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망월사

‘바다를 바라보는 절’ 망해사(望海寺)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 나들목으로 나와 702번 지방도를 타고 서쪽으로 달리면 먼저 눈을 붙잡는 것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광활하게 펼쳐진 평야다.

우리나라 제일의 곡창지대로 이름을 날리던 호남평야에서도 김제·만경의 들판, 즉 김만평야는 노른자위로 대접받았다. 주민들은 이 평야를 ‘징게맹갱 외에밋들’이라고 부른다. 김만평야의 너른 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 평야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거의 일직선이라 지평선을 바라보며 달리는 맛이 일품이다. 그렇게 한없이 달리다가 차를 세우고 논둑길을 걸으면 사람은 지평선의 한 점이 된다.

바다가 보이는 소박한 절집

바다로 이어지는 지평선 끝에 망해사가 있다. 이 절집은 백제 때인 642년(의자왕 2)에 부설거사가 처음으로 머물렀다고 전하다.

그 뒤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하였으나 절터가 무너져 바다에 잠기면서 잊힌 것을 조선 시대인 1589년(선조 22)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세우고 수도하면서 비로소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1933년에 중수하고 1991년에 극락전을 중창했으나, 현재의 모습은 사찰이라기보다는 암자에 가까운 소박한 절집이다. 그래서 거창한 규모나 유서 깊은 문화재를 염두에 둔 방문객이라면 첫 만남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해 지는 서쪽을 즐긴다’는 뜻의 낙서전(樂西殿)과 범종각 사이의 아름드리 팽나무가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팽나무 아래의 평평한 돌에 앉으면 바람 불 때마다 종소리 울릴 듯한 범종 너머로 썰물 때면 끝을 알 수 없는 갯벌이, 밀물 때면 깊이를 알지 못할 바다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불국사에서 출가한 부설거사는 지리산·천관산 등지서 수행하다가 문수도량으로 가기 위해 오대산으로 향했다. 가던 길에 거사는 김제에서 구무원이라는 사람의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때 18세가 되도록 벙어리로 살던 구 씨의 딸 묘화(妙花)가 거사의 법문을 듣고 말문이 터졌다.

묘화는 거사와 함께 살기를 간절히 원했다. 거사는 거절했고, 묘화는 자살을 시도했다. 결국 거사는 “중생이 앓고 있으므로 내가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깨달음을 실천하기로 하고 그녀를 받아들였다. 부부는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았으나 거사는 결코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가족 모두 수도에 전념했다.

거사 가족이 모두 성불한 도량은 변산의 월명암이다. 그 뒤 묘화부인은 장흥의 보림사를 창건했고, 아들 등운은 계룡산의 등운암을, 딸 월명은 변산의 월명암을, 그리고 거사는 망해사를 창건하고 나머지 생을 바다를 바라보며 보냈다.

팽나무 그늘서 바다를 감상하다 망해사를 빠져나와 ‘망해대’라 불리는 진봉산의 전망대로 간다.

망해사에서 야트막한 오솔길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5분쯤 걸으면 3층짜리 콘크리트 전망대가 나타난다. 여기를 오르면 동쪽으로는 넉넉한 바다요, 서쪽으로는 우리나라 제일의 곡창지대인 김제·만경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마땅한 조망처가 없어 옆에서 거닐던 평야지대를 독수리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는 맛이 아주 색다르다. 전망대가 있는 산등성이로는 심포항으로 이어지는 짧은 산길이 펼쳐진다.

갯벌과 노을이 아름다운 심포항

망해사에서 1km만 더 가면 진봉반도 서쪽에 위치한 작은 포구인 심포항이다. 갯벌은 동진강과 만경강에서 떠내려와 쌓인 퇴적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썰물 때면 무려 10km나 물이 빠진다고 한다.

한때 심포항은 ‘황금포구’였다. 부안의 계화도와 함께 질 좋은 백합조개 생산지로 이름을 날렸고,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면서 바닷물이 얕아 물고기 산란장소였기 때문에 뱀장어를 비롯해 각종 물고기들이 넉넉하게 잡혔다. 또 바다 밖 석산에서는 돌을 캐다 팔아 돈을 벌 수 있어 부자가 많았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돈머리’로도 불린다.

방파제를 따라 들어선 횟집촌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그마한 항구가 나온다. 각종 조개류를 파는 가게가 두엇 자리하고 있는데, 주민들이 생합이라 부르는 백합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한쪽엔 백합구이를 맛볼 수 있는 식당도 여럿 있다.

밀물 때면 파도 소리를 들으며, 썰물 때면 갯벌을 바라보며 각종 조개를 구워먹는 맛이 제법이다. 또 심포항에서는 망둥어낚시도 즐길 수 있다. 물이 들어올 때 바다로 나있는 부두에 서서 낚싯대 드리우면 어린이도 어렵지 않게 마릿수를 제법 낚을 수 있다. 미끼는 갯지렁이다.

한편, 심포항보다 한적한 어촌을 구경하고 싶다면 진봉반도의 서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거전마을로 가보자.

진봉면과 광활면을 잇는 702번 지방도가 급하게 휘도는 곳에서 마을 안쪽으로 1km 정도 들어가면 바다가 펼쳐진다. 횟집단지가 들어선 심포항과 달리 변변한 횟집이 없다. 이곳 주민들 역시 심포항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백합과 죽합 등을 채취하면서 생계를 이어 나간다.

숙식

망해사 근처에는 숙박 시설이 없다. 사보이모텔(063-544-6790), 심포장모텔(063-545-1662) 등의 숙박시설이 있는 심포항 주변에서 해결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 갯벌에서 잡은 백합은 심포항 최고의 별미. 크기에 따라 대합·중합·소합으로 구분한다. 날로 먹기도 하고 데침이나 죽으로 요리하기도 한다. 숯불구이도 인기가 있고, 은박지에 싸서 구운 뒤에 국물까지 마시는 것도 좋다. 심포항에는 뚝방회관(063-545-5503) 등 횟집과 조개구이집이 수십 군데 영업을 한다. 대합 1kg(1~2인분)에 2만원, 백합죽 한 그릇에 7,000원.

교통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 나들목→ 29번국도→ 4km→ 만경→ 702번 지방도→ 8km→ 망해사→ 1km→ 심포항. 수도권 기준 3시간 소요. △경부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서전주 나들목→ 716번 지방도→ 김제→ 29번국도→ 만경→ 702번 지방도→ 망해사→ 심포항. 수도권 기준 3시간 30분 소요.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