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세월이 빚어낸 역사의 향기 '일본 교토 우지시'

10/14(수) 11:58

흔히 경주와 비교되는 일본의 고도 교토(京都)를 찾을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들러 볼 곳이 있다. 교토에서 JR(일본국철) 나라(奈良)선을 타고 남쪽으로 17분만 달리면 닿는 우지(宇治)시. 지금은 시끄러운 도시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 교토와 달리 우지는 한가롭고 호젓한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우지는 히와코(琵琶湖)에서 흘러 내려 온 우지가와(宇治川) 양쪽으로 야트막한 구릉에 둘러싸여 펼쳐져 있다. 맑은 강물과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명승지로 옛날 교토의 왕족과 귀족들이 나들이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우지가와는 과거 도읍 교토의 식수원으로 통했다. 지금 히와코의 물은 오염돼 식용수로는 쓸 수 없지만 물이 흘러 내려오는 동안 걸러지고 주변의 계곡에서 맑은 물이 흘러 들어 우지를 지날 때면 지금도 맑다. 흰 비늘을 번쩍이는 은어가 그대로 보인다.

우지의 역사는 바로 이 강물이 만들어 왔다. 나라(奈良) 겐코지(元興寺)의 도토(道登) 스님이 강을 건너는 다리인 우지바시(宇治橋)를 놓은 것이 646년. 그 이래 우지는 전략 요충지로서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일본 고·중세사는 시가(滋賀)-나라-교토-오사카(大阪)순으로 그 중심 무대를 옮겨 왔고 우지는 바로 나라와 교토를 잇는 곳이었다.

일본 3대 명교 우지바시, 강 양쪽으로 볼거리

우지바시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일본의 3대 명교(名橋)의 하나인 이 목제 다리는 중간에 상류쪽으로 삐져 나온 공간이 있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산노마’(三ノ間)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옛날 우지가와에서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설치됐다고 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찻물을 길어 올리게 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우지의 볼거리들은 모두 이 다리 상류쪽 강 양쪽에 모여 있다. 우지바시 남쪽 강둑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한 ‘고도 교토 문화재’ 의 하나인 뵤도인(平等院)에 이른다. 1052년 관백(關白·왕을 보좌해 정무를 총괄하던 고위직) 후지와라 요리미치(藤原賴通)가 아버지의 별장을 고쳐 만든 절로 온통 국보와 보물 투성이다.

본당인 봉황당 앞뒤로 연못이 있고 정면을 흐르는 우지가와와 강건너편의 나직한 산등성이를 포함, 애초에는 극락정토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풍광이었다고 한다. 우지가와를 끼고 수없는 전쟁이 치러졌는데도 어떻게 절이 전혀 손상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봉황당의 아미타여래불은 연못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앞을 가린 창살 사이에 난 원형공간 사이로 상호(相好)만이 보인다. 절 전체는 중국의 영향이 강하지만 본존불을 배치한 이런 기법은 석굴암의 영향이 큰 것로 보인다고 주지스님은 설명했다. 12광불이 새겨 진 비천광배(飛天光背)와 천개(天蓋)의 휘황찬란함과 함께 본존불의 자태는 일품이다.

봉황당 사방벽과 나무문에는 정토에 들어 갈 때 불보살이 환영하는 모습을 그린 구품래영도(九品來迎圖)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담징이 그린 호류지(法隆寺) 금당 벽화가 사라진 현재 일본 최대·최고의 불화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봉황당 벽위쪽에 52체가 매달려 있는 목제 운중공양보살상(雲中供養菩薩像)은 하나 같이 살아 춤추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나중에 복원된 1채를 빼고는 모두 본존불과 벽화와 함께 각각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다. 봉황당 지붕위에는 두마리 청동제 봉황이 마주 보고 있으며 이 또한 국보로 지정됐으나 비바람을 피해 지금은 모조품으로 대신하고 있다.

13층 석탑과 수목 우거진 작은 섬

뵤도인은 사이쇼인(最勝院)과 조도인(淨土院) 사이에 끼여 있는데 이 두 절도 지나치기 어렵다. 조도인에서 남쪽으로 아가타(顯)신사가 있고 그 뒤로 다시 젠포시(善法寺)가 있어 20여분이면 모두 둘러 볼 수 있다.

뵤도인 정문을 나와 길을 조금 되돌아가 다치바나하시(橘橋)를 건너면 작은 섬이 나온다. 섬에는 13층 석탑이 서 있고 수목이 우거져 산책로로는 그만이다. 드문드문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이 눈에 띈다.

뵤도인에서 강 건너편에는 우지신사가 자리잡고 있다. 그 입구의 강변에 이 일대가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의 무대였음을 알리는 기념조각이 서 있다. 일본의 대표적 고전문학으로 장편 연애소설인 ‘겐지모노가타리’ 의 가장중요한 무대는 교토의 궁정이지만 전체 54장 가운데 45~54장은 우지를 무대로 하고 있다. 바로 ‘우지 10장’ 으로 불리는 부분이다. 작은 얘깃거리라도 꼭 기념하는 일본인들이 이 ‘우지 10장’ 을 놓칠 리 없다. 여주인공 우키후네(浮船)가 연인 가오루노기미(薰君)를 가장한 그 아들과 뱃놀이를 하는 장면을 조각한 ‘우지 10장 기념물’ 은 적어도 일본인들에게는 연애 감정을 자극할 만하다.

우지신사는 뒷쪽에 자리잡은 우지가미(宇治上)신사와 함께 메이지(明治)시대까지는 하나의 신사였다. 이중 독특한 지붕형식으로 유명한 우지가미신사는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신사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들어 가 있다. 신사가 가정집이나 사찰과 다른 독특한 건축양식을 갖게 되는 출발점을 조금은 확인할 수 있다.

우지신사 가까이에 있는 에싱인(惠心院)과 도젱인(東禪院), 고쇼지(興聖寺)도 들러볼 만하다. 특히 중국 사찰을 연상시키는 고쇼지는 경내가 아주 한적하고 정갈해 색다른 맛이 있다. 절 입구의 언덕길인 고토자카(琴坂)는 단풍나무 숲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어 황홀한 느낌을 준다.

우지가와 중심의 한나절 산책코스

우지가와를 중심으로 점재해 있는 역사 유적은 걸어서 한나절이면 모두 둘러 볼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역사의 향기와 수려한 자연에 흠뻑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여유를 가지고 하룻밤을 강변의 여관에서 머무는 것도 좋다. 교토에 비해 숙박비가 절반 정도이다.

밤이면 우지의 관광명물의 하나인 가마우지 어업을 즐길 수 있다. 가마우지를 이용한 어업은 중국에서 지금도 성행하고 있으나 일본에서도 전국 30여개소에서 행해지고 있다. 주로 은어를 잡아 올리던 우지의 가마우지 어업은 은어가 줄어 들면서 지금은 관광상품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밤에 횃불을 밝혀 고기를 불러 모으고 줄로 매단 가마우지를 조종해 은어를 잡는다.

우지는 또 시즈오카(靜岡)·규슈(九州)와 함께 일본의 3대 차산지로 유명하다. 지금도 고소득 작물로 차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아 시내 곳곳에까지 차밭이 들어서 있다. 우지차의 생산량은 전체의 3%에 불과해 시즈오카·규슈차와 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급 덖은차인 ‘교쿠로’(玉露)와 가루차를 주로 생산, 일본내의 고급차는 대개 우지차이다. 교토부가 부립차업연구소를 우지에 두고 우지차의 생산과 상품화를 지원하고 있는 것도 우지차의 변함없는 명성 때문이다.

뵤도인 정문앞의 우지시관광센터 바로 옆에 있는 ‘다이호앙’(對鳳庵)에 들리면 전통의 가루차를 맛볼 수 있다. 우지시가 운영하는 찻집인 다이호앙에서는 일본 전통 다도를 대하며 전통 찻집의 분위기에 젖을 수 있다. 정원과 건물의 내부 구조가 수백년전의 찻집을 그대로 살렸다.

황영식·도쿄특파원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