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일자리 창출의 요술방망이?… 청년고용 효과 논란삼성·두산·롯데… 대기업 연달아 임금피크제 도입 선언박 대통령, 연일 노동개혁 강조하며 임금피크제 추진 권해'장년 vs 청년' 세대갈등 불러올 수도… 노동계 반발

박근혜 대통령이 8월 25일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M14 반도체공장 준공 및 미래비전 선포식을 마치고 나서 최태원 SK회장으로부터 반도체 생산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보다 많은 청년들이 일터로 나갈 수 있도록 임금피크제를 적극 도입해 줄 것을 강조했고, 최태원 회장은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프로젝트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핵심인 '임금피크제' 도입을 두고 다양한 설전이 오가고 있다. 우선 대기업들은 임금피크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삼성과 두산은 내년부터 전 계열사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발표했다. 나머지 10대 기업들도 노사 협상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임금피크제가 청년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장년층의 임금을 삭감함으로써 기업이 청년 고용에 앞장설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장년층의 임금 삭감에서 그친 후 실질적 일자리 창출에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기업이 임금피크제에 나서는 '진짜'속내가 일자리 창출이 아닌 적은 비용으로 숙련된 노동자를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지적도 있다.

삼성ㆍ두산ㆍ포스코, 임금피크제 선두주자

10대 그룹 중 가장 먼저 임금피크제 도입을 확정지은 곳은 삼성이다. 삼성은 지난 17일 임금피크제를 내년부터 전 계열사에 적용함과 동시에 2년간 총 3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청년 일자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지난 2014년 임금피크제 도입을 선언한 삼성은 내년부터 정년이 연장되는 56세의 근로자들의 연봉을 매년 전년도의 10%씩 감액한다.

두산 역시 2016년 1월1일부터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2012년 정년을 56세에서 58세로, 2013년엔 58에서 60세로 늘린 두산중공업이 두산 계열사들 중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바 있다. 그 후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주요 계열사들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내년 1월부터 사무직 직원들도 임금피크제 도입에 동의함으로써 전 계열사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하게 됐다.

8월 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임금피크제 반대, 성과급제 폐지, 퇴출제 저지 등 10대 과제 관철을 위한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지난 26일 포스코 역시 임금피크제 확대에 노사가 합의했다. 2011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던 포스코는 정년 60세 연장에 맞춰 임금피크제를 수정했다. 노사 합의에 따라 내년부터 포스코의 56세 직원은 기존 임금의 90%, 57세는 80%, 58세부터는 70%를 받게 된다.

최근 최태원 회장이 석방된 SK그룹 역시 내년부터 모든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미 90% 이상 계열사에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 SK는 내년부터 전 계열사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나선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의 경영권 분쟁으로 홍역을 치룬 롯데 또한 내년부터 전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시행한다. 지난 27일 롯데 측은 노사와의 합의를 통해 내년부터 모든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계열사에 따라 달랐던 정년이 모두 60세로 연장되며 늘어나는 정년 기간에는 해마다 임금이 전년 대비 평균 10%씩 줄어든다. 아울러 롯데 측은 임금피크제로 확보되는 재원 등을 통해 2018년까지 총 2만4000개의 청년 일자리를 마련할 것이라 밝혔다.

재계순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은 2016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안을 밝혔다.그룹사별로 각기 다른 정년을 60세로 일괄연장하고 임금피크제를 통해 정년 연장에 대한 인건비 부담을 덜며 청년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임금피크제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면 연간 1000개 이상의 청년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임금피크제에 대한 노사간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노조 측은 이미 실질적 정년은 60세이며 임금피크제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추가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외에도 LG, GS 등이 일부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쳐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기업에 따라 속도가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공기업 역시 임금피크제 도입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8월24일 기준으로 총 316개 공공기관 중 24개의 공공기관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끝마쳤다. 기획재정부 측은 "대형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지난 8월21일 이사회를 완료하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결정한데 따라 다른 공공기관으로 조기에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국전력 외에도 예금보험공사, 동서발전이 도입을 마무리지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들의 신규채용 규모는 2016년 593명에 이른다. 임금피크제 평균 적용기간은 2.9년으로 적용 후 평균 임금 지급률은 1년차 75%, 2년차 68%, 3년차 59%로 나타난다. 기재부 측은 공기업의 임금피크제 도입에 "상생고용 지원금, 임금피크제 지원금 등 정부지원 뒷받침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정부 눈치보기로 앞다퉈 도입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6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노동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개혁의 핵심에는 임금피크제가 있다. 박 대통령은 첫 번째 과제로 노동개혁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정년 연장을 하되 임금은 조금씩 양보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청년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설명하며 기성세대의 고통분담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노동개혁 강조는 대국민담화에서 그치지 않았다. 43시간의 남북 마라톤 협상이 끝난 후 27일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의 오찬에서도 박 대통령은 당 지도부에게"청년들 사이에서 3포세대(취업,결혼,출산 포기하는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이들을 위해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부의 강한 의지 덕분에 기업들은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끝난 후 적극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서두르는 분위기다.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에게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고용촉진을 적극적으로 요구해 왔다. 경영권 분쟁으로 사정기관의 주목을 받게 된 롯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 후 3년간 2만4,000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며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또 지난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SK 최태원 회장 또한 석방 후 전 계열사에 내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함과 동시에 2017년까지 청년 일자리 2만4천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날이었던 지난 25일에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SK하이닉스 반도체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기업의 활력을 증진하고 보다 많은 청년들이 일터로 나갈 수 있도록 임금피크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 눈치보기 외에도 대기업 입장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에 나서는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이다. 경험이 풍부한 노동자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금에 오래 쓸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손해 볼 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년을 꽉 채워 근무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낮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정년을 늘리고 임금을 삭감하는 게 오히려 이득이라는 분석이다.

임금피크제로 축적된 재정이 신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실제로 기업들이 창출하겠다고 한 2만~3만개의 일자리 중 어느 정도가 청년 일자리인지, 정규직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는 인턴까지 포함한 수치로 일자리 숫자 부풀리기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윗돌 빼 아랫돌 괴지 않으려면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7월 고용동향에서 청년 실업률은 9.4%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실업률 3.7%의 2.5배에 달한다. 한달 전인 6월 청년실업률은 10.2%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비정규직으로 안전한 일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수많은 '장그래'들과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실상 취업을 포기한 청년들의 수치까지 합한다면 실질적인 실업률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단군이래 최악의 실업난을 겪는 셈이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개혁을 1순위로 추진하겠다는 것도 이러한 명목이다.

기업들은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1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수치를 제시했다. 정부 입장에선 기업이 주장하는 임금피크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게 청년 고용률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 보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축적된 재원을 일자리 창출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임금피크제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여기다 실제로 60세까지 정년을 꽉 채우는 근로자가 많지 않다는 점도 임금피크제를 통한 재원 확보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 중 하나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장년층의 희생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성세대가 임금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마치 현재 청년층의 높은 실업률이 장년층의 고임금에서 시작된 것처럼 들린다. 정년을 앞둔 장년 세대에겐 임금 삭감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기업 측에는 일자리 창출을 촉구하긴 하지만 임금피크제에만 기대기에는 일자리 창출 정책의 실효성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가장 큰 이유로 일자리 창출을 제시한 만큼 향후 청년고용률이 얼마나 높아질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삼성, 두산, 롯데 등 대기업들은 임금피크제와 함께 향후 고용 계획까지 이미 발표한 상황이다. 그러나 노조와의 협상이 남아 있는 현대자동차 등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여러 고비를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강경하게 반대하는 노조들도 있어 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또한 정부가 임금피크제의 효과를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7일에는 한국노총 위원장이 "노조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가 중단돼야 노사정위원회 협상에 나설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여당은 임금피크제를 위한 노동개혁에 힘을 보태자고 주장하고 있고, 야당은 공공기관과 대기업에 정원대비 일정 비율을 청년에게 할당하는 '청년고용의무할당제'등을 주장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임금피크제가 청년 취업률 향상에 도움은 줄 수 있으나 '특효약'은 아니라는 것이다.

야당이 제작한 임금피크제 관련 현수막의 문구는 "아버지 월급 깎아 저를 채용한다고요?" 였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시작했지만 기업이나 장년층에 청년 고용의 책임을 미룬다면 시작도 전에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