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즐겁다] 화순 운주사

미륵 세상의 염원이 서린 천불천탑

전남 화순 운주사는 천불천탑의 신화를 간직한 절이다. 이 땅에 살다간 민초들의 정령(精靈)같은 석불들이 천불산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 한가로이 봄 햇살을 즐기고 있다.

봄햇살은 땅을 베고 누운 와불의 정수리에 내리쬔다. 키만 훌쩍 큰 석탑의 행렬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햇살은 바위에 기댄, 풍화로 씻긴 석불의 얼굴에도 미소를 띄게 한다.

운주사는 가람 배치가 빼어난 절이 아니다. 국보급 문화재를 품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산세가 절경이거나 깊고 그윽한 계곡을 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질어질 아지랑이 피는 봄날이면 꽃에 나비 날아들 듯 운주사를 찾는다. 운주사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운주사의 저력은 무수한 석불과 석탑에 깃든 설화에서 나온다. 운주사를 창건한 이는 풍수지리의 뼈대를 세운 신라 말의 선승 도선국사로 알려졌다. 도선은 한반도를 ‘떠 가는 배’의 형국으로 여겼다. 도선은 산세가 크게 형성된 동쪽으로 배가 기울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조성했다고 한다.

운주사가 간직한 설화의 백미는 와불에 있다. 천불산 왼쪽 기슭에 자리한 와불은 높이 12m, 폭 10m에 이른다. 좌상과 입상을 한 석불 2기가 나란히 누워 있는 이 와불은 소설가 황석영의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


용화세상 이끌 메시아 ‘와블’

황석영은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와불을 용화세상으로 이끌 메시아로 등장시킨다. 천불산 골짜기에 천불천탑을 세우고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미륵세상이 도래한다는 내용이다. 와불은 도선국사가 신통력을 부려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조성할 때 공사에 싫증을 느낀 동자승이 거짓으로 닭이 울었다고 고해 미처 일으키지 못했다는 전설도 있다.

‘장길산’이 나온 때는 1980년대 초. 광주항쟁 이후 절망한 지식인들은 ‘장길산’에 묘사된 와불 이야기를 가슴에 새긴 채 운주사로 몰려들었다. 이루지 못한 꿈을 간직한 와불을 보며 그들은 울분을 달랬다. 이들로 인해 이름도 없는 시골의 궁벽한 절, 운주사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운주사는 미궁의 한 가운데 있다. 운주사를 방문한 이들은 도대체 누가, 왜, 이렇게 많은 석불과 탑을 조성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당시의 기술로는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와불을 비롯해 형식과 틀을 무시한 탑과 석불의 파격미는 궁금증을 넘어 당혹감을 안겨준다.

전남대 학술조사단의 발굴 조사결과 석불이 조성된 시기는 창건주로 알려진 도선국사가 활약한 연대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고려 초기 나주평야를 지배하던 지방호족의 도움으로 천불천탑이 조성되었다는 것만 추정될 뿐이다.

운주사에는 탑 19기, 석불 93구가 전해진다. 일제시대만 해도 지금보다 2배나 많았다. 한국전쟁 후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자 묘석상이나 주춧돌, 더러는 밭두렁을 쌓는 석축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민초들의 자화상이 그곳에

운주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대웅전을 향해 탑들이 창처럼 도열해 있다. 돌로 집을 지어 석불을 안치한 것도 있고, 기단을 원형으로 깎아 만든 탑도 있다. 황톳길 오른편에는 모양이 제각각인 석불이 바위에 기대어 있다. 얼굴 윤곽은 비바람에 씻겨 대부분 지워졌다. 빙긋이 미소 띈 석불의 얼굴. 이 땅에 살다간 민초들의 자화상이다.

절 왼쪽 산비탈을 오르면 와불이 누워 있다. 사람들은 와불을 돌아보며 ‘일어설 수 있을까’를 가늠해 보다 자리를 뜬다. 와불 밑에는 원형으로 깎은 7개의 바위가 놓여 있다. 큰 것은 지름이 3m 가까이 된다. 칠성바위라 불리는 이 돌들은 북두칠성을 본 떠 만든 것이라 한다.

대웅전에서 뒷길로 오르는 길에도 몇 기의 석불이 서 있다. 4월 중순이면 산벚나무가 만개해 석불에게 하얀 지붕을 선사한다. 뒷길 끝은 공사바위에 닿는다. 운주사 경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다. 공사바위는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조성할 때 공사를 감독하던 자리라고 한다. 공사바위에 서면 봄햇살이 어깨를 눌러 주저앉힌다. 눈을 들면 아지랑이 탓에 운주사 경내가 흐릿해진다. 나른한 꿈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다.


▲ 가는길 - 운주사는 광주를 거쳐 간다. 경부와 천안~논산,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동광주IC로 나온다. 광주 제 2외곽순환도로를 따라 가다 소태IC로 나오면 29번 국도와 만난다. 29번 국도를 이용, 화순읍과 능주를 지나 춘양에서 822번 지방도를 따라 가거나 능주에서 도곡을 거쳐 간다. 서울 기준 5시간 소요.

대중교통은 광주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광주까지는 5분 간격으로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일반 1만3,000원, 우등 1만9,200원. 광주터미널에서 운주사로 가는 시내버스는 20~5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 먹을거리 - 운주사 입구에 있는 용강식당(061-374-0920)은 추어숙회(사진)와 추어탕이 별미다. 추어숙회는 달군 돌판에 양파를 깔고 매콤하게 익힌 미꾸라지를 놓는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두르고 미꾸라지 위에 부추를 얹어서 나온다. 추어숙회는 초장을 찍어 깻잎에 싸먹어야 맛이 난다. 추어숙회 2~3만원, 추어탕 6,000원. 찹쌀과 누룩을 띄워 집에서 손수 빚은 청주(5,000원)도 별미다.


▲ 숙박 - 운주사 입구에 머물 곳은 식당과 겸하는 민박집 두 곳이 전부다. 화순읍이나 도곡온천의 여관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화순읍에는 대화각(061-374-6318), 금강각(061-374-8111), 도곡온천지구에는 도곡온천프라자(061-375-8082), VIP호텔(061-375-6066) 등이 있다.

입력시간 2003/04/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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