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세상읽기] 영화인, 그들의 이중의식

10/14(수) 15:02

L씨는 영화제작자. 지난 해까지 크게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없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다른 제작자인 R씨와 동업도 해 봤으나 효과가 없었다. 지난 해 다시 딴 살림을 차렸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별 기대없이 만든 영화가 올 상반기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고집이 더 커졌다. 그런 만큼 한국영화를 사랑한다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당연히 지난 여름 ‘스크린쿼터 결사수호’에 앞장섰다.

그럼 R씨는? 역시 한국영화를 고집하지만 스타일이 다르다. 80년대 민중문화운동에 참여했다가 방향을 돌린 그는 지금도 영화의 상업성과 사회성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결과는 게도 구럭도 놓치고 있는 듯한 모습. 한때는 선정적인 비디오용 영화도 만들었다. 이유는 “분명히 존재하는 시장과 수요를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영화가 살 길은 해외시장 개척과 합작투자 뿐이란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쓴다. 성과는 미미하지만 실제 몇편의 작품에서 시도했다.

K씨는 창업투자회사 간부. 한때 그의 회사는 제작여건이 열악한 한국영화계의 구세주였다. IMF한파로 대기업이 일시 발을 빼자 너도 나도 그의 회사에 청을 넣었다. 회사의 목표는 오직 이익. 돈만 된다면 누구의 영화든, 어떤 작품이든 도박을 걸었다. 지금까지 비교적 성공. 물론 그의 탁월한 안목이 큰 몫을 했다.

H씨는 양수겸장. 외화도 수입하고, 이따금 한국영화도 만든다. 평소 입버릇 처럼 하는 말. “외화로 돈 벌어서 좋은 한국영화 만들겠다”였다. 그 ‘좋다’는 말이 예술성을 뜻하지 않는다. 센세이셔널리즘이었다.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으로 화제를 일으켜 관객들을 끌어 들이겠다는 것이다. 반면 Y씨는 철저한 외화수입업자. 세계영화시장을 다니며 적은 돈으로 숨어 있는 영화들을 사들인다. 국적은 다르지만 그가 선택하는 작품 역시 도덕과 관습을 뒤집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H씨와 같다.

이들이 지난 달 모두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항구도시를 찾았다. 마치 일본대중문화개방을 미리 자축이라도 하듯 일본영화, 감독들에게 열광했던 영화제. 그 자리에서 그들은 일본영화개방을 적극 찬성했다. 일본 문화개방이 가져올 부작용이나 폐단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 듯한 이유를 둘러대지만 속내는 모두 ‘돈’때문이었다. 빨리 개방하면 L씨는 일본이 한국영화를 얼른 사줄 것으로 생각하고, R씨는 한국영화 제작에 일본돈이 몰려올 것을 기대했다. K씨는 일본영화제작에 도박을 해볼 욕심이고, H씨와 Y씨는 일본영화를 먼저 사려고 값을 올려 부르는 추태를 보였다.

우리는 그들도‘영화인’이라 부른다. 그들 스스로 문화의 창조자, 전달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대현·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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