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영화와 드라마 작품의 성공의 열쇠

주연급 캐스팅이 시청률·흥행 좌우하는 주요변수

이영애가 드디어 출연한다. 그녀가 택한 작품은 MBC 창사 특집 사극 ‘대장금’(9월 중순부터 방송예정). 굳이‘드디어’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영화 ‘봄날은 간다’ 출연 이후 2년 동안 영화나 드라마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광고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어 구구한 억측들을 나돌게 했기 때문.

그녀는 그 동안 ‘명성황후'를 비롯한 숱한 드라마와 영화 출연 제의를 거절해 왔다. 방송으로 복귀는 SBS ‘불꽃’ 이후 3년만 이다.

그녀의 드라마 복귀가 관심을 끄는 것은 톱스타의 오랜만의 작품 출연이라는 점뿐 만은 아니다. 방송가에서는 그녀가 김혜수 전도연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지 지켜보고 있다. 김혜수 전도연은 드라마에서 활동하다 인기를 얻은 뒤 충무로에 건너가 영화 흥행에 성공, 드라마 최고 출연료 기록을 갱신하며 드라마에 복귀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아니 미스 캐스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 시청률 불패신화를 구축했지만 최근 개봉된 ‘화성으로 간 사나이’까지 출연 영화에선 번번이 저조한 흥행 성적을 기록한 김희선도 회당 1,000만원대라는 최고 출연료를 보장받고 8월 중순부터 SBS를 통해 방송될 드라마(2000년 일본 후지TV에서 방송된 ‘야마토 나데시코’의 리메이크한 작품)에 이미 주연으로 캐스팅 된 상태여서 이영애와 김희선의 드라마 복귀의 성공 여부가 시청자의 호기심의 중앙으로 부상했다.


인기와 연기력의 괴리

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어 충무로로 진출한 배우들, 충무로에서 주목을 받다 최고의 출연료를 보장받으며 드라마에 복귀하는 연기자들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작품이나 배역의 성격에 관련 없이 단지 인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캐스팅 하는 제작 관행과 그에 따른 작품의 완성도 저하에 대한 우려와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연기자의 선택은 작품 선택보다 어렵다”는 KBS 장기오PD의 말처럼 연기자 캐스팅은 작품의 성공을 좌우하는 매우 주요한 변수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있어 세 축을 형성하는 감독 또는 PD, 작가, 연기자의 가중치는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분명 연기자의 캐스팅은 드라마의 시청률과 영화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좋은 작품은 좋은 캐스팅이 전제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 캐스팅 됐으나 대하사극 KBS ‘장희빈’에 출연한 김혜수. 최고액의 드라마 출연료를 받고 화려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출연했으나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방송사 사이트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김혜수의 미스 캐스팅을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또한 영화 출연료 사상 최고액인 4억5,000만원에 러닝 개런티까지 보장받고 장고 끝에 ‘이중 간첩’에 출연한 흥행불패 신화의 주인공 한석규가 이 작품의 흥행 실패의 적지 않은 원인 제공을 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단지 스타라는 이유로 미스 캐스팅을 했다는 비판이다.

이처럼 미스 캐스팅은 작품의 실패에 치명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최근 영상매체의 급증과 영화 시장의 확대,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환경의 급변으로 연기자의 수요 특히 스타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주연급 연기자의 캐스팅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방송 영상시장이 커지면서 스타 캐스팅을 둘러싼 영화사와 방송사의 물량공세도 엄청나다.

“스타를 잡기 위해 촬영장에서 하염없이 죽치고 기다리고 있거나 수십번씩 다이얼 버튼을 누르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명필름 대표 심재명의 말이나 “쓸만한 드라마 연기자는 웬만큼 인기를 얻고 지명도를 얻으면 모두 영화계로 진출해 드라마 캐스팅할 때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광고 몇 편 출연이 전부인 신인을 주말 드라마나 미니시리즈에 기용하는 것은 캐스팅의 어려움을 반증하는 것이다”라는 이승렬PD의 언급은 스타 캐스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작품 사활 건 스타 캐스팅

특히 최근 들어 영화사나 방송사가 스타 캐스팅에 집착한 것은 자본 투자자의 요구와 시청률 경쟁 때문이다. 방송사간 경쟁뿐만 아니라 영화사와 방송사가 뒤 얽혀 스타 캐스팅을 위한 전쟁을 벌인다.

거대자본이 투자되는 블록버스터형 영화가 제작되면서 영화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투자 결정에 있어 시나리오, 작품의 완성도, 감독의 독창성을 보기보다는 어떤 스타를 캐스팅 했느냐를 먼저 따지는 경향으로 인해 영화계에선 스타 캐스팅에 영화의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광고와 시청률을 연계하는 시청률 광고 연동제가 시행되고 드라마 규모도 영화처럼 블록버스터형을 지향하면서 스타급 배우들에게 회당 700만원이 넘는 출연료를 보장하며 캐스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다수의 스타를 보유한 연예 기획사의 파워가 강해지면서 출연 교섭에 우위를 확보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거나 출연료만을 고려해 작품에 출연시키는 경향이 강해진 것도 스타 캐스팅의 어려움을 더해 주고 있다.

오죽했으면 방송가나 영화가에선 ‘십돌이’ ‘십순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작품에 들어갈 때 캐스팅 후보 10순위까지 고려해 1~9순위까지 출연 섭외를 하다 거절당해 캐스팅 후보 10순위가 출연하는 경우를 두고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이같은 캐스팅 경향은 적지 않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운 좋게 인기 스타를 캐스팅 했다고 해도 겹치기 출연으로 배우가 하자는 대로 이끌려 가다보면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지게 마련이다”는 장기오PD의 설명이나 “특정 배우를 캐스팅하려다 그 배우가 거절해서 다른 배우로 대신했는데 그러면 그 순간 영화의 컨셉을 바꿔야한다. A라는 배우가 안돼서 B라는 배우로 돌아서면 그 배우에 맞게 컨셉을 바꿔 줄만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B라는 배우도 바빠서 그나마 출연해주는 것이 고마운 형편이다 보면 A라는 배우의 컨셉에 맞춰서 B라는 배우로 찍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작품의 질에 문제가 생긴다”는 싸이더스의 조민환PD의 말은 이 같은 캐스팅이 작품의 완성도에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기자의 캐스팅은 작품의 성격, 그리고 배역의 특성, 그리고 배우의 연기력과 이미지를 종합해 결정한다. 캐스팅 담당자들이 겪는 중요한 딜레마의 하나는 연기의 노련함에서 오는 작품성 제고와 신선한 배우를 쓰는데서 오는 청량감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다.

능력있는 연기자의 경우 대부분 비슷한 성격의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한 경력 때문에 신선감은 떨어지지만 반면 신인을 선택했을 경우 이미지 구축에는 성공하겠지만 불확실한 연기력으로 인해 작품의 성과는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영화, 검증된 스타 선호

제작 환경의 차이로 인해 대체적으로 영화는 연기력과 인기가 검증된 스타를 캐스팅하고 드라마에선 영화에 비해 보다 많은 신인을 기용하는 추세이다.

광고 몇 편 출연이 고작이었던 손예진이 연기자 데뷔작인 MBC ‘맛있는 청혼’에 주연으로 나서 청순함을 시청자에 각인 시켜 스타로 부상하고 장신영이 첫 출연작 SBS일일극 ‘해뜨는 집’의 주인공을 맡더니 곧바로 캐스팅된 MBC 주말극 ‘죽도록 사랑해’의 주연으로 나선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보통 캐스팅을 결정하는 것은 영화와 드라마가 차이가 있다. 드라마의 경우, 주로 연출자(PD)와 책임연출자(CP)가 상의해 결정한 뒤 국장에게 보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대형 스타급의 경우 국장급과 임원급과 의논해 결정한다.

물론 김수현 이환경 등 스타급 작가가 드라마를 집필할 경우 작가도 캐스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영화는 투자자의 입장을 고려해 감독과 영화기획자, 프로듀서 등이 협의를 거친 다음 연기자 캐스팅을 하게 된다.

방송사와 영화사 제작진의 선택으로 캐스팅이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니다. 최종 결정은 스타와 스타가 소속된 연예 기획사의 계약에 의해 이뤄진다. 여기에서 스타와 연예 기획사의 작품 해석이나 캐릭터와 스타의 이미지 관계, 그리고 연기력의 정도, 스타의 상품성 제고 등을 고려하는 작품 선구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스타와 연예 기획사가 수익만을 생각하는 거래 지향적인 추세가 강해지면서 돈 많이 주는 작품에만 출연해 결국 스타의 상품성과 생명력을 잃는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방송사나 영화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경우 작품 성격과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선정하고 캐스팅 하는 전문 캐스팅 디렉터가 있지만 우리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제작자와 감독, 그리고 연출가와 책임 연출자의 선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타 캐스팅만이 만사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스타를 ‘대단히 문제가 많은 필수품’이라고 했겠는가.

또한 신인 캐스팅이라고 모두 위험이 높은 것은 아니다. 신인을 기용해야 대중문화의 토양을 풍부하게 해줄 연기자가 양산되는 것이다. 이제 연기자 캐스팅은 스타 여부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배우와 캐릭터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의 완성도면에서 결정돼야 작품도 살고 배우도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6/04 18:12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