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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영도 하씨' 시조 하일씨
"나를 한국사람으로 만든 건 情'



“이다도시가 그러데예. 계속 한국에서 살 건데 웬만하면 이름도 바꾸라고예.”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유명한 방송인 하일(47·미국명 로버트 할리)씨는 1997년 부산의 지명을 딴 ‘영도(影島) 하(河)씨’로 한국에 귀화했다.

슬하에 3남을 두고 있어 영도 하씨는 모두 4명이다. 18일 방송회관에서 만난 그는 성을 바꾸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특유의 부산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재치 있게 답했다.

79년 한국에 선교사로 왔다가 한국인의 정(情)에 매료됐다는 그는 86년 재입국한 이래로 벌써 21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97년 성을 바꿀 때만 해도 이미 한국에서 11년째 살고 있을 무렵이었어요. 당연히 한국이 제 2의 고향이죠. 친구들도 여기에 더 많고, 아내도 한국을 사랑하면 이름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한국인이 되는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는 해방 이후 단 7건에 불과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다도시가 태어난 프랑스는 국적을 바꾸었다가도 다시 취득할 수 있게 돼 있어요. 그런데 미국은 달라요. 한 번 국적을 포기하면 다시 취득할 수 없고, 무엇보다 미국에 다시 갈 수 없을까봐 가장 크게 고민했습니다.”

하씨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앞으로는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없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미국 대사관에 인터뷰 받으러 갔더니 영사가 미국 국적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국적을 버리면 미국 비자를 안 줄 수도 있다고요.”

우리에게는 방송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본업은 국제 변호사다. 더욱이 전공이 이민법. 따라서 미국과 한국을 오갈 수 없다면, 생계에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부모와 8명이나 되는 동생들이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미국을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은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우(杞憂)였다. 그는 “막상 한국 국적 취득한 뒤 대사관에 미국 비자 신청을 했을 때, 단 30초 만에 발급 받았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렇다면 로버트 할리에서 ‘하일’이란 한국 이름으로 바꾼 뒤 그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는 “좋은 점이 많다”고 운을 뗀 뒤 “한국에서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97년 8월 귀화한 뒤 12월 대통령 선거 때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첫 주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당시 업무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던 그는 투표날인 12월 18일 새벽 6시에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주소지인 부산으로 내려가 투표하고 오전 11시 급히 상경, ‘007 작전’처럼 귀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그는 “대통령을 직접 뽑으면서 비로소 대한민국 국민이 된 기분을 느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87년 10월 명현숙(41)씨와 결혼한 하씨에게는 아들이 세 명 있다. 제선(고3), 제욱(중3), 제익(초등학교 3)의 이름 돌림자인 ‘제’는 처가쪽 조카 이름에서 따왔다.

사실 그는 혈통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편이다. 따라서 뿌리를 중시하고, 족보를 따지는 우리나라의 전통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줬다.

“참 좋은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고 믿어요. 그래야 자부심도 가질 수 있죠.”



비록 미국 국적을 포기했지만, 자신을 낳아준 조국에 대한 사랑과 애착도 크다. “제 9대조 할아버지가 메이플라워호 선장입니다. 제가 공부해서 발견한 사실이에요. 6살 때부터 혈통을 공부했어요.”

설날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가 있는 경남 진해로 갈 계획이라는 하씨는 시조(始祖)답게 나름대로 포부도 밝혔다. “그래도 제가 영도 하씨 시조인데 (후손이) 많이 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들만 셋이니까 그게 가능하겠죠.”

“한국에 와서 좋은 것을 많이 얻었다”는 하씨는 그중에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자칫 소외될 수 있는 외국인 자녀들을 위한 외국인학교(전북ㆍ광주)도 운영하고 있다.

낯선 본관…귀화 외국인이 상당수

‘독일 이씨’ ‘구리 신씨’ ‘성남 이씨’….



'인라인 요정' 궉채이 선수.

처음 듣는 낯선 본관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외국인이 귀화하면서 새로운 성씨를 만들고, 시조(始祖)가 됐기 때문이다. 하일 씨처럼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중에는 이러한 경우가 적지 않다.

방송인 ‘이한우’로 잘 알려진 이참(52ㆍ독일명 베른하르트 크반트)씨는 1986년 귀화하여 ‘독일 이씨’이 시조가 됐다. 자녀는 2명(1남 1녀)으로, 독일 이씨는 모두 3명이다.

여성으로는 프랑스 출신 방송인 이다도시(여·37)씨가 유명하다. 96년 귀화한 그는 본관은 따로 신고하지 않았다. 여성이어서 ‘도시’ 씨는 그가 유일하다.

스포츠계에도 귀화하여 새로운 성을 만든 이들이 꽤 있다. 2000년 귀화한 러시아 대표 선수 출신 골키퍼 신의손(46ㆍ러시아명 사리체프)씨는 소속팀 안양이 있는 구리를 본관으로 삼아 구리(九里) 신(申)씨의 시조가 됐다.

프로축구 성남 일화의 러시아 출신 공격수 이성남(29ㆍ러시아명 데니스)는 연고지 성남에서 본관과 이름을 땄다.

이밖에 귀화를 통해 새로운 성씨가 탄생된 경우는 아니지만, 인라인스케이트 스타 궉채이의 ‘궉’씨도 보기 드문 희귀 성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순창에 궉씨가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으며 중국의 성이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다. 선산, 순창, 청주 등 세 본관이 있다.

2000년 통계청 인구 조사에 따르면 궉씨는 전국에 74가구 248명이 살고 있는데, 채이는 청주 궉씨 19대손이다.

또 독특한 이름 때문에 인기를 모았던 판유걸(24)씨의 해주 판(判)씨는 전국에 87가구, 290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견미리(41)의 견(甄)씨도 전국에 1,147명, 인기 여성댄스그룹 베이비복스의 멤버 간미연(23)의 간(簡)씨는 2,42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6-01-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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