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3저 '약효', 80년대만 못하다"

10/21(수) 14:53

급속한 엔화절상으로 ‘신3저(低)’ 로 인한 수출증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엔_달러 환율 하락과 국제금리 인하, 유가와 원자재비용 하락을 말하는 신3저 현상은 언제까지 지속되고 수출을 비롯한 한국경제 회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각에서는 신3저가 수출증대에 효자노릇을 하며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의 탈출구를 제공할 것이라는 희망섞인 기대도 나오고 있다.

달러에 대한 엔화환율은 8월16일 147.63엔을 정점으로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 9월말 이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최근 2개월 사이에 달러가치가 무려 20% 가까이 하락했다. 이는 미국경제가 불황국면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세계경제의 장기불황 국면 진입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이 최근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면서 국제금리도 동반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를 최고 1%포인트까지 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유가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14일 현재 12.64달러로 ‘3저 호황’ 을 누리던 86년 수준까지 떨어져 있다. 생산은 증가한 반면 아시아 경제위기로 수요는 줄어든 탓이다.

조선·자동차 등서 수출 10%정도 증가예상

이와 같이 ‘신3저 현상’ 이 두드러지면서 정부와 각 경제연구소들은 엔고(円高)로 인한 수출증대 효과에 대한 전망치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일본과 경쟁을 벌이는 자동차 조선 전기 전자 등 주요 수출품목의 경쟁력 향상으로 엔화가 10% 절상될 때마다 연간 13억달러의 무역수지 개선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고 무역협회도 수지개선효과를 연간 18억5,000만달러로 전망했다.

대우경제연구소는 엔화 10% 절상시 수출이 15억~18억달러씩 늘어나고 무역수지도 10억~12억달러 가량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산업연구원은 엔고의 여파로 조선과 자동차, 가전 산업의 수출이 10%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선진국들의 금리 동반하락이 현실화하면 국제 투자자금이 국내로 유입, 해외자금조달이 쉬워지고 국내금리도 인하할 가능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유가 및 원자재가격도 내년 중반까지 하향안정세가 이어질 것으로 산업자원부는 예상하고 있다. 대우경제연구소는 엔화절상과 금리 및 유가 하락이 수출 등 경제에 미치는 총체적인 효과는 35억~4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수출증가 및 무역수지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민간 경제연구소와 수출업계는 대체적으로 신3저의 전반적인 경제효과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신3저는 왔으나 ‘약효’ 는 크게 떨어져 80년대 후반 3저시대와 같은 활황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경제연구소들이 이같이 전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3저가 나타나게 된 배경이 80년대와 사뭇 다르고 시기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80년대의 경우 엔고(高)현상이 일본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세 속에 나타났지만 현재의 엔고는 일본경제의 후퇴와 미국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즉 엔화강세가 아니라 달러화의 약세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일 경제침체, 엔고효과 기대 힘들다”

현대경제연구원 전민규 주임연구원은 “미국과 일본경제가 모두 침체국면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엔고로 인한 수출증대 및 활황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며 “미국및 일본시장에서의 수요감소 효과가 엔고로 인한 수출증대 효과를 상쇄할 공산이 크다” 고 내다봤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위원도 “엔고로 인해 가격경쟁력은 높아졌지만 아시아 경제위기에 이어 미국, 일본 등 세계시장이 침체국면에 들어가고 있어 80년대 호황국면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고 잘라 말했다.

수출업계도 엔고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다. 삼성물산의 한 관계자는 “문제는 가격경쟁력이 아니라 아시아 등 세계시장에서 수요가 없다는 데 있다” 며 엔고로 인한 수출효과에 의문을 표시했다. 수출물량은 늘더라도 전반적인 수출단가 하락으로 엔고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란 주장도 만만찮다.

금리인하의 효과에 대해서도 외채이자 부담은 줄어 들겠지만 이것이 해외자금의 신규차입으로 이어지기는 힘들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변치 않는한 국제금리가 낮아진다고 외국의 투자자금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유가도 지난해말부터 이미 바닥권으로 떨어져 있어 추가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더구나 엔고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도 불확실하다. 미국의 경제전망 악화로 인한 장기국면이란 견해가 많지만 일본경제가 단기간에 회복될 상태가 아니므로 투기자금의 일시피난으로 인한 단기현상에 그칠 것이란 견해도 만만찮다. 엔고로 인한 경제회복 효과가 나타나려면 엔고가 최소 1년은 지속돼야 한다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견해다.

엔고로 인한 수출증대 효과를 80년대 3저시대 수준으로 기대할 수는 없지만 신3저가 IMF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뜻밖의 호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민간 경제연구소들도 신3저의 도래로 객관적인 수출환경이 호전되고 있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금융권 경색, 수출증대에 최대 걸림돌

문제는 수출을 진작할 수 있는 국내여건 조성이다. 신3저로 인해 대외여건이 호전됐다 하더라도 현재와 같이 수출금융 경색으로 수출업체들의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는 수출증대와 경제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

현대종합상사 이원호 경영기획과장은 “정부에서는 수출신용장(L/C) 전액보증과 무역어음 할인확대 등 각종 시책을 내놓지만 은행창구에서는 하나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 며 “금융권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은행만 족쳐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고 말했다. 외환수수료와 환가료 등 각종 부대비용도 지나치게 높아 채산성 악화의 요인이 되고 있다.

엔화 급등으로 시작된 신3저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수출분야로 돈줄이 풀리는 게 급선무다. 또 구매력이 살아있는 미국과 유럽시장에 마케팅 역량을 집중시키는 ‘초점돌파’ 전략도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이미 ‘엔고 파도타기’ 가 시작되고 있다. 삼성, LG, 현대 등 반도체 3사는 엔고로 인한 일본 이탈 거래선을 선점, 5억~10억달러의 수출증대 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며 조선업계도 오랜만에 일본을 제치고 조선수주 1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 자동차, 철강, 가전 산업도 수출에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전반적인 세계시장여건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신3저의 바다에서 진주를 캘 수 있을 지는 정부와 금융권, 업계의 수출총력전 성패에 달려 있다.

배성규·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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