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죽음도 삶의 한부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12/09(수) 15:43

“죽음에 익숙해지십시오.”

누구나 한번쯤 삶의 끝자락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죽음. 죽음은 모든 이에게 암흑이요, 공포다. 과연 죽음은 그러한 것인가. 인간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02-736-1928)의 김옥라회장(79)은 “죽음은 깊이 사색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는 존재”라며 “죽음은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지 알게 되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죽음을 미지로의 여행에 비유한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누구나 공포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고 사색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모임이 만들어진 것은 91년 4월.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만날 것인가를 생각하고 연구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삶보다는 죽음에 천착하는 모임이다. 김회장을 비롯, 고 윤보선전대통령 부인 공덕귀여사, 김동길 전연세대교수, 서강대 김인자교수, 이태영 가정법률상담소장, 성악가 김자경씨, 고 이범석외무장관의 부인 이정숙씨등 14명이 발기인이 됐다.

이 모임의 발의(發意)는 김회장이 했다. 남편인 나익진 전산업은행총재의 갑작스런 죽음이 모임을 만들게 된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남편의 죽음이전까지 죽음은 남의 일이었지요. 남편의 죽음이후 죽음이 나의 일이고 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드러내고 공개화해서 삶의 일부분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을 여러사람에게 주창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모임을 이색적이라 생각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회피하기 마련인데 회(會)의 이름에 죽음이라는 말이 들어갔으니 말이다. 김회장이 들려주는 일화한토막.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단어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노인대학등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옵니다. 하지만 한결같이 강연회제목에 죽음이라는 말은 빼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안된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공포로 생각합니다만 가까이 할수록 담대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창립기념 강연회가 열린 91년6월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 청중은 1,000여명이 넘어 객석을 꽉 채웠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의 회원은 창립초기 발기인 14명을 포함, 100여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3,000여명에 이른다.

원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의 모태는 김회장이 맡고 있던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 연구회다. 이 회는 임종의 터널앞에 와 있는 환자들에게 고통을 덜어주며 죽음을 준비토록 하는 호스피스봉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호스피스 활동역시 죽음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호스피스활동은 죽음자체에 대한 환자의 고통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가 생겨나면서 환자들의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환자가 갖고있는 죽음의 공포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한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에서는 죽음준비교육을 역설한다. 죽음준비교육은 곧 죽음과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토록 촉구한다. 누구나 인간적인 삶을 원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듯이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인데 인간적인 죽음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있을때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죽음을 보다 깊게 생각하는 순간부터 과거의 삶을 진정으로 반성할 수 있고 현재와 미래의 삶을 보다 인간적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죽음준비교육은 삶의 준비교육이기도 하다.

이 회는 매년 정기적으로 죽음학에 대한 공개강의와 세미나를 열고 있다. 수많은 학계인사가 이 회를 통해 죽음학 강의를 했다. 죽음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은 어떻게 보살펴야 하며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살아남은 자는 애통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으며 생명은 왜 존엄한 것인가등이 이제까지 주제였다.

이회는 회원들에게 호스피스 자원봉사, 유서쓰기, 장례식 참여등을 권한다.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현재의 삶을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김회장은 “날마다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생각하고 질문을 해야한다”며 “이는 삶을 보다 엄숙하고 진지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락사문제에 대해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죽음직전까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필요해도 인위적인 죽음의 선택은 전능자의 의지에 반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김회장은 “근대 호스피스 활동의 원조였던 데임 시슬리 손더스여사는 ‘호스피스의 역할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어 죽고싶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며 “안락사보다는 고통을 완화하고 없애는 의학의 발달이 더욱 절실하고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진황·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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