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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욕심은 개혁을 망친다

DJ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모 인사가 사석에서 개혁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나무를 베어내면 산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중간에 자리를 잡고 꿈쩍도 하지 않아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의 말은 산을 바꾸기(개혁) 위해 나무를 베어냈는데(인적 쇄신), 나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바위덩어리(사회 기득권층)가 저항 세력 으로 남아있더라는 뜻이다.

전직 장관이 인정한 것처럼 말이 쉽고 좋아서 개혁이지, 개혁하기란 진짜 어렵다. 기득권층의 저항은 당연하다고 치더라도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것 같으면 나중은 생각도 않고 반대하고 보는 게 사람 마음이다.

또 조직이나 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단단할수록 더욱 어려운 게 개혁의 속성이다. 그래서 개혁의 길목에서 반민주적인 수단이 가끔 동원되기도 하고, “개혁에 가장 좋은 방법은 독재”(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그루지야 대통령)라는 이율배반적인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셰바르드나제와 함께 소비에트 체제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을 시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사실은 독재자였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80년대의 인물’로 꼽힌 그는 20세기의 한 시대를 이끈 최고 지도자답게 기득권층인 공산당 조직을 틀어쥐고 변화를 희구하는 인민의 소리를 교묘히 조합하는 카리스마를 과시했지만, 결국은 ‘독재의 효율’을 가장 잘 이용한 정치가였다.

그가 개혁 추진의 뇌관으로 일반 대중을 끌어들인 것은 의회의 개편이 그 시발점이 됐다. 기존의 공산당 중심 의회를 대체하는 인민대표대회에 공산당원이 아닌 비당원, 사회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권력 핵심이 아닌 변방, 늙은이가 아닌 젊은이를 대거 흡수해 바위덩어리 같은 당 체제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 개혁성향의 인민대표대회 대의원들을 대거 초청해 당이 자신의 개혁노선을 감히 반대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당 보수세력과의 심리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개혁을 밀어붙인 고르바초프도 참고 기다리는데 이골이 난 소련 인민들로부터 집권 4년여만에 “개혁은 말뿐”이라는 비난을 받고 보리스 옐친이라는 급진개혁세력의 도전에 직면했다. 급기야는 91년 8월 쿠데타를 계기로 옐친 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인반 대중의 환호속에 등장한 옐친 정부는 가격자유화를 필두로 한 급진개혁정책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당 중심의 기존질서는 무너졌으나 새 질서가 정착하기 까지 러시아는 ‘카오스’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정부패도 극도로 심했다.

좀 엉뚱할지 모르지만 DJ정권 5년을 40년 가까운 영남정권을 호남정권으로 바꾸는, 공산당 체제를 혁파한 고르바초프식 개혁의 시기라고 보면, 노무현 정부는 옐친 정권에 해당한다. 정권 출범 전후나 환경, 면면 등이 서로 닮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민주화ㆍ개혁을 외치던 진보 인사들이 권력 실세로 변신하고, “정권을 위해 봉사해온 권력기관은 국민을 위해 거듭나야 한다”(3ㆍ1절 기념사)는 외침은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던 당 우위 권력 체제를 완전히 바꾼 옐친과 비슷하다.

참여정부 첫 내각을 발표하던 날 직접 마이크를 잡는 노 대통령의 모습은 신선함을 넘어 옐친에 못지 않는 카리스마로 비춰졌다. 일부 장관 인선의 ‘파격’지적에 “누구하고 비교하더라도 그 분야에서는 최고”라고 자신하는 말투도 닮았다.

사실상 실패로 끝난 옐친식 개혁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너무나 확신에 찬 옐친 대통령의 자신감, 독선은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당의 이단자로 핍박받고, 비주류의 지지속에 목숨을 건 쿠데타 과정을 거쳐 ‘개혁 독재자’ 고르바초프를 밀어내고 크렘린에 입성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욕심만으로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옐친 정부가 남긴 교훈이다. 개혁을 하겠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개혁적이지 않은 사람이 더 힘을 갖고 있다는 뜻이고, 원래부터 개혁은 그 성과가 더디게 나오는 법이다. 그래서 실패하기가 쉽다.

국민통합과 개혁을 내세운 노무현 정부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개혁 독재자’가 아닌 만큼 5년 단임이라는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 기간에 일궈야 할 목표를 정한 뒤 전략과 전술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그리고 다음 정권에게 개혁의 성과를 물려줄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개혁의 시작이 성공의 절반이 아니라 실패의 절반이 된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3/03/0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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