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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한국 창간 50주년 기획 특집] 50대 그룹 흥망사에 담긴 한국 경제사

부침의 역사 속 살아남은 재벌들 재계 점령…삼성ㆍ현대차 1ㆍ2위
10대그룹 자산ㆍ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 84% 수준
삼성ㆍ현대차ㆍSKㆍLGㆍ롯데ㆍ한진ㆍ한화 일가 최상위권 유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재벌그룹 해체 집중
대우ㆍ쌍용ㆍ동아ㆍ삼미ㆍ기아ㆍ해태ㆍ대농그룹 등 공중분해


재벌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자산기준 상위 10대 그룹의 자산과 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84% 수준에 달할 정도다. 62대 그룹의 자산 규모가 국가자산의 58% 가량을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여기에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의 역할을 종합한 질적인 부분까지 고려하면 측면에서의 재벌기업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재벌의 흥망은 단지 해당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는 물론 국민 생활과도 직결돼 있다.

그런 재벌기업들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숱한 흥망성쇠의 역사를 거쳐야 했다. 하루아침에 뒤안길로 사라진 기업이 있는가 하면, 반세기 이상 재계를 호령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재벌이 흥하고 망했을까. <주간한국>은 창간 50주년을 맞아 현재 50대 그룹의 판도가 이뤄지기까지의 재계의 흥망사를 돌아봤다.

국내 재벌기업의 초기는

국내에 '재벌기업'이 태동하기 시작한 건 해방 이후부터다. 당초 우리 산업계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던 기업은 김성수 창업주의 경성과 백락승 창업주의 태창 정도였다. 이들은 광복을 맞아 불모지나 다름없는 소비재산업 선점을 위해 앞다퉈 영토확장에 나섰다.

비슷한 시기 오늘날 재계 판도를 거머쥔 부호들의 움직임이 가시화 됐다. 정미소로 돈을 번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쌀가게 배달원을 거쳐 한 몫을 노렸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포목상으로 기반을 닦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을 비롯한 재벌가 1세대들은 광복 직후 서울로 근거지를 옮기고 사세를 확장했다. 이양구 동양 창업주, 서성환 태평양화학 창업주,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주, 박룡학 대농 창업주, 최태섭 한국유리 창업주, 서선하 삼흥실업 창업주, 조홍제 효성 창업주 등이 그들이다.

부산에는 양태진 국제상사 창업주와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주, 정태성 성창기업 창업주, 김인득 벽산 창업주, 강석진 동명목재 창업주 등이 터를 일궜다. 또 광주에선 박인천 금호 창업주, 인천엔 조중훈 한진 창업주, 대전엔 최준문 동아건설 창업주 등이 각각 둥지를 틀었다.

일본에서는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와 김철호 기아 창업주, 서갑호 판본 창업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김한수 한일합섬 창업주, 김향수 아남 창업주 등이 자수성가해 마련한 자금을 통한 국내 투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부터 6ㆍ25전쟁 이전까지는 태창의 세상이었다. 백락승 창업주는 태창방직와 태창공업, 태창직물, 조선기계 등 여러 기업을 거느리면서 한국 최초의 부호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 기업 대부분은 6·25전쟁을 기준으로 위세가 시들해졌다.

1세대 부호들이 본격적인 세력확장에 나선 건 1950년대 중반부터다. 당시 삼양사를 비롯해 LG화학의 전신인 락희화학공업, 금성방직, 현대건설, 제일제당 등이 눈에 띄는 행보를 보였다. 1960년에는 삼성이 재계 선두로 올라섰다.

당시 공식순위를 보면 삼성에 이어 삼호와 개풍, 대한, 럭키, 동양, 극동, 한국유리, 동림산업, 태창방직 등이 10위권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 가운데 지금까지도 10위권 내에 사명을 올리고 있는 건 삼성과 LG(럭키) 두곳이 전부다.

한 경제전문가는 "지난 1950년대나 1960년대에 재벌급에 속했던 기업들 중 지금도 정상 재벌급인 기업은 별로 없다"며 "급변하는 기업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했고 경쟁에서 탈락된 기업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흥한 기업은

이후 수 없이 많은 부호들이 기업과 함께 일어났다 스러졌다. 살아남은 부호들도 극심한 격랑 속에서 부침을 거듭해야 했다. 이런 격변의 세월 속에서 지금까지 재계 최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삼성·현대·SK·LG·롯데·한진·한화 일가 정도다.

먼저 삼성가에선 이병철 창업주를 기준으로 삼남 이건희 회장이 이끄는 삼성그룹(1위)과 삼녀 이명희 회장의 신세계그룹(13위), 이인희, 장손 이재현 회장의 CJ그룹(14위), 외손자 조동길 회장의 한솔그룹(49위) 등이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대가족인 현대가의 직방계 회사는 재계 상위권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단 정주영 창업주를 중심으로 삼남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2위)와 사남 정몽준 의원이 최대주주인 현대중공업(7위) 등이 재계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며느리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22위), 손자 정지선 회장의 현대백화점(26위), 조카 정상영 회장의 KCC그룹(33위) 조카 정몽원 회장의 한라그룹(34위), 손자 정몽규 회장의 현대산업개발(40위) 등도 재계 상위권 명단에 올랐다.

LG가에선 구인회 창업주의 장손인 구본무 회장을 필두로 한 LG그룹(4위)과 사돈 허만정씨의 손자 허창수 회장의 GS그룹(8위), 동생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홍 회장의 LS그룹(15위) 등이 순위권 내에 포진해 있다.

이밖에 최태원 회장의 SK그룹(3위)과 신격호 총괄회장의 롯데그룹(5위)이 상위 5위권 내를 지키고 있다. 또 조양호 회장의 한진그룹(9위)과 김승연 회장의 한화그룹(10위)이 재계서 '큰형'자리를 유지해오고 있다.

공중분해된 그룹은 어디?

이처럼 반세기 이상 재계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해온 그룹이 있는 반면 굴지의 그룹이 해체된 일도 적지 않다. 국제그룹과 동명목재그룹, 명성그룹 등 정권에 의해 산산조각 나거나, 삼풍그룹처럼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돌발사고를 맞아 한순간 공중분해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룹의 몰락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에 집중돼 있다. 당시 재계를 호령하던 숱한 기업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대우·쌍용·동아·삼미·한일합섬·기아· 해태·대농그룹 등이 바로 그런 사례다.

먼저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통해 1998년 삼성과 LG를 제치고 현대에 이어 재계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내실을 외면하고 외환위기에도 외부차입을 통한 기업확장을 계속하다 자금난에 몰렸고, 1999년 워크아웃에 돌입한 후 그룹이 해체되는 아픔을 맛봤다.

마찬가지로 한때 재계 서열 5위에 오를 정도로 잘나가던 쌍용그룹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무리한 투자에 발목이 잡혔다. 그 결과 주축을 이뤘던 쌍용건설과 에쓰-오일의 전신인 쌍용정유, STX그룹의 모태 쌍용중공업 등이 모두 그룹에서 분리됐다.

기아그룹 역시 외환위기 당시 재계 8위의 기업이었다. 1990년대 아시아자동차와 기아특수강, 기산(건설) 등에 잘못된 예측을 바탕으로 무리한 투자를 단행하면서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진 가운데 외환위기가 겹치면서 결국 계열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동아그룹은 주력사이던 동아건설이 외환위기 당시 부실에 빠지면서 그룹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1998년 동아그룹은 국내 최초로 기업개선작업 대상기업으로 최종 확정되면서 한때 재계 10위 자리를 지키던 그룹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1997년 재계 24위에 올라있던 해태그룹도 전자와 비식품분야로 사업확장을 위해 인켈과 나우정밀을 인수하는 등 과도한 투자와 미진금속을 모태로 설립한 해태중공업에서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면서 자금난을 겪게 됐고, 결국 부도를 면치 못했다.

이밖에 대농그룹은 1997년 무리한 자금조달에 따른 과잉부채로 그룹이 해체됐고, 한일그룹도 외환 위기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가 1998년 부도처리된 이후 2007년 동양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삼미그룹도 같은 해 부도처리돼 법정관리를 받게 되면서 해체 수순을 밟았다.

IMF의 여파로 재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이후 10여년이 지나면서 상처는 치유되는 듯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라는 혹독한 시련이 다시 찾아왔다. 이로 인해 STX·웅진·동양그룹의 이름은 더 이상 재계 상위권 명부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2001년 쌍용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쌍용중공업을 모태로 설립된 STX그룹은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불리며 한때 재계 11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에 주력사업이던 조선과 해운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강덕수 회장의 자수성가 신화는 결말을 맺었다.

웅진그룹은 2007년 극동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면서 유동성 위기 몰렸다. 모기업인 웅진이 자금을 지원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버티다 못한 웅진이 결국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맨땅에서 윤석금 회장의 성공스토리도 결국 막을 내렸다.

지난해 재계순위 38위에 올라있던 동양그룹도 만기를 앞둔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동양을 비롯해 동양레저, 동양시멘트,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네트웍스 등이 법정관리를 신청, 주요 계열사 및 보유자산을 처분하면서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재계 관계자는 "해체된 그룹들 대부분은 과도한 차입을 통해 무리하게 덩치를 불리는 등 내실이 다져지지 않은 상황에서 외환위기를 맞아 패망을 초래했다"며 "결국 오너의 과도한 욕심이 화를 부른 꼴"이라고 말했다.

굳어진 재계 순위, 변수는

그러나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서는 몇몇 그룹을 제외하고는 매서운 세계 불황 한파에도 비교적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IMF 외환위기라는 '독감'을 앓고 면역체계와 체질개선이 이뤄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재계 순위에도 별다른 지각변동이 감지되지 않았다.

특히 10대 그룹의 경우 수년째 각자의 자리를 고수해오고 있다. 실제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현대중공업·GS·한진·한화그룹은 순위는 지난해와 그대로였다. 그룹별로 자산 규모의 차이가 적지 않아 굵직한 M&A가 있다 해도 순위변동은 거의 없었다.

실제 2011년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와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 2012년 롯데그룹의 하이마트 인수 등이 있었지만 해당 그룹들이 순위를 올리지는 못했다. 지난해 말에도 GS그룹이 STX에너지를 인수했지만 역시 순위 변동은 없었다.

물론 10위권 밖에 있는 그룹들은 자산총액의 차이가 크지 않아 순위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그뿐, 새로 등장하거나 소멸한 그룹은 눈에 띄지 않았다. 현재의 재계의 판도가 공고해진 셈이다. 그렇다고 변수가 없는 건 아니다.

먼저 후계나 승계작업에 따른 계열분리로 인해 덩치가 줄어들면서 재계 순위에 변동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은 삼성그룹에서 감지되고 있다. 현재 삼성그룹에서는 활발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안팎에선 이런 행보를 향후 계열 분리를 염두에 둔 '밑그림'으로 보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 지주사를 분할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이 각각 그룹을 맡으리라는 분석이다.

이 경우 각 그룹별 자산 총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재계 선두인 삼성그룹의 자산총액은 330조원대로 2위인 현대차그룹(180조원대)과 격차가 크다. 그러나 향후 상황에 따라 10년 이상 지켜온 재계 1위 자리를 차석에 내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안 내 경영권 분쟁 등으로 회사가 찢어지는 일도 벌어질 수도 있다. 현재 대성그룹에서 이런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김영대 회장의 대성합동지주와 삼남 김영훈 회장의 대성그룹은 '대성'이라는 사명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성그룹이라는 기업집단으로 묶여 있다. 공정거래법에서 기업 '오너'의 6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이 지분을 3% 이상 소유한 기업을 같은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어서다. 김영훈 회장 등은 대성합동지주 계열사 대성산업 지분 3%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두 그룹은 사실상 분리 경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에 따라 한 그룹으로 묶이면서 재계 39위에 올랐다. 만일 향후 대성산업 지분을 정리할 경우 두 그룹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같은 돌발악재에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 코오롱그룹도 초대형 소송에 발목이 잡혀있다. 듀폰은 코오롱그룹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신소재섬유 '아라미드'가 자사 제품 '케블라'의 기술을 베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듀폰이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약 1조원으로 코오롱인더스트리 자기자본의 70%를 넘나드는 금액이다. 앞서 1심에서 미국 버지니아주 동부 연방지방법원은 코오롱에 약 1조원을 배상하고 전 세계에서 아라미드 제품 생산과 판매 등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다행히 미국 연방법원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재판을 다시 열라고 판결한 상태다. 그러나 향후 재판에서 패소할 경우 막대한 배상금은 물론 아라미드 제품 판매 금지, 이미지 하락 등으로 코오롱그룹의 입지를 흔들 수 있다. '뇌관'을 안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국내 재계 판도의 가장 큰 변수는 급변하는 세계 경제 환경과 가속도 붙은 기술혁신 속도라는 지적이다. 이런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세계 휴대폰 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하다 스마트폰 진입 실패로 몰락한 노키아가 '나쁜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술혁신과 경제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현재의 1년은 과거 10년보다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급변하는 환경에 따라 스스로를 변신시키지 못하고 안주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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