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가장자리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계요등’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 나무의 가지에 자신을 감고 올라간 모습이 자유롭고 집요하게 보인다.

마디마다 몇 송이씩 달려 피어있는 꽃송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간 예쁘지 않다. 하얀 꽃잎은 통처럼 올라와 그 끝에서 펼쳐 다섯 갈래로 갈라져 있다. 갈라진 작은 꽃조각 하나하나가 마치 레이스처럼 나풀나풀하고 꽃 안쪽은 색이 바뀌어 진한 붉은 빛을 띤다.

그동안 숲으로 떠난 길목에서 수없이 계요등을 만나왔지만 왜 이제야 새삼스레 이 꽃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걸까. 마음 한켠에서 계요등을 소홀히 대했던 것 같다.

계요등은 우리나라 거의 전역에 분포하지만 주로 자라는 것은 충청도 이남이어서 그곳에서 더 쉽게 볼 수 있다. 깊은 숲에 자라는 귀한 풀이 아니라 숲으로 가는 길 가장자리나 시골 마을의 돌담장 주변에서도 자란다.

더 이상 타고 올라갈 대상이 없으면 바다로 뻗어나가듯 줄기를 뽑아내며 햇살을 듬뿍 받으며 큰다. 언제나 마음먹으면 볼 수 있는 풀이고, 게다가 자라는 곳이 숲도 밭도 아니니 그저 잡초처럼 취급받아 내심 억울할 수도 있겠다.

계요등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에는 이름에 대한 선입견도 있지 않았을까?

다소 독특하게 들리는 이름은 한자명 계요등(鷄尿藤)에서 그대로 따왔다. 말하자면 ‘닭의 오줌 냄새가 나는 덩굴식물’이란 뜻이다. 이름치곤 이미지가 치명적이다. 이 식물 집안을 뜻하는 학명도 파에데리아(Paederia)로 냄새가 난다는 뜻이고, 이 말고도 구렁내덩굴, 계각등 같은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으니 아무래도 냄새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지만 나는 냄새에 둔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계요등의 냄새가 독하거나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또한 부러 무성한 잎을 비비며 좋지 않은 냄새를 즐길 성격도 아니니 냄새의 단점보다 고운 꽃이며 열매의 장점이 훨씬 많은 식물이라고 간주하는 편이다.

잎은 끝이 뾰족한 하트모양으로 마주 달린다. 꽃은 여름에 핀다. 지금도 도시를 벗어나면 어딘가에서 무엇인가를 감고 올라가는 계요등 꽃을 만날 수 있고, 부지런한 포기들은 이미 구슬 같은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푸른 열매는 잘 익으면 황갈색, 좋게 표현하면 진한 금빛으로 곱다.

계요등은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서든 강인하게 잘 자란다. 덩굴이 타고 올라갈 수 있게 지지대를 만들어 놓고 키우면 예쁜 잎과 꽃, 열매를 집에서 감상할 수 있다. 화단에 키워도 좋고 분에 담아 모양을 잘 잡아주어도 보기에 좋다.

한방에서는 약재로도 쓰인다. 관절염, 황달, 염증치료 등을 비롯한 몇 가지 증상에 처방한다는 기록이 있다.

돌담 위로 무성한 계요등 줄기를 보자니, 함께 보듬고 악착같이 살아가는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10월도 그처럼 치열하고 풍성한 모습이었으면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