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문수만…손으로 묘사한 ‘회화적 상감기법’ 작품세계

“오늘날에는 객관문화가 주관문화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현대문화의 갈등과 비극이 있다. 그러나 객관문화가 주관문화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될지 하는 문제는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달려있다.”<게오르그 짐멜의 문화이론,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지음, 김덕영ㆍ배정희 옮김, 길>

꽃잎 하나 떨어지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꽃송이. 바람이 불면 날아갈테지. 수면에 반짝이는 눈부신 잔물결 하! 그대 얼굴로 넘실대는 햇살의 시간. 나비의 소망은 허물을 벗는 것이리. 가볍게 웃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간절함인 것을. 피아니스트 발터 기제킹(Walter Gieseking)이 연주한 멘델스존 ‘무언가Op.62-No.5’의 피아니시모 선율이 천천히 돈독한 부드러움으로 상심의 사랑을 위무하는데….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그림은 리듬성에서 출발한다. 좋아하는 음악에서 일어나는 즐거움들을 내면으로 가져온다. 원융무애(圓融無礙)라 했던가. 원의 형식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이 나비이고 꽃이다. 리듬과 우주질서를 함의한 작업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처절한 몸부림 자유의 날개

문양을 넣지 않은 순청자 화면은 멀찌감치 보면 아무것도 안 그려진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가는 크랙(crack)선이 가득 차있다. 이와 함께 새긴 문양을 메운 후 유약을 발라 구워 내는 상감청자가 다른 흙과 섞여 미감을 드러내는 것에 착안해 연구한 그는 맑은 청색 화면에 대해 밝혔다.

“흙과 물감은 분명 다르다. 청자빛깔을 내기위해 캔버스위에 엷은 물감을 수십 번 덧칠한 후 바탕을 갈아내어 문양이 우러나오게 한다.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청자를 만들었던 도공(陶工)의 마음으로 계속 도전했고 마침내 이뤄냈다. 나는 이를 ‘회화적 상감기법’이라 부르는데 한국성이 깃든 조형모색과 다름 아니다.”

한편 나비는 자유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역사라는 도도한 시간의 물결을 넘나드는 매개체로서의 상징이다. 작품형식은 사실적 재현과 환영(幻影)효과의 유도로 비움과 채움의 메시지를 전하고 동시에 리얼한 나비묘사와 회화적 상감기법은 종종 현실과 비현실의 혼돈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둥근 형태의 캔버스 자체가 볼륨이 있고 광택이 나는데 그 위에 꽃과 나비가 표현되어 매끄러운 대리석 등으로 착각하고 두드려보는 경우가 그러하다. 착각을 일으키는 ‘트롱프뢰유(trompe-l’œil)’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만큼 아주 정교하다. 작가는 “오랫동안 나비박물관을 찾아 관찰을 거듭했다. 박제된 나비를 보았던 날, 자화상이 오버랩 되면서 며칠을 앓았던 기억이 있다. 생(生)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고정되어버릴 때도 있는가 보다. 언젠가 몸에 박힌 핀을 뽑고 훨훨 날아가는 환상적인 몸짓을 표현하고 싶었다. 처절한 몸부림이 찬미하는 참된 자유의 날개 짓을”이라고 했다.

문수만 작가는 한남대학교대학원 조형미술학과를 졸업했고 개인전을 12회 가졌다. 2005년 첫 개인전 이후 가나인사아트센터와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선 한지와 조각보 느낌 위에 나비를 얹었고 2010년부터 회화적 상감기법을 점차 선보였다. 특히 2016년 일본고베 기타노자카(北野坂)갤러리 전시에서 호평 받았다.

그를 인사동 한 카페서 만나 작업과 화가의 길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6~7시간 작업에 몰입하다 보면 눈과 붓끝만 남고 내 육신은 사라진다. 호흡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붓 길은 나비를 따라 간다.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그렇게 수양을 쌓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릴적 꿈을 이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욕심은 없다. 나는 화가다.”

권동철 @hankooki.com

#작품캡션

(좌)천년지애(千年之愛), diameter72㎝ Oil & Acrylic on Canvas, 2012

(우)=호접지몽(胡蝶之夢), diameter84㎝, 2013

(좌)Finding Flow, diameter60.5㎝, 2016

(우)Filling Empty, diameter61㎝, 2016

문수만(文水萬)작가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