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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공비·접대비] "술·골프 빼면… 뭘로 엮으라고"

기업들 국세청 접대비 불인정 방침에 "어찌하오리까"

“접대는 해야겠고 룸 살롱과 골프장은 안 된다고 하니 서양식 파티라도 열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삼성전자의 통신영업팀은 최근 국내 거래처 관계자들을 미사리 조정경기장으로 초청, 친목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조정시합을 열고 바비큐 파티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행사에 참석했던 김모(39)차장은 “참가자 중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있어 분위기가 어색할까 걱정했지만 술이나 골프 모임 못지않게 화기애애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4월2일 미국 유럽 아시아 등 15개국 주요 바이어와 부인 50여명을 초청, LG제품과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당시행사에는 LG전자 임원들도 부부동반으로 참가했으며, 무도회 만찬과 한국 전통문화 체험, 한강 유람선 투어 등의 행사를 함께 했다.


"생돈 쓰라는 얘기냐" 난감

국세청이 내년부터 룸살롱과 골프 경비를 접대비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나서자 기업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접대비로 인정 받지 못하면 세금혜택도 없어 그야말로 생돈을 쓰라는 얘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접대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긍정적 시각도 있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국세청의 접대비 인정축소방침이 전해지자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난감해 하는 반면 외국계 기업들은 당연한 조치라고 환영하고 있다.

한국바스프㈜의 조병렬 팀장은“룸살롱, 골프접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며 “술을 많이 마시면서 비즈니스하는 것을 정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의 하태응차장은 “외국기업은 2차,3차로 이어지는 음주문화 자체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한다”며 “골프의 경우도 토나먼트 대회를 여는 식으로 이벤트를 갖지만 개별적인 골프접대는 상상도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기업 쪽으로 가면 얘기가 다르다.

한 대기업 전무는 “외국처럼 파티문화가 없는 한국적 풍토에서 술과 골프를 빼면 접대할 방법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기업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을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 아니냐고 반문하는 의견도 있었다.

ㄱ기업 관계자는 “접대장소는 기업이 필요에 따라 정하는 것인데 이를 정부가 구체적으로 지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접대의 업무 관련성 업무여부를 ‘장소’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기업 관계자는 “골프장에서 접대하는 이유는 기업이 원해서 라기 보다는 매스컴에 골프 경기가 자주 방송되는 등 시대의 흐름이 그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강제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또 과대한 접대비의 경우, 정부가 단속하기 전에 기업이 스스로 알아서 제동을 걸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자동차회사 관계자는 “임직원이 과도하게 지출할 경우에는 현재도 국세청에서 단속하기 이전에 기업 내부의 감사 시스템에 의해 징계를 받는다”며 “접대방법과 규모가 몇 가지로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어느 것은 되고 어느 것은 안 된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일부 기업들은 기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 접대비를 줄여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ㅂ기업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접대비 총액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며 “이는 누가 시켜서 라기 보다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 스스로의 논리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다른 업종에 비해 접대비 비중이 높은 업종의 회사들은 초비상이다. 한 제약회사 임원은 “브랜드 가치나 시장 지배력이 열세인 중소형 제약 회사들로선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또 주류업계 역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접대문화가 달라지면 직격탄을 맞게 될 위스키 업계도 초비상이다.

전체 소비량의 80~90%가 고급유흥업소에서 소비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 법인세법이 시행될 경우 가뜩이나 불경기 여파로 매출부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매출급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편법·음성화로 투명성 저해될 수도

법규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경우 나타나기 마련인 편법도 접대 문화에서 판을 칠 전망이다. 중소 전자업체 임원은 “기업의 접대행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편법적인 접대도 성행할 것으로 본다. 오히려 이번 조치가 위장 가맹업체들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지 않을 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룸 살롱이 영수증이 접대비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룸살롱이 음식점 명의로 변태영업을 하거나, 다른 음식점 영수증으로 대체하는 등 오히려 우리 사회 전체의 투명성을 저해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변태 영업조차 불가능한 골프장 업계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미 일본에서 비슷한 조치로 골프장이 줄줄이 도산을 했기 때문에 국내 골프장 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골프장 협회 관계자는 “박세리 같은 선수가 줄줄이 나오는 나라에서 골프와 룸살롱을 같이 취급하는게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기회에 접대문화를 바꿔 보자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최근 1,400명의 우수 고객을 초청,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춘희’를 관람하도록 하는 고객 사은 행사를 했다. 또 투자자문회사인 한국기술투자는 2000년부터 기부금 형태로 오페라단을 후원하고 오페라단 공연에 주요 고객들을 초청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접대문화지만 고객들의 호응도 적지 않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부장급 이하 직원들의 접대골프를 아예 금지하는가 하면 룸 살롱 등 고급 유흥점 접대행위를 일체 금지했다. 현대자동차는 룸 살롱과 접대골프를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신호제지는 명절 때 선물 안주고 안받기 운동을 펼친데 이어 접대비도 예산을 세워 지출토록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2003/04/2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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