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에 젖은 몽환의 신새벽 가을이 익어 별천지더라

[여행] 청송 주산지
물안개에 젖은 몽환의 신새벽 가을이 익어 별천지더라

청송 주왕산 기슭의 주산지(注山池)는 천년 전 숨어들었던 주왕의 전설을 들려줄 듯한 신비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저수지다.

특히 물안개가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가을 새벽녘엔 신비스럽다. 비록 사람이 만든 인공 저수지지만, 분위기는 조물주가 이 땅을 창조할 무렵의 연못 같다.

주산지의 주인은 수백 년 묵은 왕버들

주산지는 280여년 전인 1720년(숙종 46) 착공해 이듬해 10월에 완공한 인공 저수지다. 낙동정맥 분수령 가까이 있는 덕에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이 드러난 적은 없다는 주산지.

둑에 서있는 작은 비석엔 ‘정성으로 둑을 쌓아 물을 막아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 뜻을 오래 기리기 위해 한 조각 돌을 세운다(壹障貯水 流惠萬人 不忘千秋 惟一片碣)’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저수 면적 1만여평의 결코 크지 않은 주산지의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300년 묵었다는 왕버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30여종에 이르는 일반 버드나무에 비해 키가 크고 잎도 넓어 왕버들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이 주산지에서 왕버들은 진짜로 왕 대접을 받는다.

아마 주왕의 전설을 들려줄 듯 지키고 있는 20~30그루의 왕버들이 없었다면 주산지는 주왕산 깊이 있는 호젓한 저수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연못이든, 호수든, 저수지든 물이 가득해야만 제격이다. 주산지도 마찬가지다. 모내기철이나 갈수기에 저수지의 물이 줄어들거나, 겨울에 눈은 내리지 않고 얼음만 얼어있으면 주산지의 매력은 반감된다.

봄엔 봄비가 많이 내린 다음날, 여름엔 장마가 끝난 뒤에 찾으면 좋다. 그리고 9월이 지나면 저수지에 물을 빼지 않기 때문에 넘실대는 물결을 만날 확률이 높다.

가을날 이른 아침엔 하얀 물안개가 속세를 떠난 듯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특히 별바위 주변이 단풍으로 물들 무렵엔 별천지가 따로 없다. 올해 주산지 단풍은 10월25일을 전후해서 절정을 이룰 것이라 한다.

청송 주왕산 기슭의 주산지(注山池)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영화가 상영된 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엔 촬영지가 어디인지 묻는 질문이 쇄도했다. 이 영화는 2004년 제41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는데, 주산지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작품상은 주산지 덕분”이라고 했을 정도다. 허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암자는 아쉽게도 환경적인 이유로 곧바로 철거되었다.

국립공원주왕산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주산지를 찾는 사람은 평일에는 1일 500명, 주말엔 무려 2,000명 이상이 된다고 한다.

주왕산에 버금 가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허나 주산지는 몇 년 전만 해도 비경을 알아챈 사진작가들만이 소리소문 없이 찾아들던 곳이었다.

요즘도 주산지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형 카메라와 삼각대를 갖추고 있다. 허나 기죽을 필요는 없다. 조금 과장하자면, 주산지는 신새벽에 카메라만 들고 가면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을 정도다. 어느 곳에 렌즈를 맞추든지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자기 생애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솟대와 장승이 반기는 주산지 아랫마을

주산지를 오가다 보면 붉게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과수원풍경을쉽게 만난다. 그리고 과수원과 접한 麗×?금방 따온 사과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어김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도시 청과물시장에서 구입하는 사과보다 당연히 싱싱하고 싸다.

육즙이 달큼한 청송 꿀사과도 빼놓을 수 없지만, 기왕에 주산지를 보러 나선 길이라면 이전리 서쪽에 있는 장승과 솟대도 한번쯤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통이 살아 숨쉬는 심심산골 오지마을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산지가 청송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자연이라면,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면서 도로의 이정표 기능을 하였던 장승, 그리고 하늘을 향한 주민들의 소망을 담은 솟대는 산골 주민들의 소박함을 보여주는 민속인 것이다.

이전리 주민들은 매년 정월에 장승과 솟대를 세운 후 고사를 지낸다. 이 장승은 주왕산 입구 삼거리의 안승걸 장인공방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안씨는 각종 장승경연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의 소유자다.

여행정보

교통 △서울→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34번 국도→안동→35번 국도(영천 방향)→길안→914번 지방도→청송읍→31번 국도(영천 방향)→청운리 삼거리(좌회전)→914번 지방도→주왕산 입구 삼거리(우회전)→부동면→이전리→주산지. 수도권에서 5시간 소요. 부동면사무소에서 부남면으로 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타고 1㎞정도 달리면 오른쪽 길가에 장승과 솟대가 보인다. △동서울→주왕산=매일 5회(08:40 10:20 10:50 14:20 15:00)운행. 청송→주산지(이전리)=매일 10회(07:00~19:25) 운행. 30~40분 소요.

숙식 주산지 진입로와 절골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있는 주산지민박(054-873-4093)을 이용하면 주산지 아침 안개를 보기가 수월하다. 성인 2~3인이 묵을 수 있는 방 한 칸에 3만원. 주산지에서 승용차로 10~20분 거리의 주왕산 입구에 민박집과 식당이 많다. 메뉴는 산채비빔밥이 가장 무난하다. 1인분 5,000원.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5-10-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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