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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역사] 8월 20일 '프라하의 봄' 소련군 탱크에 짓밟히다

프라하의 봄은 1946년부터 해마다 5월에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열리는 음악회다. 프라하의 봄 개막일에는 전통적으로 민족주의 음악가 스메타나가 작곡한 교향시 <나의 조국>이 연주된다. 이런 까닭에 <나의 조국>은 프라하의 봄을 상징했다. 그러나 1968년 체코 사태를 계기로 프라하의 봄은 민주화를 상징하게 됐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1968년 4월 인간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주창했다. 개혁파 알렉산드르 둡체크는 공산당 제1서기가 되자 언론ㆍ출판ㆍ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경찰정치와 사전검열제를 없앴다. 체코슬로바키아가 개혁을 멈추라는 소련의 경고를 무시하자 바르샤바조약기구 동맹군은 1968년 8월 20일 오전 11시 체코슬로바키아를 침략했다.

공산당 개혁파가 주도한 프라하의 봄은 소련군 탱크 앞에 저물었다. 소련 낙하산 부대는 21일 새벽 4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건물을 점령했고, 폴란드와 헝가리, 불가리아, 동독군도 프라하를 향해 진격했다. 프라하 시민들은 소련군 탱크 앞에서 "나를 쏴라"고 외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외신 기자가 '프라하의 봄은 과연 언제 올 것인가'라는 기사를 쓰면서 프라하의 봄은 체코 민주화를 상징하는 표현이 됐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위기에 빠지면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사회주의 공동체가 집단 대응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소련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동유럽 국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브레즈네프 독트린에 동유럽은 소련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에 반기를 드는 전통을 가진 폴란드는 달랐다.

폴란드 노동자는 1988년 물가가 치솟자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와 폴란드 공산당은 파업을 끝내는 대신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바웬사가 이끈 야당은 1989년 6월 총선에서 예상과 달리 압승해 의회를 장악했다. 혁신과 개방을 강조했던 소련은 예전과 달리 비공산주의 정권을 인정했다. 폴란드 영향으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11월 민주화가 이뤄졌고 프라하의 봄은 무려 21년 만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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