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소 작가…대구 우손갤러리 기획전, 7월 12일~9월 29일

(왼쪽)Untitled, 158×124㎝ ballpoint pen and pencil on newspaper, 2017 (오른쪽 47×32×1㎝, 2015)
“생성 없이, 혹은 생성과 동시에 소멸은 없다. 소멸 없이, 혹은 소멸과 동시에 생성은 없다.”<중론(中論), 가츠라 쇼류(桂紹隆)·고시마 기요타카(五島淸隆)공저, 배경아 옮김, 불광출판사 刊>

번들거림에 앉는 달빛, 비감이 녹아든 저리도 빛나는 결, 층층이 배어드는 물의 아우성, 굵은 빗방울의 낙하에 튕겨 오르는 목탄분말이 대지 위에 재배열된 흔적…. 신문지 위 연필과 볼펜으로 선을 긋고 또 긋는다. 선들이 지면을 덮고 찢어지기도 하면서 마침내 새로운 조형으로 태어난다. 화백은 70년대 중반부터 지우는 작업들을 40년 넘게 지속해 오고 있다.

“그리거나 색을 다루는 것에 재능이 없는 같아 지우는 것도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가 ‘걷는다, 숨 쉰다’같은 것을 의식하지 않듯 장소에 구애됨 없이 손쉽게 습관적으로 매일 지워나간다. 지우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없으니 편안하다. 다만 지우면서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우고 또 지우면서 비워내는 것이 나의 작업이다.”

38.5×54.5㎝, 2014
내 작품은 모노크롬

어릴 적부터 신문을 열독한 화백은 1960년대만 해도 내용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70년대 유신(維新)이 되면서 점점 읽을거리가 줄어들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는가?”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고 한다.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작업하다가 그만 뒀는데, 말하자면 방법은 만들어 졌는데 “지루해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90년대가 되면서 갤러리신라, 시공갤러리 등 대구소재 몇 화랑에서 ‘과거신문작업’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다. “다시 지우는 작업을 시도했는데 되질 않았다. 지질이 좋아진 것이다. 그래서 밀도를 만들기 위해 양면을 지웠다. 시간도 배로 걸렸는데 바둑판 모양으로 접어보기도 하고 별의별 실험을 하는 동안 내 적성에 맞는 작업임을 다시 깨달았다.”

대구에 거주하는 최병소(75) 화백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 및 계명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했다. 1974~79년까지 박현기, 이강소 작가등과 함께 한국현대미술운동의 중요한 획을 그은 ‘대구현대미술제’ 주축 멤머로 활동했다.

77년 동경긴자 센트럴미술관에서 가진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은 윤형근, 박서보, 김창열, 이우환, 곽인식 등 단색화계열작가들과 함께 참여, 가히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작가들이 대구에 와서 전람회를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주요 그룹전으로 에꼴드 서울, 사유와 감성의 시대(국립현대미술관), 브룩클린미술관,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모더니즘의 발전(금호미술관) 등이 있다. 2010년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했다.

최병소(崔秉昭) 화백 <사진=안동일>
반복성과 수행성 등 화백의 작품에 대한 ‘단색화’ 생각을 들어보았다. “계절이 변하는 것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반복이다. 인간은 실상 그렇게 살다 생을 마감하는 존재가 아닌가. 내 작품은 연필로 덮으면 전면이 흑연의 검은색으로 덮이는 것이지 칼라로 보는 것은 애매하다. 모노크롬이다.”

한편 이번 전시는 대구시 중구 봉산동, 우손갤러리에서 7월12일 오픈하여 9월29일까지 열리고 있다. 지우는 회화작업을 포함하여 선반에 작품을 얹어 놓거나 70년대 대량복제 되었던 일용품을 도입한 초기설치작품을 재현해 선보이고 있다.

맑고 명료한 화법으로 인터뷰에 응해준 50년 화업의 화백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나는 주로 혼자 작업한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도 않는다. 후학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말은, 힘들지만 자기 적성에 맞는 자신의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만이 진정 작가라 할 수 있다.”

권동철 @hankooki.com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