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졸업생들 국내진학 대신 유학 선호

[커버스토리] 서울대 대학원도 4년째 미달
학부 졸업생들 국내진학 대신 유학 선호

한국의 대학원이 위기라는 말에 서울대학교 대학원도 한숨을 쉬기는 마찬가지다. 2002학년도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사상 첫 미달을 기록한 이래 벌써 4년째 미달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고등 룸펜’ 신세가 될 수도 있는 고학력 실업난과 돈 되는 학문에만 몰리는 학문 양극화 현상은 서울대 대학원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서울대 학부 졸업자들의 대학원 진학률도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국내 학업 여건이 열악한 데다 졸업을 해도 ‘외국 학위’에 밀리는 고질적 풍토 탓에 많은 서울대 졸업생들이 국내 대학원보다 해외 유학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 간 미국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 졸업한 학부를 조사한 결과 서울대 출신이 미국의 버클리대 다음으로 많은 1,655명이었다. 한해 평균 300명이 넘는 숫자다.

이공계 박사과정 충원율 30%대로 저조

2005학년도 서울대 대학원 전기모집에서 나타난 충원율에서도 학생들의 대학원 기피 현상은 뚜렷했다. 서울대 대학원 충원율의 평균이 석사과정은 71%, 박사과정은 50%에 불과했다.

대학원 별 충원율을 보면 우선 인문대학 대학원이 석사과정 50%, 박사과정 41%이었고, 사회과학대 대학원은 석사과정 68%, 박사과정 71% 였다.

또 자연과학대학 대학원은 석사과정 71%, 박사과정 28%이었다. 공과대학 대학원의 경우는 석사과정 76%, 박사과정 33%의 저조한 충원율을 보였다.

거의 모든 대학원이 입학정원을 못 채웠고 특히 공과대학 박사과정의 미달사태는 대학원 박사과정 전체 평균 50%에도 크게 못 미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런 학생 부족현상 탓에 서울대 대학원에서도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적극적이다.

서울대 권두환(국어국문) 인문대 학장은 “최근 외국인 유학생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다”면서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은 이미 외국인 학생 비율이 50%를 넘어섰고 국사학과의 경우도 50%에 육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 학장은 “유학생들의 출신국도 과거 타이완, 일본 중심에서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인 유학생이 급증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권 학장은 외국인 유학생의 유치는 국내 대학 출신들의 대학원 진학 부진에 따른 궁여지책의 측면도 없지 않지만 ‘서울대학의 국제화’ 방향과도 맞아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또 과거 미국과 서구의 많은 대학원들도 학생 부족의 위기를 겪을 때 한국 등 아시아 출신의 우수 유학생을 대거 유치해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유학생들의 급증은 서울대 대학원으로선 전에 겪어보지 못한 고민거리도 낳고 있다. 서울대 대학원은 외국인 입학 전형에서 토플, GRE, GMAT와 같은 영어평가시험과 한국어능력인증서 등을 참고로만 활용하고 있어 우리말이나 영어에 서툴어도 입학에 큰 지장이 없는 실정이다.

특히 중국의 일부 주자치 정부에서는 중ㆍ고교에서 영어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지 않아 한국에 와서 영어를 시작하는 유학생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외국인 학생들이 서툰 한국어와 영어 능력 탓에 토론식으로 하는 대학원 강의 진행을 못 따라 오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또 서툰 우리말 때문에 학생 평가를 소논문 형식의 리포트 작성 대신 시험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서울대 순혈주의 벽 자연스레 깨질 듯

서울대 출신들의 대학원 진학 기피현상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권 학장은 “인문대 대학원의 경우 갈수록 서울대 출신의 진학률이 떨어져 최근에는 대학원 재학생의 50% 이상이 타 대학 출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현상을 나쁘게만 볼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길게 봤을 때 학문과 인적 교류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서울대 순혈주의’의 벽을 깨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타 대학 출신들이 서울대 대학원에 대거 진학하게 되는 이유는 우선 어학능력 시험방식의 변경을 꼽는다.

과거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들이 직접 출제하던 방식에서 텝스 등으로 대체한 이후 영어시험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준 것이 대학원 입시에서 타 대학 출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대학원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편 많은 대학인들은 대학원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들지만, 이를 극복하고 정상화 하기 위한 활로가 ‘재원 확보’라는 데 입을 모은다.

서울대만 하더라도 유학가려는 우수 학생을 잡아두어야 할 판에 대학원 등록금이 비싸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원 등록금은 2004년 기준으로 학부의 1.3배나 된다. 그래서 최근 서울대는 ‘풀스칼라십(Full Scholarship)’이라는 획기적인 장학제도를 도입했다.

7월 정운찬 총장은 2005학년도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 2,900여명 중 1,600명에게 등록금 전액과 월 60만원의 생활보조금 등 총 250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 동안 서울대는 석ㆍ박사 과정을 통틀어 한해 60억원 정도를 장학금으로 지급해 온 것이 고작이었다.

정 총장은 “앞으로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돈에 신경 쓰지 않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에 소요되는 자금은 외부로부터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고 했다.

대학원의 위기는 그 사회 학문의 위기다. 또 학문의 위기는 미래세대 저력의 위기로 이어진다.

권 학장은 “대학에 당장 필요한 직업인 양성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기초를 닦는 학자 양성에 투자할 때”라고 강조했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10-12 10:52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