무조사 결과를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보광그룹 홍 회장일가에 262억원의 탈루 세액을 추징했다.

대검 중앙수사부는 98년 10월 홍 회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조세포탈)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배임) 혐의로 구속하고 서울구치소에 수감했다.

중앙일보는 “세무조사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했으나 언론개혁시민연대를 포함한 언론 단체들은 “언론사도 성역이 아닌 이상 철저히 세무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진그룹도 99년 4월 날벼락을 맞아야 했다. 고 조중훈 한진 그룹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잇따른 항공기 사고와 관련, “대한항공은 근본적으로 전문경영인이 나서서 인명 중시 경영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언급한 후 이틀 뒤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한진은 고강도 세무조사의 고초를 겪어야 했고, 조 회장은 ‘부도덕한 오너’로 내몰려야 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2003/03/0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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