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車에 '후계구도' 실었다

10/29(목) 11:46

현대그룹은 기아인수를 계기로 그동안 미완의 형태로 남겨져있던 후계구도의 가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가 기아를 인수하려는 의도가 후계구도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1, 2차입찰에서 삼성의 기아인수를 견제하기위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현대가 3차입찰에서 기아인수로 선회한데는 정주영명예회장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현대는 기아인수와 최근 재계의 빅딜, 금강산 사업등 굵직한 현안들을 거치면서 후계구도를 정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대의 관심은 기아인수로 복잡해진 자동차부문의 정리. 자동차부문은 그룹내 최대 사업부문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룹후계구도문제는 왕회장(정주영명예회장)의 의중에 달린 문제여서 거론도 힘든 분위기”라고 전제, “기아차에 대한 실사가 일단 끝나야겠지만 자동차부문의 경영권이 어떤 식으로든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기아 인수이후 자동차 관련 법인은 현대차 현대정공 기아차 아시아차등 생산부문 4사와 현대차 현대자동차써비스 기아자판 아시아자판등 판매부문4사등 모두 8개사. 대체로 판매부문일원화, 승용 상용 레저용다목적차량(RV)등 3개부문으로 분할 방안이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분화하는 자동차사업을 누가 갖는가 하는데 있다. 현대그룹에서 자동차에 직간접적인 연관성으로 자동차대권을 나눠가질 후보는 정세영자동차명예회장과 정몽구회장, 정몽헌회장등 3명. 당장 정세영자동차 명예회장 일가의 분가문제가 걸려 있다. 현대자동차는 그동안 정주영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세영자동차명예회장일가가 관할해왔으나 지분이 극히 미미해 그룹내 분할구도에 따라 위상이 가변적인 것으로 관측돼왔다.

실제로 현대차의 지분분포는 현대중공업 9.3% 정세영명예회장일가 3.98% 현대건설 3.4% 고려산업개발과 현대산업개발 1.2% 일본의 미쓰비시상사 5.2% 미쓰비시자동차가 4.1%씩 각각 보유하고있고 나머지는 소액주주에게 분산돼 있다. 현대는 그동안 증자를 하고싶어도 경영권을 쥐고있는 정세영일가의 지분이 낮아질 것을 우려해 증자대신 기채를 주로 했을 만큼 지분분포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만큼 불안정한 구도였다는 얘기다.

현대내부에서는 부실상태에 있는 기아자동차는 그룹내 자동차통인 정세영명예회장이 맡지않으면 안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아정상화를 고리로 정세영일가가 분가하지 않을까하는 관측이다.

현대가 기아인수전에서 보인 행보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당초 기아인수에 소극적이던 현대가 3차입찰에서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로 선회한 것은 이런 밑그림을 전제로 나왔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삼성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기아입찰에 참여해온 현대가 갑작스럽게 ‘반드시 기아인수’쪽으로 선회한데는 정주영명예회장의 의중이 작용했으며 기아를 통해 정세영일가를 분가시키려한다는 얘기다. 정주영명예회장은 한라(정인영) KCC(정상영) 성우(정순영)등 위성그룹을 통해 동생들의 분재문제를 정리했으나 자동차를 맡아온 정세영일가만이 아직 그룹내에서 동거상태를 유지해왔다.

기아를 통해 정세영일가가 분가한다면 현대자동차는 정주영명예회장 일가쪽으로 경영권이 넘어오지 않겠느냐는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현대자동차를 되찾아올 경우 그룹의 공동회장인 정몽구-몽헌 형제가운데 누가 자동차경영권을 맡을지는 점치기 어렵다. 두사람 모두 자동차사업에 상당한 열의를 갖고있고 자동차대권을 맡을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몽구회장은 자동차에서 과장 부장 이사를 거치며 줄곧 현장 경험을 쌓았으며 갤로퍼 싼타모를 생산하고있는 현대정공과 현대자동차 지방판매를 담당해온 현대자동차써비스를 운영해왔다. 그룹이 제철사업을 당분간 유보하면서 위상이 약화된 측면이 있으나 실질적인 장남이고 그간의 자동차에 대한 애착으로 보아 이를 맡을 가능성이 많다.

정몽헌회장은 LG와 협상중인 반도체 경영권문제가 걸려있어 운신의 폭이 넓지않은 편. 게다가 자신이 진두지휘하고있는 금강산 관광사업의 성공여부에 따라 그룹내 위상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올해초 현대자동차의 주주이사로 새로 등재하는등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나머지 형제들의 소유구조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현대는 5대그룹 빅딜을 거치면서 몽(夢)자 형제들의 분할통치구도를 정리했다.

몽구 몽헌형제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의 몫은 대체로 그룹의 비주력기업들. 금강개발산업은 정주영명예회장의 3남인 몽근회장이, 현대중공업은 몽준고문이, 현대해상화재는 몽윤회장이, 현대종합금융은 몽일회장이 각각 경영권을 갖고 있다.

작고한 네째 동생 신영씨의 아들인 정몽혁석유화학사장은 이번 빅딜에서 삼성과 석유화학 단일법인 설립을 위해 대산단지를 내놓은 대신 한화에너지인수라는 보상을 받았다.

또 기아인수의 댓가로 재계 빅딜에서 양보한 발전설비와 철도차량에 대한 보상책도 관심거리.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이 현금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기아컨소시엄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져 정몽준고문이 자동차부문에 어떤식으로든 연관을 맺을 것으로 보이고 현대정공산하의 철도차량부문을 그룹에서 양보했다는 점에서 몽구회장에게 자동차부문으로 보상해줄 가능성도 있다.

결국 현대그룹은 기아인수와 빅딜등을 통해 정세영일가의 분가, 아직 정리되지않은 정몽구 몽헌회장간의 후계구도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열·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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