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친.익척은 피곤하다

10/29(목) 11:38

대통령의 친·인척. 언뜻 보기에 폼나고 윤기있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누리는 권력도 대통령의 그것 못지않게 대단할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이들의 실생활도 그럴까. 이들은 정말 대단한 대통령의 후광을 누리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최근 정가 주변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국민회의의원과 차남 김홍업 아태재단부이사장이다. 이들을 둘러싼 루머나 잡음이 적지 않다. “정부 이권사업에 개입한다더라” “군인사를 꽉 잡고 있다더라” “공기업 청탁도 많다더라” 등등. 이중 어느 하나 사실로 밝혀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뚜렷이 판정이 내려진 경우도 없다. 자연스레 소문만 증폭되고 있다.

이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해명은 “모든게 근거없는 낭설” 이라는 것이다. “친인척들을 통하면 오히려 될 일도 안된다” 는 주장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기전 마지막으로 친인척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가장 강하게 주문한 것이 “절대 이권에 개입하지 말고 청탁하지 말라” 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 여권 인사는 “김 대통령은 최근 최고위 사정당국자에게 정치인사정을 진행하면서 ‘내 아들들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봐주지 말고 철저히 공정하게 수사하라’ 고 말했을 정도로 친인척 문제에 엄격하다” 고 말했다.

이름판 인사청탁 등 어처구니없는 사례 많아

김 대통령의 ‘엄명’ 이 너무 부담스러워서일까. 아니면 실제로 자신들의 주변이 너무나 복잡해서일까.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최근 “대통령의 혈육중 한 사람은 요즘 노이로제에 가까울 정도로 지쳐 있다. 자신의 이름을 팔고 다니며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 이라고 전했다. 그는 “너무나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얼마전에는 이 친척과 가까운 인물이 나서서 4건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고 전했다. “주로 친인척의 이름을 팔고 다니며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경우로 유사한 인물들에 대해 경고의 메세지도 보내고 당사자의 결백도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결정했다” 고 덧붙였다.

다음은 국민회의의 한 동교동인사가 전하는 친·인척관련 ‘어처구니없는 사례’ 세 가지.

첫째는 모 사정당국자의 ‘호통’ 건. 이 인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친척 A씨는 얼마전 한 사정당국자에게 사람을 보내 영남지역에서 근무중인 자신의 고교 동창을 호남지방으로 전보해 달라는 부탁을 하려 했다. 그런데 이 당국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또 부탁이냐. 이러면 현철이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게 된다” 며 크게 화를 냈다. A씨가 보낸 사람은 부탁도 못하고 물러나와서 상황을 그대로 A씨에게 전했다. A씨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 당국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경위를 물었고 당국자는 “벌써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당신 부탁이라며 청탁을 해와서 들어줬다” 고 사정을 설명했다고 한다. A씨는 이에대해 “그런 일은 전혀 없다. 지금까지 내가 부탁한 것은 전혀 없다” 고 해명했고 당국자도 뒤늦게 자신이 그동안 ‘매명’ (賣名)에 넘어갔음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모 고위관계자와 관련된 일도 있었다. 지난 대선때 김 대통령의 선거를 막후에서 도왔던 친척 B씨는 최근 선거때 같이 일했던 C씨로부터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만나고 싶어한다” 는 얘기를 들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거절할 경우 결례가 될 것 같아서’ 얼마후 이 관계자와 자리한 B씨는 서로 겉도는 얘기만 나누다 돌아와야 했다. 뭔가 미심쩍은 생각이 든 B씨가 곧 경위를 알아본 결과 C씨는 B씨에게는 “고위관계자가 뵙고 싶어 한다” 고 말하고, 고위관계자에게는 “B씨가 만나고 싶어 한다” 고 서로 다른 말을 전해 두 사람을 만나게 했던 것. C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두 사람의 회동을 주선할 정도로 실력자’ 라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이같은 일을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해명도 제대로 못하고 속앓이 하는 경우도

마지막은 모 공기업 최고경영자가 관련된 해프닝이다. 여권의 K씨는 최근 국민회의 고위당직자의 심부름으로 최근 이 경영자를 만났다. 그런데 K의 명함을 받아든 경영자는 다짜고짜로 불같이 화를 내며 “전(前)정권과 똑같이 되려고 그러느냐. 부탁이 너무 많다” 고 질타하며 이날 면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한 대통령 친척을 직설적이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K씨의 명함에 이 친척이 간여하고 있는 한 조직의 이름이 적혀있던 게 화근이었다. 명함을 받아든 경영자는 조직의 이름만 보고 지레 K씨가 이 친척의 부탁을 받고 온 것으로 오해했던 것. 전혀 예상치못한 상황에 빠진 K씨는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같이 화를 냈고 큰 언쟁으로까지 번졌다. 경영자는 이 자리에서 끝내지 않고 나중에 자신의 회사 간부들을 불러 화풀이를 해댔고 회사내에는 대통령의 친·인척문제가 근거도 없이 번져 나가게 됐다. 소식을 전해들은 대통령의 친척이 사정을 알아본 결과 이 회사에 자신의 이름을 판 청탁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그는 변변히 해명도 못한채 속앓이만 하게 됐다.

이처럼 자신들을 둘러싸고 문제가 끊이질 않자 일부 친척들은 해외로 나가는 문제를 심각히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대통령 차남 홍업씨의 근황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홍업씨가 주변으로부터 해외유학을 권유받고 진지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이같은 부인과 해명에도 불구, 정치권에서는 “자업자득의 측면도 있다” 는 시각도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대선때 선거에 간여했던 대통령의 친·인척들은 당시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며 이것이 정권교체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실제로 물의를 빚는 인물들은 대부분 대선과정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친·인척들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 이라는게 그의 시각. “따라서 ‘제2의 김현철’ 이 될 위험성이 있는 친·인척들은 당분간 국내를 떠나 있는게 김 대통령이나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 는 얘기였다.

스스로 한층 더 엄격한 주변관리 필요

일부에서는 “친·인척들이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우회로를 통하는 경우가 있는게 사실이고 이것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고 말한다. 한 동교동계 인사는 “대통령의 친척인 모씨가 ‘내가 직접하면 될 일도 안되고 문제만 야기할 것’ 이라며 오히려 부탁을 해와서 들어준 적이 있다” 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나도 일이 이뤄지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이 일은 누구누구가 말한 것이니 꼭 되게 해달라’ 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며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친·인척 자신이 개입하는 모양새가 되고 만다” 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모든 정황을 종합해보면 대통령의 친·인척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잡음과 구설수에 휘말리게 된다고 보는게 옳을 것 같다. 따라서 친·인척들 스스로 한층 더 엄격하게 주변을 관리하고 갖가지 세상 욕심에서 초연해 진다면 ‘제2의 김현철 파동’ 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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