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사랑으로 가꾼 재혼가정남녀재혼·남초여재 세 가족… 아픔 딛고 새 둥지 안착

재혼가족이 완전한 가정으로 새로 거듭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새 둥지를 만든 새 구성원들이 서로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행복이라는 나무가 훌쩍 자랄 수 있다.

여기 각각 남녀재혼(재혼남+재혼녀), 남재여초(재혼남+초혼녀), 남초여재(초혼남+재혼녀)의 재혼 유형에 해당하는 세 가족이 있다. 이들은 재혼을 결심한 단계서부터 가정을 이룬 이후까지 몇 차례 고비를 겪었지만 서로의 노력과 주변의 지지 덕택에 단란한 가정을 이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재혼가족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세 가정의 사례에서 성공적인 재혼의 조건을 살짝 엿보자.

아이들끼리 갈등, 마음 터놓으며 해결

#1. 주부 J씨(44)는 얼마 전 이사한 뒤로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주변에서는 로또라도 당첨됐냐는 소리를 할 정도다. 허나 J씨의 기쁨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거나 넓은 집으로 옮긴 데서 비롯된 건 아니다.

그는 재혼한 주부다. 전 남편과 이혼하면서 아이들 양육까지 맡았던 J씨는 불가피하게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두 아이를 어렵사리 키웠지만 혼자 힘으로는 버거웠다. 게다가 딸은 16세, 아들은 12세로 둘 다 민감한 사춘기. 아이들이 결손가정의 자녀란 소리를 듣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J씨는 결국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현재 남편인 K씨(53)다.

K씨는 전 부인과 사별하고 5년 동안 두 아이를 홀로 키웠다. 아내는 3년 동안이나 암으로 고생하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때문에 아이들은 한창 자랄 나이에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비록 딸과 아들이 각각 19세, 14세로 어느 정도 컸지만 K씨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빈 자리를 메워주고 싶었다.

결국 두 사람은 재혼을 했고 J씨가 두 아이를 데리고 K씨의 집으로 들어옴으로써 두 가정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러나 부부에게 곧 위기가 닥쳤다. 두 사람의 친자녀들이 좀처럼 융화되지 못하고 노골적인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K씨의 자녀들은 J씨의 자녀가 자신들의 물건에 손을 못 대도록 텃세를 부렸고 J씨의 자녀들은 또 그들대로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처럼 눈치를 보았다. 양쪽 자녀들은 특히 컴퓨터 때문에 늘 전쟁을 치렀다. 게임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독차지하려는 K씨의 막내는 J씨의 막내가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컴퓨터를 한 대 더 들여놓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제는 첫째들까지 나서 편을 가른 뒤 컴퓨터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날이 갈수록 으르렁대는 아이들. 부부는 고민 끝에 K씨가 살던 집에 J씨 가족이 들어와 합친 것과 친남매끼리 같은 방을 쓰게 한 것이 문제의 원인임을 밝혀냈다. 결국 부부는 가족의 새로운 질서와 유대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처음부터 새로운 터전에서 시작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사를 결정했다.

또 한 달에 꼭 한 번은 가족 모임을 가졌다. 서로 마음 속에 담아뒀거나 불편한 게 있으면 털어놓자는 의도였다. 그리고 딸들은 딸들끼리, 아들들은 아들들끼리 서로 방을 같이 쓰게 했다.

이처럼 가족 모두가 새 집과 새 방을 쓰게 되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내 것 네 것을 두고 다투던 아이들이 조금씩 우애를 느끼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간 것. 물론 아직까지는 종종 다퉈서 서로 토라지기도 하지만 ‘뒤끝’이 없는 걸 보면 예전과는 크게 달라진 게 사실이다. J씨와 K씨는 그런 자녀들을 보면서 요즘 가족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고 한다.

J씨는 “남편 없이 자녀를 키울 때보다 훨씬 사람 사는 것 같아 행복하다”며 “이제 네 아이 뒷바라지를 하며 행복한 노후를 설계하는 것이 남은 꿈”이라고 말했다.

초혼녀의 헌신적 사랑이 상처 극복

#2. 회사원 A씨(34)는 딸 민지(가명)가 세 살 때 부인과 헤어졌다. 지나치게 분방한 성격의 부인은 딸 아이를 두고도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버렸다. 때문에 민지는 부모 얼굴을 겨우 분간할 무렵부터 엄마 사랑을 못 받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

민지는 아빠뿐 아니라 고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름대로 애정을 주며 돌봤지만 엄마의 사랑을 몹시도 그리워했다. 그런 민지는 다섯 살이 될 무렵 학습지 방문교사 Y씨(27)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Y씨는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 살고 있던 터라 자신을 잘 따르는 민지를 좋아하게 됐다. 특히 민지가 세 살 때부터 엄마 없이 컸고 아빠와 단둘이 살면서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사실을 알게 된 Y씨는 수업시간 외에도 틈만 나면 민지를 찾아와 함께 놀아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면서 둘만의 정을 키워 나갔다.

그런 Y씨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A씨는 고마움의 뜻으로 식사를 대접했고 그때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이후 민지를 연결고리로 함께 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A씨와 Y씨는 결국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

자신을 엄마처럼 따르는 민지와 믿음직스러운 A씨. Y씨가 초혼임에도 이들을 기꺼이 가족으로 받아들인 이유다. 또한 미국에 사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서 본인 역시 가족에 대해 애틋한 그리움을 많이 느껴본 것도 결단을 내린 배경이다.

세간의 시선으로 보자면 손해 보는 결혼을 한 Y씨이지만 오히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이 더 열심이다. 친정어머니에게 하는 것처럼 시어머니에게도 ‘엄마’라고 부르는 등 애교가 넘친다. 과연 생모 이상으로 민지를 돌볼 수 있을까 하며 일말의 불안감을 놓을 수 없었던 시댁 식구들도 Y씨의 진심어린 태도에 반해 버렸다.

Y씨를 만나 이혼의 아픔을 깨끗이 지워버린 A씨는 “집사람의 헌신적인 마음씨에 나는 물론 가족들도 큰 고마움을 느낀다. 앞으로 살면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그게 오히려 걱정”이라며 웃었다. 두 사람은 민지가 동생이 생기는 것을 수긍하면 아이도 곧 낳을 계획이다.

시대식구의 따뜻함 "재혼 며느리면 어때"

#3. 디자이너 일을 하는 H씨(35)는 이혼녀다. 시댁 식구와의 갈등에다 남편과의 성격 차이 등으로 이혼을 했다. 아이가 없어서 그나마 홀가분하게 결혼생활을 정리할 수 있었다.

모처럼 싱글의 삶을 즐기던 H씨는 우연히 자영업을 하는 S씨(38)를 만났다. S씨는 일만 하다가 결혼 적령기를 놓친 노총각. 둘은 취미가 비슷했고 말도 잘 통했다. 그렇게 만나다 보니 서로를 평생의 반려자 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H씨는 전 남편보다 경제력은 떨어지지만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S씨가 좋았다.

하지만 결혼 실패의 아픔을 가진 H씨로선 또 다시 상처를 입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S씨 식구들이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가진 자신을 선선히 받아들일지도 의문인 데다 설사 재혼한다 하더라도 시댁 식구들과 잘 지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S씨의 거듭되는 구애에 마음의 문을 연 H씨는 일단 동거를 하기로 했다. S씨는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꼭 결혼이란 형식을 지킬 필요가 뭐 있느냐며 함께 살면서 결혼은 차차 생각하자고 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던 S씨의 집안에서는 차라리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뒤에 살라며 성화를 부렸다. 그런데 H씨의 부모는 딸의 이혼 사유가 시댁과의 갈등으로 빚어진 문제였던 데다 이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결혼하는 것은 섣부르다며 반대했다. 더욱이 딸이 능력만 된다면 혼자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하지만 막내 아들의 결혼식을 꼭 보고 싶다는 S씨의 팔순 노부모의 간청을 끝내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S씨 부모는 며느리의 이혼 경력을 절대 흠잡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다. H씨의 시부모는 예전 시부모와 달리 자상하고 따뜻한 분들이었다. 며느리가 음식도 잘하고 손재주도 있다며 곧잘 칭찬을 해주셔서 H씨는 친정부모처럼 모셔야지 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온다. 또한 시누이들 역시 편안하게 대해줘 시댁 스트레스는 옛 이야기가 됐다.

재혼을 통한 H씨의 인생 2막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껴주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 덕분에 H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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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