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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아침폭풍이 부는 나라

휴전협정 50주년, 한국전쟁 발발 53주년을 앞두고 2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열린 ‘반핵반김(정일) 한ㆍ미동맹 강화 6ㆍ25 국민대회’에는 11만명(경찰추산)이 모였다.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은 “현재 안보상황은 6ㆍ25때보다 더 위태로운 상태인데도 일부 젊은이들은 김정일 정권에 맹목적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대회사에서 주장했다. “태극기를 밟지 말고 수거 해 갑시다”는 사회자의 요구에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 했는지는 TV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2000년 7월,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아 무명의 보스턴 출신 베리 브리그스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일어난 동족상잔의 전쟁에 빠져 미국과 한국민간에 생긴 새로운 관계를 소설화 했다. 제목은 ‘아침폭풍이 부는 나라’.

이 책은 미국 최대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닷컴에 80만3,000부가 팔린 것으로 5월말 집계됐다. 이 책의 독자인 에릭 쿠에나펠은 “20세기, 냉전시대를 이렇게 잘 묘사 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한 대가족의 전쟁을 통한 변화와 한국 여성과 미군의 사랑 이야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능가한다”고 평했다.

재미동포인 김치완은 “이 소설 읽지 않고 20세기를 넘긴다는 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지않고 넘긴 것과 같다. 한국전쟁이 미국과 한국의 어린이, 여성, 남성에 미친 친밀한 이야기가 이 소설에는 있다. 두 연인, 두 세계지도자(트루먼, 마오쩌둥)가 펼치는 ‘잊어버린 전쟁’에 대한 영웅담, 무용담은 흥미 이상이다”고 평했다.

‘아침폭풍이 부는 나라’를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었을까? 한국전쟁 당시 전폭기 조종사로 참전한 윌터 브리그스 대위의 아들인 저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인 브리그스는 아버지가 참전 후 미국에 돌아와 자신이 태어났기에 ‘한국전쟁 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그의 부인 김봉임도 ‘한국전쟁 아이’였고 참혹한 전쟁에 질려 미국에 온 부산출신 이민동포의 첫 딸이었다. 그는 5년 여를 아내의 나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그의 아버지 어머니, 장모 장인, 그리고 아내를 통해 형상화했다.

소설은 헤이 알렉산더 미 군사고문단 소속 육군대위, 그의 동생 해병대 전투조종사 주스 대위, 한국 추풍령 아래쪽 직지사 근처의 태백마을 촌장의 아들 박병식, 그의 동생 인민군 정치장교 박변식 대위 등 네 주인공이 휴전을 앞두고 미국 보스턴과 태백마을에서 펼치는 대화에서 끝난다.

먼저 보스턴의 주스 집안에 있는 바비큐 파티에는 형 헤이의 아들 헤이 2세가 두살박이로 나온다. 눈이 갈색인 이 아이는 어머니가 미 대사관 통역으로 있다가 피난민 수용소에서 죽은 김경애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다. 또 다른 주인공은 보스턴 그로브의 여기자로 주스와 신혼여행 중 한국전에 소집된 남편과 헤어진 앨리. 그리고 53년 6월에 겨우 두달박이가 된 주스2세(소설가 브리그스로 추정됨)이다.

먼저 형인 헤이가 말했다. “재미 있는 점은 여지껏 이 전쟁 이야기나 뉴스 속에는 한국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다. 한반도에는 한국인이 있는데 왜 언급이 없는가. 미국이나 중국이 폭풍의 핵인 것처럼 떠들면서…. 한국인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가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다는 말인가. 나는 정말 알 수 없다.”

그래선지 헤이는 하와이대에서 한국역사를 가르치며 그의 아들을 키웠다. 그리고 제수인 앨리에게 말했다. “죽은 이 아이 어머니가 미국인인 아들이 인종 차별을 받을까 우려했다. 죽은 마누라는 부상한 나를 치료해주고 나를 수색하러 온 여자 인민위원을 칼로 찔려 죽였다. 지금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없는 곳은 하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 가서 홀아비로 살겠다.”

한편 태백마을에서 이번 전쟁으로 아버지, 큰형, 막둥이 동생을 잃은 박변식, 탈식 형제는 아버지 무덤 앞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인민군 정치장교였던 탈식은 한국군 1사단 소속이었던 큰형 안식 대위를 탱크포격으로 전사케 한다. 개선군으로 태백마을에 온 그는 인민위원장이 그의 아버지를 ‘악질지주’, ‘인민의 착취자’로 처형했다는 소식은 듣고 그를 사살한다.

이런 그가 형에게 말한다. “이번 전쟁 속에서 나를 찾았다. 나는 공산당이나 김일성 주장이면 세계를 공평하게 해방하리라 생각했다. 나는 인민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구원 받기 원하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사람에게는 그들이 구원을 원하는지를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 하는데 그걸 몰랐다. 내가 옳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옳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좋은 의사가 되어 이런 죄를 벗어 났으면 한다.”

소설 속 후기에는 탈식은 서울대를 나와 캘리포니아 의대에서 심장의가 되고 70세에 하버드대 신학원을 나와 목사가 된 것으로 되어있다. 시청 앞 군중을 보면서 ‘아침폭풍’을 견뎌낸 나라가 북쪽 핵풍 문제도 현명하게 풀지 않을까 자위해 본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3/06/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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