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벽력 같은 딸의 실종에 죽음까지 생각한 부모의 타들어가는 가슴

“은지를 찾으려고 안 가본 곳이 없어요. 미친 듯이 전국을 찾아 다녔죠. 부끄러운 얘기지만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고 까지 생각했었거든요.”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딸 은지(8)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들고 전국을 발이 닳도록 헤맨 지도 벌써 6년이 흘렀다. 2002년 11월 13일 아버지 김복민(39)씨가 은지 양의 동생과 함께 잠깐 잠든 사이 거실에서 TV를 보던 은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은지 양의 어머니 조옥자(46)씨는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까지 가게 일을 하고 있었다.

“지하 단칸방에서 살고 있어서 낮에는 깜깜하고 저녁때 불을 켜야 환해져요. 그래서 은지가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는 버릇이 생긴 거예요. 그날도 밤낮이 바뀐 은지가 혼자 놀고있었는데 깜빡 잠든 사이에 없어져졌어요. 2살 배기가 혼자 집을 나갔을 리는 없고 누가 와서 데려간 게 분명해요.”

김 씨는 은지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온 동네를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했다. 그러나 파출소에서는 좀 더 찾아보라는 말만 하며 아무런 대응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신대방역 근처부터 해서 보라매공원까지 다 찾아봤는데도 은지를 못 찾았어요. 또다시 파출소로 가서 재신고를 했고, 그제서야 실종신고 접수를 받더군요. 더 화가 나는 건 접수만 했지 파출소에서는 별다른 조치가 없었어요”

당시 간판제작·설치 일용직 노동자였던 김 씨는 결국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부인 조옥자씨와 함께 은지 양 찾는 일에 전념했다.

“은지가 1.9kg 미숙아로 태어나서 저희 부부는 온 정성을 다해 키웠죠. ‘너 죽으면 나 죽는다’는 심정으로 전단지며 현수막이며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미아 찾기 프로그램에도 출연해봤는데 찾지 못했어요.”

일정한 수입 없이 아이를 찾아 다니면서 김 씨 부부는 살던 셋방에서도 나와야 했고, 카드빚이 쌓이면서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은지 동생이 그 당시 100일이 갓 지났을 때예요. 지금은 어린이집에서 무료로 지원해주고 있는데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어떻게 시킬지 걱정이에요”

가정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김 씨는 동네 식당주인의 도움으로 식당 일을 하며, 식당 한 켠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심장판막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은 김 씨는 지금 심장 박동기에 의존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또 최근에는 부인 조옥자씨마저 담석 수술로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이 보이고 걸을 수 있는 힘이 남아있는 한 딸을 찾으러 다닐 겁니다.”

김복민 씨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삶의 희망이자 보배였던 딸 은지 양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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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