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사태 계기로 뜨거워지는 이순신 신드롬… 믿을 건 장군님?!

[이순신 부활하다] 불멸의 영웅 부활 "충무공 사랑해요"
독도 사태 계기로 뜨거워지는 이순신 신드롬… 믿을 건 장군님?!

“충무공, 사랑해요!”

이순신 장군이 부활하고 있다.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둘러 싸고 촉발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가운데 ‘이순신 신드롬’이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통쾌하게 날려 주고 있는 것. “반일 감정으로 폭발 직전이었는데,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강추(강력 추천의 줄임말)”(jang142), “역사서를 수십 권 읽고 기념관에 수십 번씩 가는 것보다 속이 시원하다”(kari338).

먼저 눈에 띄는 것은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인기 급상승이다. 시청자들은 이순신과 독도 사태를 연계시켜 일제침략의 야욕을 무참히 꺾는 이순신의 모습을 보면서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의 감정을 맛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첫 방영 때 15%에 불과했던 시청률은 독도 사태 직후인 3월 19일 23.5%로 껑충 뛰어올랐고, 급기야 임진왜란이 발발한 20일 방송분에서는 27.2%로 자체 관측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TNS 미디어코리아). 이 프로그램의 게시판에는 근래 독도 사태와 임진왜란을 빗댄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20일 하루동안 올라온 글만 무려 2,000여 건에 달한다.

사이버 세계에서 ‘님’을 향한 사모의 마음은 더욱 간절하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패러디한 온라인 잡지 ‘영웅불멸’을 보자. “불멸 폐인은 이렇다”란 제목의 글에서는 △평소에 지나쳤던 이순신 관련 서적을 소중히 간직하며 3번 이상 읽는다 △쓰기 싫었던 한문을 메모지에 적어 본다(필생즉사, 일휘소탕…) △우리나라 전통 의상인 한복이나 궁궐, 민속촌들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등 충무공을 향한 열렬한 충성심을 담은 문구들이 눈길을 모은다.

전문창업컨설팅 기업인 ㈜창업경영연구소(www.icanbiz.co.kr)의 이색 설문 조사 내용도 흥미롭다. “독도에서 창업하면 성공할 유망 아이템”을 묻는 질문에 유통(판매)업 1위의 영광은 태극기(44명)를 제치고, 당당히 ‘거북선’ 모형(46명)에 돌아갔다.

"나의 퇴근을 알리지 말라"
이순신 어록도 인기다. 직장인들 사이에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도 활용된다. 사직서를 쓰려는 직장인들은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거이 행동하라” (勿令妄動 靜重如山)는 말을 듣고, 일찍 퇴근하는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곧잘 “나의 퇴근을 알리지 마라”는 주문을 하기도 한다는 것.

드라마 촬영 장소인 전북 부안 지역도 덩달아 특수를 누리고 있다. 부안군에 따르면 3월 첫째주와 둘째주 관광객은 각 4,700명과 6,000명 수준이었지만, 독도 사태 발생 직후인 3월 20일에는 방문객이 1만 3,000여 명으로 3배 가까이 급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같은 관광객들의 열기에 힘입어 부안군에는 ‘충무공 상차림’이란 이름의 한식단도 등장했다. 드라마 촬영장 주변인 변산면 궁항 일대 7~8개 시범 업소에서 부안의 특산품으로 구성한 전통 한식단을 선보인 것.

상차림은 반찬이 3종류인 조선 수군 밥상(3첩반/ 3,000원)과 조선 장군 밥상(5첩반/ 5,000원), 충무공 밥상(7첩반/ 7,000원)과 임금님 수라상(12첩반/ 12,000원) 등 4종류이다. ‘충무공 상차림’을 기획한 부안군 위생계 최순덕 씨는 “지역 특산품이라고 해도 일상적인 음식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지만, 충무공 이미지가 가미되면서 부안에 오신 관광객들이 꼭 한 번씩 드시고 가는 이색 먹거리로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 촬영지, 관광객 몰리며 '이순신 특수'
전남 진도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건립된다. 진도군은 금년 내에 15억원을 들여 군내면 녹진리 해변 공원에 충무공 동상을 건립키로 했다. 또한 경남 진해시는 해전사 체험관과 군함 전시관을 짓고, 역사ㆍ안보ㆍ해양 교육장으로 활용키로 했다.

정치권도 이순신 열풍을 타고, 애국 전사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발벗고 나섰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3월 17일 “7,000만 한민족의 강철 같은 독도 수호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해 일본이 다시는 독도 문제를 거론 못하도록 하기 위해 독도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거북선 모형의 건립을 제안한다”면서 범국민 극일 운동을 제안했는가 하면, 광주시의회 민주당 강박원 대표와 최영호 의원 등은 “역사 교육 차원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이 없는 초등학교에 동상을 세워야 한다”(3월 18일)며 “독도 수호의 첨병이 되겠다”고 다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온 라인과 오프 라인 구별 없이 전국을 들썩이게 하는 있는 최근의 이순신 열풍의 내막은 극히 단순하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라는 거대 담론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동연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은 “일본의 우익화에 대한 국민의 대안적 우상으로서 민족의 영웅인 이순신에 대한 신드롬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특정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때 그때 상황에 연계해 대중적 이데올로기의 확대 재생산 촉매제로 활용하기보다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이고 다각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점가 이순신 열풍

최근 문화계 안팎에 ‘이순신 바람’이 거세게 이는 가운데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순신의 두 얼굴’(창해 발행, 김태훈 지음)과 ‘임진왜란 해전사’(청어람미디어 발행, 이민웅 지음)가 그것. ‘이순신의 두 얼굴’에서 저자는 이순신은 범접할 수 없는 성인이 아니라 처음에는 비록 평범했지만 무인의 강골과 강직성, 그리고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물러서지 않는 의지로 스스로를 단련해 평범에서 비범으로 나아간 인간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저자는 이순신의 출생부터 사후까지를 동서고금의 방대한 자료를 구체적으로 인용, 이순신의 실존을 있는 그대로 파헤치고 있다. 책은 기본적으로 7년전쟁의 틀 속에서 이순신을 바라보면서 나아가 조정이 본 이순신, 민초가 본 이순신, 일본이 본 이순신, 세계사 속 영웅들과 비교한 이순신 등 다양한 시선으로 이순신을 조명하고 있다. ‘임진왜란 해전사’는 현역 해군 소령이자 역사학자이기도 한 저자가 10년여에 걸친 연구 끝에 얻어낸 역작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아우르는 국내 최초의 임진왜란 해전의 통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책은 이순신 개인보다는 이순신 함대와 해전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를 객관화하기 위해 방대한 주변 사료를 낱낱이 끌어 들이고 있다. 합포해전의 공간이 마산이 아니라 진해라는 등 그릇된 상식들을 바로 잡아 주는 데서는 신선한 충격마저 온다. 책은 이순신의 역할과 각각의 해전을 전체 흐름에서 총체적으로 접근하면서 임진왜란 초기의 10차례의 해전, 4년 간의 강화 교섭기 동안의 전력 재정비, 선조의 오판과 통제사 교체, 칠천량해전의 패배, 명량해전의 대역전과 노량해전의 최후의 승리 등을 객관적이고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와 함께 조ㆍ일 양군의 무기와 군선 체계 등 전쟁에 영향을 준 다른 요인들을 두루 살펴 읽는 재미를 더 한다.

** 박종진 기자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5-03-29 18:07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