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500m의 산악 도시 주류 카시족 몽골계 우리와 닮아모계 중심…외곽은 문명 비껴간 듯 옷은 남루하지만 얼굴엔 웃음 가득

실롱 가는 길
인도의 땅덩어리는 요지경 속이다. 길이 끊길 듯 이어지며 분위기도, 생김새도 다른 새로운 세상과 연결된다. 해발 1500m 고원에 들어선 실롱은 인도 동북부 메갈라야주의 당당한 주도다. 북으로는 부탄, 티벳이 가깝고 남쪽으로는 방글라데시와 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미얀마와 중국이 지척인 곳에 메갈라야주는 위치했다.

지도를 펼쳐보면 메갈라야주로 향하는 길목의 궤적들이 허물없이 그려진다. 인도의 거대한 땅덩이가 동북쪽에서 닫히는가 싶더니 네팔과 방글라데시 사이로 호리병처럼 연결된다.

완연한 아시아에 빼곡하게 둘러싸여 있으니 실롱 사람들의 생김새부터 다르다. 북인도에서 만나는 희고 훤칠한 아리안계와 남인도에서 만나는 거뭇하고 작달막한 드라비다계가 아니다. 주류인 카시족은 먼 조상이 몽골계로 언뜻보면 우리와도 비슷하게 생겼다.

옛 아삼주의 주도였던 고원 도시

도시의 뼈대만 보면 해발 1500m 외딴 고원에 들어선 고을치고는 꽤 강건하다. 지역분쟁으로 1972년 메갈라야주로 갈라지기 전 실롱은 100여년간 영국이 장악한, 차 생산지로 유명한 아삼주의 주도였다. 매끄럽게 뻗은 비탈길에 균일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취는 유럽의 산악마을마저 연상시킨다. 도시의 정체된 현실을 반영하듯 건물들의 외관은 죄다 빛이 퇴색됐다.

빨래하는 카시족 소녀들
도심 폴리스 바자르는 이 일대의 온갖 잡화와 농산물이 오가던 옛 아삼주의 교역 중심지다. 한갓지던 도시 풍경도 시장에 들어서면 왁자지껄해진다. 시내 중심에 힌두사원이나 이슬람 옛 사원이 아닌 세인트 대성당이 들어서 있고, 마을 곳곳에서 십자가를 목격하는 것도 독특한 풍경이다.

도시 외곽으로 벗어날수록 '또 다른 인도'의 느낌은 더욱 강렬하다. 실롱에는 주류인 카시족 외에도 자인티아족, 가로족 등과 대륙에서 호리병 길목을 지나 넘어온 본토 인도인들이 뒤엉켜 산다. 외곽 링키르뎀 마을은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카시족의 고원마을이다. 이곳에서 대단한 문화유적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산비탈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따뜻한 볼거리다. 벼랑을 내려서면 또 다른 마을과 연결되고, 그 길목 옹달샘에서 빨래를 하는 꼬마들과 조우한다. 검은 돼지가 뛰어 놀고 고깔 바구니를 이마에 맨 아이들이 오가는 곳. 문명이 비켜간 외딴 마을은 가옥과 차림새는 남루해도 행복한 미소들이 골목 곳곳에서 숨을 쉰다.

실롱의 카시족 마을에서는 옛 의식들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추수를 기념하는 '농크램 축제'때는 처녀, 총각들이 금 장신구를 차고 춤을 추며 염소를 제물로 바친다. 최근에는 염소 대신 닭을 바치기도 하는데 닭의 내장을 빼내는 행위는 다소 섬뜩한 의식이기도 하다. 페스티벌은 5일 가량 계속되며 짙은 어둠속에서 축제가 진행된다.

몽골계 주민이 지켜온 '그들만의 문화'

카시족은 인도에서는 드물게 모계 중심 사회다. 남자들은 '콰이'라는 허브 잎을 우적우적 씹고 다닌다. 입을 보면 닭을 잡아먹은 것처럼 죄다 빨갛다. 콰이는 카시족에게 껌, 담배같은 기호품이다. 카시족의 언어는 캄보디아어하고도 유사하다는데 흥미로운 점은 아랫마을과 윗마을의 말이 서로 안통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12억 인구 인도의 비공식 언어만 수백개이니 그중 몇 개가 이 근처에 흩어져 있는게 놀랄 일은 아니다.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지는 폴리스 바자르
실롱에서 세계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린다는 체라푼지까지는 대략 60km 거리다. 이곳에서 수십km 거리는 차량으로 두시간 넘게 소요되는 먼 길이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1.5차선'도로와, 사이드미러 없이 곡예주행을 하는 버스와, 화려한 외관과 달리 매캐한 매연을 쏟아내는 트럭들의 질주가 끝날때쯤 최대 강우량의 체라푼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길목을 달리다 보면 곳곳에 형성된 저수지에서 낚시대회도 열리는데 일렬로 서 있는 강태공들의 생김새가 또 제각각이다. 인도 동북부 어느 곳을 가로지르던 다민족의 인도는 용케 똬리를 틀고 있다.

실롱은 겨울에는 제법 춥고, 한 여름에도 아침저녁으로 피부에 닿는 공기가 싸늘하다. 도심에서 떨어진 고지인 실롱 피크에 오르면 산자락 아래 자리잡은 도시의 윤곽은 제법 운치있게 다가선다. 순박한 미소와 초록의 고원길들은 슬며시 그 위에 덧칠해진다.

여행정보

■ 가는길 한국에서 실롱까지는 델리나 콜카타를 경유하는게 일반적이다. 콜카타 등에서 구와하티 공항까지 국내선이 오가며 구와하티에서 실롱까지는 차량으로 3,4시간 가량 소요된다. 인도 방문때는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다.

■ 기타정보=숙소는 폴리스 바자르 인근에 몰려 있다. 각각의 언어를 쓰지만 도심에서는 힌두어와 영어를 병용하기도 한다. 실롱지역의 물가는 델리 등 대도시와 비교하면 현저하게 싸다. 이 일대에서 판매되는 아삼 맥주는 도수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여름에도 20도 내외의 선선한 기온을 유지해 긴팔 옷을 준비해야 한다.

주민들의 낚시 대회

실롱 도심 풍경
실롱의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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