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새해 첫키스의 달콤함을 느껴요"

12/30(수) 14:19

순수한 사랑 그리운 시대인가. 연말과 새해, 순정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 아름답고 착한 사람들이 일궈내는 동화같고, 꿈같은 사랑의 멜로디. 그것이 유난히 감미롭고 가슴 훈훈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고달프고, 그래서 잠시나마 환상이지만 ‘순수의 시대’로 가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영화는 하나같이 첫 키스로 끝을 낸다. 조심스럽고 애틋한 사랑의 수줍은 몸짓.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지 않은가.

한국영화의 기세가 만만찮다. 지난 추석 ‘정사’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흥행이 11월 ‘약속’의 눈물로 옮겨지더니, 연말과 새해에도 여전히 한국영화 의 강세다. 19일 개봉한 3편이 흥행에 입맞춤을 하며 새해까지 내달린다.

‘미술관옆 동물원’이 일주일만에 서울서 7만명을 돌파하면서 마라톤 흥행을 예고했다. 군더더기 없는 로맨틱 코미디. 여성감독 이정향의 데뷔작이다. 동물원의 동물과 미술관의 그림으로 비유되는 두 남녀가 한 공간(원룸)에서 10일간 티격태격하면서 사랑을 찾아간다.

겉은 퉁명스러우면서도 속은 여리고 섬세한 실연당한 휴가 군인 철수(이성재)와 중성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순수한 짝사랑에 빠져있는 춘희(심은하)의 일상이 재치있고 유쾌하다. 그러면서 영화는 영화속의 영화란 ‘액자구조’로

조금씩 두 사람의 거리를 당겨준다. 춘희의 시나리오를 함께 쓰면서 철수가 춘희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작품속 남자 주인공은 춘희가 짝사랑하는 국회의원 보좌관(안성기). 마지막 그가 현실속의 철수가 되면서 쑥쓰런 첫 키스로 사랑은 시작된다. 치밀한 구성, 현실과 상상의 조화가 영화의 생기와 탄력을 준다. 심은하가 이런 연기를 그렇게 잘할 줄 아무도 예상 못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감독 이은)은 제목처럼 가정이 현실에 나타난다.다. 남성판 신데렐라의 탄생. 보잘 것없는 프로야구 심판 범수(임창정)가 최고 인기탤런트 현주(고소영)와의 사랑에 성공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처음 교통의무경찰과 여대생으로 만났을 때부터 변하지 않은 머뭇머뭇, 수줍게 나타나는 범수의 순수한 마음이다. 그것은 현실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다. 현주 역시 장래가 보장되는 젊은 기업가를 포기하고 인간적인 감정을 소중히 할만큼 착하다. 야구장에서 보는 선남선녀의 흐믓한 사랑의 키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감독 장동홍)은 동화같은 영화. 사춘기 소녀가 가지는 착한 영화다. 초등학교때 약속을 12년동안 기다리는 유치원 교사(송희)와 그것을 잊고있던 남자 수안(박용하)이 다시 만나 일주일간 데이트를 하면서 순수한 사랑을 선택한다. 미래에 둘사이에 태어날 아이가 고아로 나타나 고리 역할을 해준다. 해맑은 아이 얼굴처럼 영화는 흘러가지만, 수안에게 약혼자가 있고, 극적 효과를 노리고 마지막에 송희의 주문이 효력을 발휘해 수안이 마지막 순간 출세보다는 사랑을 선택하는등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외화까지 첫 키스의 감동으로 끝맺음을 한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노라 에프론 감독·각본의 ‘유브 갓 메일’은 미국판 ‘접속’. 그러면서

정반대 분위기의 로맨틱 코미디다. 아기자기한 스토리에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라는 재기 넘치는 배우가 있다. 컴퓨터통신이란 사이버공간에서는 익명으로 E-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현실에서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대형할인체인서점 사장 죠와 자그마한 ‘코너아동서점’주인 케슬린으로 서로 다툰다. 먼저 케슬린의 정체를 안 죠가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반면 브래드 피트가 1인2역(저승사자와 실제 청년)을 하는 ‘조 블랙의 사랑’은 마틴 브레스트 감독이 긴시간(160분) 어떻게 인생을 살고,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를 잔잔하고 깊이있게 깨우친다. 죽음을 앞둔 노인의 인생철학을 보여준 앤터니 홉킨스의 노련한 연기와 그의 딸로 저승사자에게 사랑을 알게 해주는 수잔 패리시도 매력적이다.

'태양은 없다' 양지를 향한 두 젊은이의 절규

그들은 분명 지금, 서울의 젊은 초상이다. 밀려난 아웃사이더. 꿈은 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는 실패한 스물다섯의 젊음들이다. 무채색에 가까운 청회색 도시의 막다른 골목에서 서성대는. 3류복서 도철(정우성)이 마지막 펀치를 맞고 바닥에 머리를 찧는다. 절망조차 담을 수 없는 초점과 빛을 잃은 눈동자. 악덕채권자를 보고 달아나는 겁많은 사기꾼 홍기(이정재). 이를 악물고 뛰지만 느린 화면이 자꾸만 붙드는 그의 발걸음. 희망이란 없다.

‘태양은 없다’는 인물의 대조와 갈등과 화해를 통해 주제를 강하게 드러내 기위해 버디무비형식을 취했다. 순진한 도철은 오직 복싱을 생각한다. 돈만 있으면 뭐든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엉성한 사기꾼 홍기는 오직 돈만 좇는다. 꿈은 늘 산산조각이 나고 젊음은 지리한 장마처럼 정지해 있다. 코피를 쏟으며 의식을 잃는 펀치드렁크증세가 있는 도철은 어릴 때부터 해왔던 복싱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그가 링에 오르려는 이유는 그것밖에 할 줄 아는게 없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 그러나 세상은 그에게 태양을 비춰주지 않는다. 홍기는 도철의 돈까지 훔쳐 경마장에서 일확천금을 노리지만 행운은 그를 비켜가기만 한다. 영화는 그래도 그들을 산동네 옥상에 올려놓고 떠오르는 도시의 태양을 비춰준다. 그들을 미워할 수 없다.

‘태양은 없다’는 일관된 줄거리의 진행보다는 도시에 무료한 두 젊은이의 감정에 충실한다. 고속촬영의 느린 영상은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그들의 젊음을 더욱 나른하게 만들고, 빠른 장면교차(몽타주 기법)와 점프컷으로 현실과 꿈의 거리를 확인시킨다. 때론 유치한 설정도 있지만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스타일리스트인 ‘비트’의 김성수 감독 시각스타일이 그대로 살아있는 영화.

무거움을 털어버린 이정재의 희, 비극이 살아있는 연기, 체화한 정우성의 분노와 사랑의 몸짓이 정말 친구사이처럼, 생활처럼 자연스럽다.

이대현·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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