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임혜영…‘여인과 무지개’ 초대전, 6월1~7일, 한벽원미술관

△(좌)=마음을 놓다-rainbow3, 91×72㎝, oil on canvas, 2016 △(우)=145.5×112㎝
섬 바위에 앉아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껴안는다. 원숙한 표정으로 담담히 밀려오는 첼로와 피아노의 하모니,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의 시실리안느(Sicilienne) 선율이 고독하게 먼 길을 혼자 가려는 듯 아련하게 흐른다. 건반은 쓰라린 독백을 평온하게 쏟아내고 바다는 장엄한 손길로 고통의 몸부림을 어루만지며 ‘괜찮다’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위로했다. 황혼 빛은 수면에 맞닿으며 금세 어울렸다. 마침내 슬픔이 물이 되어 꽃으로 피어나는 찰나. “사물의 내밀한 음악은 눈을 감을 때 비로써 울려 나온다. 눈을 감는 순간에야 사물 앞에서의 머무름이 시작된다.”<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문학과 지성사>

아침은 언제나 강렬하다. 햇살은 맑고 깨끗하며 눈부셨다. 터퀴스블루(turquoise blue) 물결에, 꿈결 같은 탐스런 장미송이가 또 여인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관능적인 귀엣말처럼 솔솔 부는 바람에 가늘게 흩날리는 풍경이 투영되어 너울거렸다. 새벽녘 가랑비 지나갔나보다. 청량감으로 가득한 아담한 해안선엔 화이트와 클래식한 와인컬러의 모던한 나시 원피스를 입은 두 여인이 무어라 얘기를 나누며 맨발로 걷고 있었다. 그들은 수줍게 떠 있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어떻게 작은 물방울이 저렇게 황홀한 색채를 품을 수 있을까. 희망, 행복, 사랑, 여인의 방울꽃!’이라며 속삭였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핑크베이지 볼과 도톰한 매혹적인 입술 그리고 신비롭고 영롱한 형형색색의 스토리가 담겨있을 법한 여인의 헤어밴드에 반해버린 걸까. 포르르 작은 새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생의 강렬한 존재의지

작가는 개성 넘치는 패션을 즐긴다. 10여 년 전, 예쁜 문양이나 색감 등 옷의 패턴을 중심으로 옷이 갖는 추억과 일상생활의 미를 표현한 ‘옷에 마음을 놓다’를 발표하면서 주목받았다. 화면엔 여인의 스카프자락일 수도 있고 바디라인 등을 떠올리게 하는 테두리가 있는데 오직 그 여인만이 간직한 비밀 혹은 행복했던 추억 등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는 ‘그녀만의 방’같은 의미망으로 펼쳐진다. 허공에 떠도는 하얀 알갱이들은 새와 여인의 대화를 담은 채 고즈넉하다. 여인의 팔이나 화면 어딘가 ‘미니원피스’를 축소한 아이콘을 그려 넣었는데 환상적인 파스텔 톤의 사랑스럽고 도발적인 여인이미지와 더불어 작가의 고유한 작품을 알리는 것으로 옷을 그린 때부터 오늘까지 반영되고 있는 심벌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등 넓은 의미의 ‘마음을 놓다’라는 명제로 확장하고 있다.

그에게 화가로서의 삶을 듣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면 나 자신이 행복하다. 세상 모든 시름을 잊고 나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 자체가 삶의 원동력이다. 작업실에서 그림과 커피한잔 그리고 음악이 함께할 때 살아있다는 존재이유를 강렬하게 느낀다. 그러니 하루도 붓을 놓지 않는데 그것 또한 그림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했다.

서양화가 임혜영
이번 전시를 앞두고 사색을 통한 영혼의 그릇을 닦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했다는 그는 “여인은 아름다워야 하고 신비스럽고 고상한 내면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것이 작품에서 지향하는 기본적인 모토다. 여인의 표정이나 색감 등에서 발현되는 그런 밝은 기운의 행복바이러스를 공유할 수 있기를 소망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LIM HAE YOUNG)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선화랑, 뉴저지 프린스턴갤러리(미국)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이번 서른일곱 번째 ‘여인과 무지개’전은 6월 1일부터 7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소재, 한벽원미술관에서 열린다.



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