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엘리엇 힘겨루기 점입가경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놓고 팽팽한 대립삼성물산, 자사주 KCC에 매각해 우호지분 확보엘리엇"주주이익 해쳐"가처분 소송 제기주식 확보 전쟁…7월 주총에서 합병 결정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 입장을 밝혀온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9일이번 합병을 저지하기 위한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서초사옥 모습.
삼성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지배구조 재편이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딴지'를 걸고 나왔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지배구조 재편을 통해 장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를 안착시키고 '뉴 삼성'에 부합하는 구조를 갖추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과정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필수적이라고 할 만큼 매우 중요한 절차다. 이 문제가 순조롭게 풀려야 삼성가에서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를 보다 더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다.

때문에 삼성 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전력을 쏟고 있다. 반면 엘리엇은 '합병'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전문가들은 엘리엇의 궁극적 목적이 합병 저지보다 이를 구실로 이익을 최대한 챙기려는 데 있다고 분석한다.

삼성 '합병' 시도에 엘리엇 저지 나서

삼성과 엘리엇의 이해가 상반된 가운데 선공은 엘리엇이 취했다. 삼성물산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이 올초 27.7%대에서 점차 증가해 9일 기준으로 33.97%까지 상승했다. 여기에 일부 소액주주들마저 엘리엇 편에 가담하는 등 합병저지 기류가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게 나타나면서 삼성 측을 긴장시켰다.

이에 삼성물산은 지난 11일 자사주 전량(5.76%)을 KCC에 매각하는 조치를 통해 우호 지분을 기존 13.99%에서 19.75%로 늘렸다.

삼성이 자사수 매각을 실행에 옮긴 것은 7월 17일 주주총회에서 반드시 합병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현인 동시에 엘리엇의 강공책에 역시 강공으로 맞선다는 대응전략으로 풀이된다.

현행법상 합병건은 주총에서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과 발생 주식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된다. 주총의 지분출석률을 70%로 가정했을 때 합병 가결을 위한 찬성 지분이 47%가량 필요하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삼성물산 지분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삼성SDI(7.39%), 삼성화재(4.79%), 이건희 회장(1.41%) 등을 모두 합쳐야 13.8%에 불과하다. 자사수 매각으로 KCC에 넘어간 지분(5.8%)까지 합쳐야 20% 수준에 그친다.

또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계획안에 따르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총액이 1조5,000억원을 넘으면 합병이 취소될 수 있도록 돼 있다. 삼성물산 지분의 17%가 결집해 반대표를 던질 경우 합병을 좌초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자사주를 KCC에 매각해 확보한 현금 6,743억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 측에선 7,000억원에 가까운 '실탄'을 확보한 만큼 매수청구권 청구 한도액을 넘겨도 주총 표결에서 합병안이 승인받기만 하면 합병 진행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또한 현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훨씬 높아 엘리엇을 포함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통한 합병 무산이 여의치 않으면 엘리엇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주총 표결에서 반대표를 결집시키는 수밖에 없다.

7월 주총 위해 우호지분 확보 나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보유한 3대 주주다. 7월 주총에서 표결로 합병안을 부결시키려면 참석 지분 3분의 1 이상의 반대를 이끌어내야 한다. 엘리엇 입장에선 합병을 막기 위해서는 합병 반대 주주의 지분을 확보하거나 삼성물산 측의 합병 시도를 무력화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 11일 삼성물산이 자사주 전량을 KCC에 매각한 것을 문제삼아 법적 조치를 취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엘리엇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자사주를 KCC에 매각 제안한 것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법적 합병과 관련해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삼성물산 측이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불법적인 시도를 한 것"이라며 "삼성물산 자사주가 합병 결의 안건에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주식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삼성물산과 KCC를 상대로 긴급히 가처분 소송 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이사회가 강압적으로 불법적인 합병안을 추진하는 것은 58%(7조8,500억원)가 넘는 삼성물산 순자산을 삼성물산 주주들로부터 제일모직 주주에게 아무런 보상 없이 우회 이전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고 비난했다. 현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순자산은 각각 13조4,000억원, 4조7,000억원인데 1대 0.35인 합병 비율을 적용하면 삼성물산의 가치는 5조6,000억원으로 줄고 제일모직은 12조5,0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 엘리엇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이번 이사회 결의는 첫째 사업 다각화 및 시너지 제고 등 당초의 합병 목적을 원활하게 달성하고, 둘째 단기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으로부터 회사 및 주주 이익을 보호하며, 셋째 대규모 유동성 확보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등을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삼성물산은 "6월 10일 이사회의 자사주 매각 결의는 회사의 이익과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적법하고 정당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엘리엇이 가처분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법원은 오는 19일 오전 11시 엘리엇이 낸 주주총회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사건과 함께 이번 사건의 첫 심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한편, 엘리엇의 추가 소송 제기 방침에도 삼성물산 주가는 11일 전날보다 5.73% 내린 7만700원에 거래됐고, 외국인 지분율도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엘리엇의 추가 공세에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감이 시장에서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7월 17일 주총일까지 삼성과 엘리엇 간 우호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