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남북정상회담 이득' 계산… 비핵화 이행 조건 체제지원 공표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호주를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7일 오후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매번 어긋나던 서울-평양-워싱턴의 안테나가 모처럼 ‘북핵’이란 동일 주파수에서 만났다. 북ㆍ미간 전유물이 돼왔던 북핵 문제에 한국이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들고 한 자리를 차지한 것.

일각에서는 한국이 제시한 카드가 북핵에 대한 북ㆍ미의 전향적인 태도를 불러왔다는 얘기가 있다. 즉 한국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제시한 ‘한국판 마샬플랜’이 미국에도 이득이 되기 때문에 북미 양국이 북핵에 유화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추론이다.

북미 양국 간에 핵 문제가 어떻게 귀결되느냐에 따라 한반도에 미치는 후폭풍도 달라질 전망이다. 북한과 미국이 연내 핵 신고ㆍ불능화를 성사시킨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정세에 대변화가 예상된다.

북한이 연내 불능화 조치를 이행할 경우 미국은 50년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적성국교역법 적용과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7일 이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리고 있는 호주 시드니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이 검증 가능한 핵폐기 조치를 이행할 경우 북한의 안전보장과 경제지원 등 상응 조치를 취하기로 공표해 북미 협상에 청신호를 켰다.

이에 앞서 9월 2일 제네바에서 종료된 제2차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회담에서 북한은 2ㆍ13합의 2단계 조치인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의 전면신고를 올해 안에 완료하고, 미국은 이에 상응해서 북한에 대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북미 관계 정상화의 최종 단계인 종전 선언과 북미 수교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또한 ‘휴전’상황에 종지부를 찍는 종전선언을 하고 조속한 한반도 평화체제로 이행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해 남북 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더구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언급된 ‘한국전 종전’과 ‘평화협정’은 제네바 실무그룹회의에서의 ‘중요합의’와 함께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 개선에 상당한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내달 2일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군사적 신뢰 구축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반도 안정 및 정치ㆍ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가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새로운 전기를 맞은 북핵 문제는 그렇다고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북핵 불능화단계에서 북미간에는 △불능화 개념에 대한 합의 △핵프로그램 신고목록에 대한 합의 △ 불능화 대상에 대한 합의 문제 등에 큰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분리해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게다가 내년 상반기에 임기를 마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억제력이 약화될 여지가 있다.

한국 역시 북핵 문제에 발을 들여놓고 있지만 전례에 비추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6자회담 수준의 선언을 이끌어내는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북한은 정상회담에서 ‘곶감’만 빼먹고 의례적인 제스처를 취할 것이 점쳐진다.

결국 북핵에 따른 ‘한반도 빅뱅’은 북핵을 어느 수준에서 억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선 6자회담 당사국들이 북핵 불능화 이행을 ‘행동 대 행동’원칙으로 대응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한국은 북핵문제 접근에 한계가 있는 만큼 북ㆍ미 간 문제로 남겨두고 남북경협을 중심으로 한반도 대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현명한 접근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그러한 접근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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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