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특이신호 땐 곧바로 원인분석… 일요일에도 출근해 보고서 작성펀드매니저들에 틈만 나면 설명… "전망대로 주가가 움직일 때 보람"

미국인들은 노후를 대비한 재테크 수단으로 주식 투자, 그중에서도 간접투자를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부동산보다 환금성이 높고 수익률도 짭짤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점차 그렇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부터 펀드 등 간접투자상품에 시중 자금이 몰리고 있다. 주간한국은 창간 42주년을 맞아 간접투자에 도움을 주기 위해 증시를 이끄는 두 축인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의 세계를 살펴보는 특집을 꾸몄다. 아울러 펀드 상품 및 투자 요령, 애널리스트가 직접 쓰는 업종별 내년 전망을 소개한다.

‘짧고 강렬한 전성기’. 이런 특성을 지닌 직업으로는 연예인과 프로스포츠 선수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스타’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대와 그라운드를 벗어나 주식시장에 가보더라도 참으로 흡사한 직업을 만날 수 있다. 증권사 소속으로 증시분석을 담당하는 전문가인 애널리스트가 그들이다.

대우증권 기업분석부 남옥진(35) 연구위원은 여의도 증권가에 이름깨나 알려진 스타급 애널리스트다. 입문 당시부터 유통 업종만 담당해온 그는 3~4년 전부터 업계에서 ‘베스트’란 타이틀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에게 그런 명성은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는 불꽃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약 3년마다 ‘베스트’ 그룹이 거의 물갈이될 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버티기 어려운 곳이 애널리스트 세계라는 설명이다.

“애널리스트는 평판과 이름값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찾는 사람이 없어지면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는 점에서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과 비슷한 운명이죠.”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게 힘들다고 했던가. 남 연구위원과 같은 A급 애널리스트는 ‘일과의 전쟁’을 벌이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고 갈 곳도 많다. 수화기를 들었다 하면 20~30분은 금세 지나가는 전화 통화도 많을 땐 하루 30통 가까이 한다. 그의 일상을 잠깐 들여다보자.

그는 매일 아침 7시면 이미 사무실에 앉아 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조간신문을 탐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 동향과 담당 업종 및 기업의 변화를 한눈에 살펴본다. 숨가쁘게 돌아갈 하루 일정도 미리 정리해둔다.

통상 8시쯤엔 늘 기관 설명회가 잡혀 있다. 어떤 날은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요청 기관으로 바로 달려가기도 한다. 이 자리에서는 주식시장 개장을 앞두고 투자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펀드매니저들에게 유통업종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전망을 제시한다. 특히 보고서를 발표한 날은 여러 기관을 돌며 설명회를 몇 차례나 열어야 한다.

장이 열리는 9시에는 다시 사무실로 복귀한다. 이때부터 대략 정오까지는 여러 기관에서 요청한 자료를 만들거나 짬짬이 다음에 발표할 보고서를 작성한다.

또한 수시로 펀드매니저의 전화를 받기도 하고 먼저 걸기도 한다. 이처럼 전화로 이뤄지는 ‘콜 서비스’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그는 펀드매니저 외에도 회사 지점 직원이나 기자, 간혹 걸려오는 일반 투자자의 전화에도 친절하게 응대해야 한다.

시장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도 당연히 고유 업무에 속한다. 개장 시간 동안 자신의 담당 업종인 유통산업의 주요 종목별로 주가 변화 등을 관찰하고 특이한 신호가 감지되면 즉시 원인 분석에 들어간다.

점심 시간은 대부분 업무의 연장이 되곤 한다. 펀드매니저들의 제안으로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에게는 자신의 전망에 따라 최종적인 투자를 결행하는 펀드매니저가 곧 최대의 고객이기 때문에 그들의 요청에는 항상 ‘스탠바이’가 돼 있어야 한다.

“펀드매니저와 식사를 함께 하면 계속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아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때가 많아요. 그렇게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니 최근엔 위궤양까지 걸렸습니다. 뭐,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후 3시, 증시가 문을 닫은 뒤에도 남 연구위원은 바쁘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종목 분석을 위한 기본 업무인 기업 탐방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엔 동행 탐방을 원하는 펀드매니저가 줄을 서 있어 혼자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보통 탐방을 가면 해당 기업 IR담당자를 만나는데 경영 실적을 확인하거나 향후 목표, 사업전략 등을 꼼꼼히 듣다 보면 두세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기업 탐방이 끝나더라도 하루 일과가 끝난 것은 아니다. 여의도 사무실로 다시 돌아와 밤 10시 정도까지는 자료 작성이나 업무 정리를 해야 한다. 종종 기관 설명회나 기업 탐방이 2건씩 몰리는 날도 있는데, 이런 날은 일정이 뒤죽박죽이 돼 정신 차리기가 힘들 정도라고 한다.

주5일 근무제도 애널리스트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공식적으로 토, 일요일은 휴무이지만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일요일에 스스로 출근한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요구를 처리하느라 주중에 소화하지 못한 업무를 챙기기 위해서다. 남 연구위원의 경우 주로 조용한 일요일 시간을 활용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리서치 활동을 한다.

이처럼 항상 강도 높은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까닭에 애널리스트에게는 체력적인 부담도 크게 따른다. 그래서 이 바닥에서는 대부분 힘이 떨어지는 마흔 살 즈음에 애널리스트를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주 바쁜 날은 저녁 무렵이 되면 입에서 단내가 나고 머리가 멍할 때가 많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애널리스트 일 자체가 ‘노가다’나 다름없습니다. 정신노동뿐 아니라 장시간에 걸친 육체노동도 뒤따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남 연구위원은 이렇게 힘든 직업을 왜 선택했을까.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 판단과 책임 하에 독립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꼈죠. 처음엔 잘 몰랐지만 내가 말하고 전망한 대로 주가가 움직이고 시장이 변화할 때의 벅찬 희열감 때문에 이 일에 더욱 몰입하게 됐습니다.”

애널리스트는 시장에서 자신의 보고서로 말을 하고 평가를 받는다. 남 연구위원은 보통 한 달에 3~6건 정도 보고서를 낸다. 그리고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담당 산업을 심층 분석하고 향후 전망을 밝히는 ‘베이직 리포트’(basic report)를 낸다.

하지만 고객(펀드매니저) 서비스 활동에서 보듯이 보고서는 성공적인 임무완수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다. 애널리스트는 자신이 판단한 대로 개별 종목의 주가가 움직였을 때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보고서는 한낱 휴지 뭉치에 불과할 뿐이고, ‘자본시장의 평가자’ 또는 ‘기업가치의 평가자’라는 별칭도 어울리지 않는 허울에 그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애널리스트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다. 자신이 내놓은 보고서대로 주가가 움직이면 크게 보람을 느끼고 반대로 움직이면 크게 낙담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성적표가 쌓여 어떤 이는 ‘베스트’ 타이틀을 얻는 반면 어떤 이는 조용히 옷을 벗게 된다.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매수’나 ‘중립’ 의견은 내지만 ‘매도’ 의견(현 주가가 비싸다, 즉 고평가 돼 있다는 뜻)을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엉터리라는 비판도 심심찮게 제기돼 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만약 어떤 기업에 대해 매도 의견을 낸다면 그 기업이 가만 있겠습니까? 왜 우리를 무시하느냐, 이렇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리 되면 해당 기업과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은 물론 탐방을 가는 것도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국내 풍토에서는 건전한 충고나 비판을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투자자들은 이런 사정을 감안해 보고서의 ‘행간’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남 연구위원은 권고한다. 그가 일반 투자자들에게 주는 팁 하나 더.

“어떤 기업이 우량하냐고요? 한마디로 ‘이익이 많이 나는 기업’이죠. 일반인들은 PER(주가수익률)이니 PBR(주가순자산비율)이니 복잡하게 따질 거 없습니다. 일상 속에서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판단할 수 있어요. 가령 유통산업의 예를 들자면 누구나 백화점 가고 할인점 가지 않습니까? 또 어떤 상품을 많이 쓰는지도 알고요. 바로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