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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불타는 ‘팍스 아메리카나’

한니발 장군은 나폴레옹보다 거의 2천년 가까이 앞선 BC 217년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로 진군했던 카르타고의 명장이다. 그가 이탈리아 남부 칸나에 평원에서 로마군을 박살낸 ‘칸나에 전투’는 세계 모든 육사 교과서에서 다뤄질 정도다.

한니발 장군은 역사에 길이 남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지만 조국 카르타고를 지켜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지중해 패권을 노리고 있던 로마를 격분시켜 제3차 포에니 전쟁(BC 149~146)에서 로마군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

카르타고 공격을 지휘한 로마군 총사령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불타는 카르타고 시내를 내려다 보며 곁에 있던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에게 말했다.

“여보게 폴리비오스, 우리는 지금 과거에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는 비애감이라네”(시오노 사사미 저 ‘로마인 이야기’에서)

스키피오의 카르타고 원정에 동행했던 폴리비오스는 ‘역사’에서 로마가 카르타고를 침공하기 전에 제시한 최후통첩, 즉 카르타고를 떠나 다른 곳으로 완전히 이주하든가 전쟁을 하든가 양자택일 하라는 가혹한 요구를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니었다’고 보았다. 로마측은 한 술 더 떠 ‘정의의 전쟁’이라 불렀다.

그러나 후세 사가들은 로마가 숙적 카르타고를 무찌르고 ‘팍스 로마나’(로마의 힘에 의한 평화)의 길을 연 제국주의 ‘패권 전쟁’으로 본다. 이 전쟁은 로마군의 대공세에 맞서 3년을 버틴 카르타고의 집정관 하스도바가 끝내 항복하자 그의 부인이 남편을 배신자라 부르며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진 처절한 항전으로 기록돼 있다.

미국의 대공세에 벼랑으로 몰린 이라크가 바그다드에서 카르타고 항전에 버금가는 저항을 보일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일사천리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1991년 걸프전이나 99년의 코소보 전쟁, 2001년의 아프간 전쟁 보다 훨씬 싱겁게 끝날 듯하다.

군대생활에서 수없이 외쳤던 ‘초전박살’이라는 용어가 이토록 실감날 수가 없다. 대통령궁과 주요 군사시설에 향해 초정밀 폭탄으로 타격을 가한 개전 초기에는 미국이 초전박살 보다는 특수부대의 기습공격에 의한 후세인 제거에 초점을 맞췄나 했더니 며칠 만에 바그다드를 불바다로 만들고, 대대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하는 초강수로 전환했다.

그야말로 입체적인 ‘충격과 공포’의 작전인데, 이미 항복한 이라크 군인이 1만명을 넘었다니 이건 전투가 아니라 무슨 게임같다. 미국은 야전에서 전투보다 투항한 포로를 관리하는데 더욱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다.

전쟁이 이렇게 끝나면 보는 사람들이 허탈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전쟁 영화 보다 멋진 전투장면이나 미군이 픽픽 쓰러지는 베트남전과 같은 상황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일방적이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선전포고가 ‘정의’로 결말 나는 게 영 마뜩찮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개전의 명분으로 이라크 해방과 세계평화에 위협이 되는 대량살상무기의 사전 제거를 내세웠지만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세계적인 반전시위를 보면 설득력이 약하다. 2차대전후 다양한 국제분쟁을 조정해온 유엔을 무시하고 단독 공격에 나섰다는 점에서 ‘정의의 전쟁’을 주장한 로마의 카르타고 침공과 다를 바 없다.

또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을 넘는 미사일을 1천여발이나 퍼붓고, 전쟁 이후 재편될 세계 석유시장 판도를 감안하면 이번 전쟁이 부시 가문을 비롯한 석유 메이저와 군수분야 메이저의 이해가 일치한 전쟁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반전 시위에 등장한 ‘자유의 여신’이 한 손엔 미사일, 한 손엔 석유통을 든 모습이 상징적이지 않는가?

냉전이후 유엔과 나토, 미국이란 ‘3개의 축’으로 이뤄지던 신 세계질서가 이번 전쟁으로 초강대국 미국의 손에 완전히 넘어간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평화(팍스 아메리카나)의 본격 개막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지적한 것처럼 ‘오만한 제국’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북한 핵문제를 이유로 은연중에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나 않은지….

시오노 사사미는 베스트 셀러 ‘로마인 이야기’에서 전쟁엔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 정의와 비정의는 없다고 말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우리로서는 정의보다는 승자의 이해에 따라 엇갈리는 냉혹한 국제질서를 인식해야 겠지만 강대국의 ‘정의’에는 한번쯤 의문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오만한’ 미국에게 고하건대, 불타는 바그다드를 보며 로마군 총사령관 스키피오의 심경을 되뇌어야 한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3/03/3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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