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의 구매심리를 한 순간에 꽁꽁 얼려버린 국제통화기금(IMF)한파가 몰아치던 지난해말.

국내 통신전문가들은 “이제야 이동통신시장의 과열현상이 진정되면서 휴대폰 삐삐시장도 급격한 감소세로 돌아설 것” 이란 ‘98년 기상예보’ 를 앞다퉈 내놓았다. 가계가 위축되면 불요불급한 소비부터 줄인다는 ‘경제의 ABC’ 를 들며 유선전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필품개념이 약한 이동통신상품을 몰아세웠고, 서비스업체들은 일순 위기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은 해가 바뀌기가 무섭게 완전히 빗나갔다.

IMF한파로 인한 통화콜수감소는 커녕 오히려 가입자가 IMF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최근까지의 실적을 분석해보면 98년 한해는 국내 휴대폰 역사 15년간의 성과를 훨씬 능가하는 실적을 일궈냈다.

98년 휴대폰시장은 연평균 80%가 넘는 초스피드 성장세를 기록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IMF무풍지대’ 임을 입증했다.

84년 첫 선을 보인 휴대폰이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97년초.

휴대폰고객은 96년말까지만 해도 고작 318만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011’ SK텔레콤 ‘017’ 신세기통신에 이어 97년 ‘016’ (한국통신프리텔) ‘019’ (LG텔레콤) ‘018’ (한솔PCS) PCS 3사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폭발적 증가세, 10명당 2명꼴로 사용

가입자가 하루가 다르게 눈덩이처럼 불어 97년 한해에만 370만명이 신규가입, 단숨에 682만여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97년의 고속성장세도 98년들어 무색해졌다. IMF로 인한 위기감이 극에 달했던 올 상반기에도 가파른 급커브를 그리며 엄청난 가속도를 낸 것.

84년이후 휴대폰고객 100만명을 돌파할 때까지 걸린 기간은 12년. 반면 98년 상반기에는 매달 가입자수 ‘100만단위’ 가 바뀌는 폭발적인 팽창기를 과시했다. 1월에는 700만명시대, 3월에는 800만명시대를 돌파했다.

이어 4월에 곧바로 913만여명을 기록, 4개월만에 가입자 100만명단위가 세 번이나 바뀌는 ‘괴력’ 을 과시했다.

94년이후 연평균 95%라는 놀라운 성장세는 IMF시대에도 지칠줄 몰랐다.

IMF한파속의 휴대폰열풍은 100만원을 웃도는 목돈이 필요했던 휴대폰가격이 PCS등장이후 10만원이하로 뚝 떨어졌기 때문. “나도 휴대폰을 이용할수 있다” 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20, 30대의 직장초년생들은 물론 젊은 여성층과 주부, 청소년층이 대거 휴대폰고객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휴대폰은 IMF무풍지대’ 라는 사실은 5월들어 더욱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6월에는 드디어 1,000만가입자를 돌파, 보급률 21.5%로 인구 10명당 2명꼴로 휴대폰을 사용하는 ‘휴대폰대중화’ 시대를 성큼 열었다.

하지만 재계의 빅딜작업과 맞물려 불거진 정보통신산업의 구조조정론과 관련해 많은 전문가들은 “휴대폰시장이 대표적 중복투자사업이며, 통합을 거쳐 2,3개사 체제가 바람직하다” 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 근거로 “경제인구층을 감안해볼 때 휴대폰시장은 1,200만명이 최대치” 라는 전망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도 올 하반기들어 쑥 들어갔다.

매달 업체별로 수십만명씩 신규고객이 몰려들면서 국내 휴대폰 가입자수는 10월말께 1,304만여명으로 늘어났기 때문. 보급률은 무려 28.1%로 높아져 국민 10명당 3명꼴로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전년대비 80% 넘는 초고속 성장

보급률 28.1%는 세계에서 가장 휴대폰보급률이 높은 핀란드(49%)를 비롯해 스웨덴(43.2%) 홍콩(37.1%) 덴마크(28.2%)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수준. 가입자수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6,389만명) 일본(3,408만명) 이탈리아(1,550만명) 중국(1,388만명)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고객을 확보,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세계 5위권 국가로 부상했다.

사업자들의 매출도 전년대비 80%가 넘는 초고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6월말기준 SK텔레콤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200억원이 늘어난 1조3,872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신세기통신은 전년동기대비 2배 가까운 3,151억원, 한국통신프리텔은 2,208억원, LG텔레콤은 1,822억원, 한솔PCS는 1,660억원을 기록했다.

휴대폰열풍은 통신시장의 구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휴대폰은 98년을 기점으로 통신시장의 무게중심이 유선전화에서 무선전화로 뒤바뀌는 ‘무선우위시대’ 를 예고하고 있다.

95년까지만 해도 전체 시장규모(매출기준)에서 8대 2의 비율을 보이던 유선과 무선전화간의 몸집은 실제 올해들어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휴대폰시장은 97년기준 연간 3조3,279억원의 매출을 올려 한국통신의 시내전화(3조1,236억원)를 처음으로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올 상반기에는 휴대폰이 2조2,713억원의 매출을 달성, 1조5,892억원에 그친 시내전화를 크게 앞지르기 시작했다. 휴대폰의 ‘득세’ 에 힙입어 올해 6월말까지의 유·무선전화의 시장점유율(매출기준)은 유선 53.3%, 무선 44.7%로 ‘대등한’ 수준으로 변모했다.

휴대폰 문화 실종, 신종공해로 등장하기도

IMF속의 휴대폰열풍이 의미를 갖는 것은 100여년간 통신시장의 독보적 존재로 군림해온 유선전화시장에 ‘판정승’ 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때문이다.

휴대폰이 유선전화시장을 급속히 잠식하면서 한국통신의 경우 100년여 통신역사상 처음으로 가입자가 줄어드는 사태를 맞고있다. 연초부터 시내전화가입자수가 월 수만명이 뚝뚝 떨어져나가는 타격을 입고있다.

뿐만 아니라 PCS를 중심으로 한 휴대폰상품은 사업개시 첫 해부터 흑자를 기록했던 ‘황금알신화’ 의 주역 삐삐의 침몰을 예고하고 있다.

몇 만원하는 초저가형 휴대폰상품이 쏟아지면서 삐삐해지자가 줄을 잇고있는 것이다. ‘012’ ‘015’ 등 삐삐사업자별로 월 수만명의 고객이 PCS로 옮아가며 빠져나가고 있는 것.

IMF를 무색케하는 괴력을 보이고 있지만 휴대폰열풍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학생 등 비경제층을 대거 고객으로 흡수하면서 빚어지고 있는 출혈경쟁과 불량고객, 이로인한 요금체납문제가 위험수위를 넘고있다. 공연장 극장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휴대폰수신음은 또다른 ‘신종공해’ 로 떠오르고 있다.

비싼 고급통신수단인 휴대폰에 대한 이용고객들의 무감각한 비용개념도 문제다. 공중전화와 유선전화가 바로 옆에 있어도 10초에 몇 십원씩의 비싼 요금이 나오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잡담’ 수준의 통화를 하는 휴대폰 이용문화는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

휴대폰열풍은 사업자, 가입고객 모두에게 성숙한 시장경쟁과 이용문화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급성장은 2년간 2조2,000억원에 육박하는 과대한 단말기보조금을 동원, 청소년 등 비경제층을 고객으로 대거 흡수하고 있기 때문으로, 이로인해 사업자의 채산성악화와 불량고객이 급증하는 부작용을 낳고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광일·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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