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인척들 지분 매각→경영권 승계 신호탄23세 장녀 주식 자산 1조5000억원 넘어이니스프리ㆍ에뛰드 성장에 그룹지원 있었나

이니스프리는 2012년 서경배 회장이 보유 주식을 장녀 서민정씨게 물려 준 후 급성장했다. 사진은 명동의 이니스프리 매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국내 화장품업계 1위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서경배 회장이 후계 구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서경배 회장 누나들이 보유지분을 팔기 시작하면서 서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가 견고해지고 있다. 동시에 그의 장녀인 서민정씨의 승계기반도 두터워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서 회장의 첫째 누나인 서송숙씨와 둘째 누나 서혜숙씨, 셋째누나인 서은숙씨는 올해 들어 꾸준히 보유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 송숙씨는 올 1월 3일, 4월 4일 두 차례에 걸쳐 아모레퍼시픽 주식 450주를 팔았다. 혜숙씨도 지난 7월 22일을 시작으로 세 차례에 걸쳐 450주를 매각했다. 은숙씨는 이달 1일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1,295주를 매각했다. 넷째 누나 미숙씨도 지난해 12월 보유 주식 전량을 매각했다. 미숙씨의 장남인 최범석씨도 올 4월 갖고 있던 주식 737주를 모두 팔아 현재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

최근 중국시장 호조와 실적 기대감으로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230만원을 훌쩍 넘어 300만원까지 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친인척들이 잇따라 주식을 매각한다는 것은 선뜩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아모레퍼시픽 주식을 갖고만 있어도 시세차익을 볼 수 있는데 보유주식을 내다 파는 것은 뭔가 다른 사연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마저 자아내게 한다.

계열사 통한 승계작업 가속화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올 상반기에 매출 2조3,165억원, 영업이익 3,862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9% 늘었으며 영업이익도 32% 증가했다. 특히 화장품사업을 맡은 계열사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 그룹 전체 실적을 견인했다. 아모레퍼시픽, 에뛰드, 이니스프리, 아모스프로페셔널 등 화장품 계열사의 지난 1분기 매출 합계는 1조825억원에 이른다. 국내 화장품기업 중 최초로 분기 매출 1조원을 넘긴 의미있는 실적이다.

에뛰드하우스는 서민정씨가 주식을 보유하자마자 이례적인 실적 향상을 기록했다. 사진은 명동의 에뛰드하우스 매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아모레퍼시픽 주가 역시 연인 고공행진이다. 지난달 29일 장중 52주 신고가인 252만원을 기록한 아모레퍼시픽은 지난달 30일 종가 239만2,000원을 기록해 거래 3일 연속 사상 최고가 기록을 깼다. 200만원대 황제주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시대를 연 것이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을 100만원에 마감한 주가는 지난 8월 13일 200만원대로 올라섰고 이제 다시 300만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주가 상승에 힘입어 서 회장은 최근 재계 순위 2위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제치고 주식 부호 2위로 올라섰다. 지난달 말 종가기준 서 회장이 보유한 상장사 지분가치는 6조7,607억원. 지난해 말 2조7,000억원에서 8개월 만에 4조원 가까이 늘었다. 서 회장은 아모레퍼시픽 62만6,000주(지분 10.72%), 아모레퍼시픽 우선주 12만3,000주, 지주사인 아모레퍼시픽그룹 444만4,000주(지분 55.70%)를 보유 중이다.

이런 서 회장이 최근 경영 승계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서 회장은 장녀 서민정씨와 차녀 서호정씨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민정씨가 서 회장 후계자로 유력하게 꼽힌다. 민정씨는 현재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 26.48%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주요 계열사인 아모레퍼시픽 지분도 0.01% 보유하고 있다. 민정씨는 지난 2012년 서 회장에게서 이니스프리 지분과 에뛰드 지분을 증여받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친인척들의 주식 매각이 잇따랐다. 친인척들의 주식 매각이 아버지에서 딸로의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서 회장은 지난 2012년 본인 소유의 이니스프리 주식 전량을 민정씨에게 증여했다. 당시 증여한 주식은 총 4만4,450주에 달한다. 이에 따라 이니스프리의 지분구조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이 81.82%, 민정씨가 18.18%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주식 증여가 이뤄진 이 해부터 이니스프리는 실적이 급등했다. 주식 증여 전인 2011년 1,405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증여가 이뤄진 2012년에는 2,294억원으로 무려 63.6%나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3,328억원으로 전년 대비 45.1% 증가하더니 올 1분기에는 2,218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영업이익 역시 2012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1년 188억원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은 2012년에는 363억원으로 두 배 가량 뛰었다. 2013년 영업이익은 498억원으로 500억원 돌파가 코앞이다. 매장수도 434개(2011년)→624개(2012년)→795개(2013년)로 훌쩍 성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니스프리는 서 회장에서 민정씨로 지분이 넘어간 시점부터 실적이 급격하게 좋아졌다"라며 "중국 관광객 증가의 최대 수혜사이지만 그룹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미뤄 짐작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로드샵들이 업체들간의 과다 경쟁으로 실적 저하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아모레퍼시픽의 또 다른 계열사인 에뛰드하우스(이하 에뛰드)도 이니스프리와 닮은 점이 많다. 2012년 서 회장 소유의 주식 18만1,580주(19.52%)가 민정씨에게 넘어간 후 실적이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식 증여 전인 2011년 2,148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2,805억원(2012년), 3,372억원(2013년)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영업이익 역시 2011년 196억원에서 2012년 234억원, 2013년 261억원으로 오름세를 보였다.

서 회장의 주식 증여가 이뤄진 두 기업의 배당금이 큰 폭으로 증가한 사실도 후계구도와 연결해 보는 시각이 많다. 두 기업 중 이니스프리는 주식 증여 전인 2011년에는 24억원에 불과하던 배당금이 주식 증여 후인 2012년 49억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61억원을 배당했다. 에뛰드도 2011년 47억원에서 2012년 56억원으로 배당금이 늘어났다. 서민정씨는 2012년에만 두 곳에서 약 20억원의 배당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은 서 회장의 장녀인 민정씨로 승계구도를 잡아나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며 "향후 승계 작업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이니스프리와 에뛰드 지분을 실탄삼아 승계기반을 다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경영 전면에 나서기까지는 시간 필요

91년생인 민정씨는 현재 미국 코넬대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아모레퍼시픽의 경영권은 서 회장이 그대로 유지하겠지만 업계에서는 향후 몇 년 사이 자연스럽게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번 주식 증여에 대해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회사 한 관계자는 "지분증여가 이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후계 구도를 논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라며 "경영권 승계에 대해 아직까지 구체적인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도 "방계 일가 지분은 서서히 줄어들고 민정씨의 지분은 서서히 늘려나간다는 점에서 아모레퍼시픽 승계구도가 장녀에게로 확실히 잡아나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정작 후계구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민정씨에 대한 경영 검증이 없다는 점"이라며 "향후 회사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영 전면에 나서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민정씨와 결혼하는 남자가 경영에 나설 경우, 서 회장이 사위를 어떻게 교통정리를 할지 기대된다"라며 "또한 아직까지 지분을 갖고 있는 누나, 매형을 비롯한 친인척들의 지분도 정리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아모레퍼시픽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지주사이며 ㈜아모레퍼시픽 32.2%, ㈜에뛰드 80.5%, ㈜이니스프리 81.8%, ㈜아모스프로페셔널 100%, ㈜태평양제약 100%, 퍼시픽글라스 100%, ㈜퍼시픽패키지 99.6% 농업회사법인 ㈜장원 98.4%, ㈜코스비전 100% 지분으로 거느리고 있다. 아모레퍼시피그룹은 서 회장이 55.70%의 지분으로 최대주주이고 2대 주주는 서 회장의 장녀 민정씨로 26.48%를 갖고 있다.



장원수 기자 jang7445@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