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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 역할 대행] 돈 주면… 아내 역할도 대행?
역할 대행 서비스 갈수록 다양
20대들 일자리 못 구하자 아르바이트 삼아 대행인으로 잇단 지원
애인, 하객 등 대행서비스 100여 종… 자녀 과제물 대신 써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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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남편과 헤어진 지 3년쯤 된 A씨(35)는 얼마 전 만난 새로운 남자와 조만간 재혼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요즘 오랜 만에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지만 한 가지 근심거리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서고 축하를 해줄 친구들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결혼 이후 가까운 친구들과 연락이 뜸했던 데다 두 번째 결혼에까지 초대하는 게 왠지 주저되는 A씨는 다른 해결책이 없을까 혼자 끙끙대고만 있다.

#2. 내로라 하는 대기업의 B부장(46)은 얼마 전 부친상을 당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도 황망했지만 문상객을 어찌 맞을까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더욱 답답해졌다. 원래 일가 친척이 적은 데다 평소 서로 내왕이 없다 보니 막상 빈소를 지켜주고 손님을 맞을 사람이 없었던 것. 회사에서는 임원 자리를 예약했다는 평을 들어온 그는 직장 동료 문상객들 앞에서 체면이 깎일까 여간 노심초사가 아니었다.

#3. 시골 출신으로 서울에서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C씨(30)는 결혼을 재촉하는 고향 부모님 성화에 한시도 마음 편할 때가 없다. “대체 언제 장가갈 거냐, 혼자 올 거면 다음 설날에는 오지도 마라”며 역정을 내는 부모님의 전화를 하루 걸러 한 번씩 받다 보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하지만 그는 나이 서른에 결혼은 가당치도 않을 뿐더러 좀 더 자신의 삶을 즐겨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도시 청년이다. 그럼에도 부모님과의 냉전을 끝내야만 하는 필요는 절실하다.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A씨, B부장, C씨 등 세 사람의 상황은 요즘 세상에 드물지 않은 경우다. 조금만 주변을 둘러 봐도 유사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고민을 안고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게 됐다. 불러만 주면 냉큼 달려오는 ‘해결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어떤 개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나 역할이 부재(不在)할 때 그것을 대신 해주는 이른바 ‘역할 대행’ 서비스 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다. 아직은 다소 낯선 이 서비스는 불과 1, 2년 전 태동했지만 빠른 속도로 시장을 넓혀 나가는 중이다.

그 배경에는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은’ 요즘 개인들의 속사정이 녹아 있다. 개인의 역량은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오히려 갈수록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추세가 역할 대행 수요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역할 대행 서비스는 어느날 갑자기 불쑥 생긴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심부름센터’가 그 원조 격이다. 가벼운 민원 업무 처리나 물건 전달에서부터 의뢰인이 나서기 곤란한 남의 뒷조사까지 맡아줬던 심부름센터가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의 산업 수준으로 성장한 대리운전 역시 역할 대행의 한 분야로 볼 수 있다.

최근 역할 대행 시장의 확대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것은 바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결혼식 하객 대행이다. 대체로 6, 7년
전부터 등장한 하객 대행 업체들이 제법 장사가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행 분야가 여러 갈래로 가지를 쳐 나가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역할 대행 시장의 선발 업체로 분류되는 ‘니드온’ 김휘중 실장은 “2004년 무렵 하객 대행 업체가 다수 성업 중인 사실을 안 뒤 결혼 시즌에 구애 받지 않고 1년 내내 대행을 매개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역할 대행업을 착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수요와 시장이 생겼다면 그 다음은 공급이 따라줘야 하는 법.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실은 역할 대행 시장에 ‘공급 대기 물량’, 즉 대행인이 넘쳐 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몇 가지 사회구조적 요인으로 풀이하고 있다.

우선 주5일제 시대가 도래하면서 풍족한 여유시간을 활용해 부수입을 올리려는 ‘투잡족’이 늘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대행인의 70% 가량이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 부업 아르바이트(알바)를 찾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주중에도 저녁 시간 등에 짬을 내 용돈벌이에 나서는 대행인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청년 실업, 조기 은퇴 등으로 노동 시장에서 배제된 잠재적 노동인구의 증가도 대행인 공급 확대에 한몫한다. 특히 대부분 역할 대행 업체에는 돈되는 알바를 구해 보려는 20대 젊은이들로 넘치는 실정이다. 물론 그중에는 대학생이나 직장인들도 있지만 “돈이 절실히 필요해요” “무엇이든 시켜만 주세요”라고 읍소하는 ‘백수, 백조’가 적지 않아 보인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전문포털 알바몬(www.albamon.com)의 이력서 분석 결과에 따르더라도, 전체 지원자의 73.6%가 20대이고 이들 가운데 35%가 전문대 및 4년제 대졸자로 나타나 청년 구직자들이 알바 시장에 대거 유입돼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할 대행 서비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한마디로 복잡다기한 현대인들의 수요만큼이나 대행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지난 10월 현재 알바몬에 등록된 대행 알바 종류를 살펴보면 자질구레한 것까지 포함해 약 100여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업체별로는 대개 적게는 열 가지 안팎에서 많게는 수십 가지 역할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보통이다. 상위권 업체 ‘조인스잡’의 경우 크게 4가지 카테고리 아래 30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해 국내서는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

비교적 의뢰인이 많은 인기 분야로는 하객, 애인, 부모, 엄마, 가사(家事) 대행 등이 꼽힌다. 부모 대행은 사연 있는 젊은 남녀들의 결혼식 등에서 대리 부모 역할을 해주는 경우가 많고, 엄마 대행은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서 불가피하게 보호의 손길을 빌려야 하는 경우에 많이 활용된다고 한다. 가사 대행은 엄마 대행과도 기능이 일부 겹치지만 젊은 부부들이나 독신자들이 바쁜 일상 때문에 집안일을 맡기는 경우도 많다고.

수요가 많지는 않지만 자녀 대행이나 남편 및 아내 대행도 더러 의뢰가 들어온다. 자녀 대행은 가령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병원에 모셔가지 못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고, 남편 및 아내 대행은 이혼 후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행사 등에서 일시적으로 반려자가 필요로 할 때 요청하는 서비스다. 한때 ‘잠자리만 빼고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다해준다’는 업체가 등장해 화제를 부른 적도 있으나 서비스 수위의 ‘모호성’ 때문에 흐지부지 중단됐다고 한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이용하는 비즈니스 업무 대행도 활용 빈도가 높은 서비스다. 통역, 번역, 프리젠테이션 등 전문가를 내부에 보유하지 못한 작은 사업체들이 업무상 필요가 생기면 역할 대행 업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밖에 각종 행사나 이벤트에서 사회, 축가, 연주, 내레이터 등 역할을 대행하는 서비스도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몸과 마음’을 빌려주는 데서 더 나아가 ‘머리’를 빌려주는 이른바 지식 대행 서비스도 의뢰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로 보고서, 과제물, 자기소개서, 사업계획서 등을 제출해야 하는 직장인, 학생들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 대행인들의 도움을 빌리는 것이다. 하지만 자칫하면 대학가 등지에서 돈을 주고 사는 리포트나 논문처럼 불법적 소지가 생긴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업계에서는 역할 대행 서비스의 종류가 갈수록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많은 역할을 요구 받는 현대인들이 만능 탤런트일 수는 없기 때문에 자신의 취약한 부분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 보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영업을 하다 보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행 요청을 해오는 경우가 왕왕 있어 그에 맞춰 서비스를 계속 추가했다”며 “사회가 복잡한 만큼 대행 아이템도 사실상 무궁무진한 셈”이라고 말했다.

사랑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시대. 이제 돈만 지불하면 사랑뿐 아니라 자신의 ‘분신’도 구할 수 있는 참 쉬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



입력시간 : 2006/12/06 15:06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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