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 그룹 지배력 한층 강화… 3세 경영 '8부 능선' 넘었다계열사 합병 통해 복잡한 지배구조 명쾌해져삼성물산 통한 이재용 부회장 그룹 지배력 상승사업 간 연계효과도 기대… 삼성전자-삼성SDS 합병설'미래 먹거리' 발굴해야… 삼남매 계열분리 장기 과제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 사옥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전격 합병을 단행한다. 이는 '이재용(JY)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합병이 완료되면 복잡하던 지배구조가 정리되는 한편, 그룹에 대한 이 부회장 지배력이 한층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앞서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면서 상징적 후계자로서 위상을 인정받았다면, 이번 합병 조치는 실질적으로 지분구조상 리더로 올라서는 계기라는 평가다. '이재용 시대'의 개막이 8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결의

삼성그룹 승계의 핵심은 그룹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다. 하지만 차기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0.57%에 불과하다. 그룹 승계 및 경영권 강화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지분율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와병 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공백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에 가속도가 불가피했다. 이미 지난해부터 해외 기관투자가 및 금융권 등 기업 간 거래(B2B) 파트너들로부터 경영권 안정에 대한 요구가 이어진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그룹은 지난해 5월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이 부회장의 승계 당위성을 확보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박차를 가해 왔다. 삼성SDI와 제일모직 소재부문을 합병하는 한편 화학·방산부문을 한화그룹으로 매각하는 '빅딜'을 단행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달 15일 중순 그룹의 상징적인 자리인 삼성생명공익재단ㆍ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을 부친인 이건희 회장에게 물려받아 상징적으로 '이재용 시대'를 열었다. 삼성문화재단은 생명 지분 4.68%,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생명 지분 2.18%를 갖고 있다.

이미 재계에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의 지주사 격임에도 삼성전자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은 반면,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을 4.06% 소유한 2대 주주인 때문이었다.

이들 회사가 합병할 경우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셈이 된다. 그러던 지난달 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각각 이사회를 열고 오는 9월1일 두 회사를 합병키로 결의하면서 본격 '이재용 체제'가 개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사의 합병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제일모직은 삼성물산 주식 1주당 제일모직 신주 0.35주를 교부할 예정이다. 합병 회사 이름은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와 삼성그룹의 창업 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삼성물산으로 정했다.

합병 회사는 지난해 말 기준 매출이 약 34조원으로 건설 상사 패션 리조트 식음료 등을 아우르는 글로벌 종합서비스 기업으로 재탄생한다. 합병 법인은 핵심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과 시너지를 강화해 2020년 매출 6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합병으로 이재용 '일거양득'

그렇다면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그룹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먼저 복잡한 지배구조가 해소된다. 삼성그룹은 현재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제일모직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식이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핵심 축이 '통합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증권·카드'와 '통합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전기·중공업'으로 바뀐다. 통합 삼성물산이 핵심 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거느리는 구조다. 지배구조가 한결 명쾌해지는 셈이다.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도 강화된다. 제일모직은 현재 삼성생명 지분 19.4%를,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2%를 갖고 있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최대주주(23.2%)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지분은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두 회사가 합병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직접 보유한 지분 외에 합병회사(통합 삼성물산)를 통해 삼성전자 지배력을 지금보다 높일 수 있다. 삼성생명 지배력은 그대로 유지한다.

향후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될 삼성물산에 대한 오너일가의 지배력에도 문제가 없다. 이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 등은 제일모직 지분 42.2%를 보유중이다. 합병 이후 삼성물산 지분율은 30.4%로 경영권을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다.

사업간 연계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놀이공원인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제일모직은 삼성물산과 통합을 통해 테마파크 사업의 해외 수출도 겨냥할 수 있다. 삼성물산 건설, 제일모직 건설부문이 서로 합쳐져 해외 시장 진출 및 다른 분야로 사업 다각화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합병 이후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대표적 '새 먹거리'인 바이오부문을 도맡게 되면서 사업은 급물살을 탈 예정이다. 두 회사는 2011년 바이오 사업 출범에 함께 참여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은 제일모직이 46.3%, 삼성물산이 4.9%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삼성의 바이오산업은 그동안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에 공장라인을 건설하고 신약 개발에 투자를 지속해 최근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합병으로 자금력까지 확보한 만큼 바이오사업 확장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이번 합병 결의는 이 부회장 입장에서 '일거양득'인 셈이다. 다만 그동안 거론돼 온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물산이 그룹의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이 드는 지주사 전환을 고집할 필요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의 경우 20% 이상, 비상장 자회사는 30% 이상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삼성으로선 적게는 수조원, 많게는 수십조원의 자금을 부담해야 한다. 삼성은 이미 이 같은 이유로 '지주사 전환에 부정적'이란 뜻을 수차례 밝혀왔다.

'이재용 체재' 초읽기 숙제는?

삼성그룹의 '이재용 체제'는 8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아 있다. 먼저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 문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완료하면 이 부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8%대까지 올라간다.

재계에선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200조원을 넘어선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지분만으로도 실효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걸림돌은 삼성전자의 대주주가 금융사인 삼성생명(7.2%)이라는 데 있다.

향후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 등에 따라 의결권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다음 수순으로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설이 제기된다.

삼성물산은 삼성SDS 지분 17.08%를 보유하고 있고, 이 부회장도 지분 11.26%를 갖고 있다. 제일모직·삼성물산에 이어 삼성SDS·삼성전자 합병까지 마무리되면 오너일가는 삼성전자 지분 10% 안팎을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에 둘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삼성SDS는 불과 한달 전 2020년까지 매출 20조원 수준의 글로벌 IT컨설팅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비전 2020'을 내놓은 바 있다. 이를 뒤집고 다시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을 추진하는 것은 투자자에 대한 신뢰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여기에 향후 이재용·부진·서현 삼남매의 계열분리 문제도 장기적 과제로 꼽힌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과 레저를,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이 패션·미디어부문을 맡아 계열을 분리하리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삼남매는 당분간 현재의 구도를 유지할 것이며 계열 분리 문제는 현시점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긋고 있다. 사업분할은 통합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에 대한 안정적 지배구조를 확립한 뒤에 가능할 전망이다.

한편 이번 합병 발표 당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는 초강세를 보이며 시가총액 상위주 순위를 흔들고 있다. 특히 제일모직은 아모레퍼시픽을 밀어내고 시가총액 5위에 등극했다. 지난달 27일 장초반에도 급등세를 보이며 시가총액 4위 한국전력까지 위협했다.

삼성물산도 동반 초강세를 이어가며 시총 순위를 끌어올리고 있고, 여기에 삼성SDS도 7% 가까이 급등하는 등 삼성그룹주가 동반강세를 보였다.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은 삼성그룹주를 거의 싹쓸이 하다시피하며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송응철 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