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갱 피하려다가 전국민 호갱화?… 마케팅 비용 절감으로 통신업계 '함박웃음'분리공시제 등 단통법 보완 시도 이어질 듯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첫날이었던 지난해 10월 1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의 휴대전화 판매점을 찾아 보조금 공시표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일 시작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개선에 관한 법률', 일명 '단통법'이 시행 1년을 맞았다. 단통법은 지원금 지급에 있어 이용자간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단통법 적용 후, 휴대폰 구매 시 가입유형, 지역 등에 따라 차이가 났던 지원금이 동일해지며 소비자는 같은 휴대폰을 같은 날 사더라도 몇 십만원씩 차이가 나는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게 됐다.

취지는 더할나위 없이 좋지만 단통법은 지난 1년간 소비자들에게 원성을 들어왔다. 보조금이 일괄적으로 정해지면서 예전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단말기를 구매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보에 빠른 소비자는 값싸게 단말기를 살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모든 소비자가 적은 보조금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 단통법이 소비자들이 지불해야 하는 값비싼 통신비를 절감하지는 않고 보조금만 통일해 버린 탓에 정작 건드려야 할 것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악평을 받고 있다.

소비자 원성, 영세업체 도산… "누구를 위한 법인가"

미래창조과학부는 단통법 시행 1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이벤트를 마련했다. 단통법이 시장에 적용된 후 휴대폰 구매와 통신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댓글을 남겨 주면 추첨을 통해 선물을 보내주겠다는 이벤트였다. 그러나 미래부의 기대와는 달리 댓글창엔 단통법에 대한 네티즌들의 질책만 가득했다. 댓글창에는'단통법 전에는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 많은 정보를 수집한 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었으나 단통법 후에는 어디를 가든 호갱이 됐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댓글에서 엿볼 수 있듯이 단통법에 대한 여론은 최악을 달리고 있다.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소비자와 판매자 중에서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조금을 일괄적으로 동일하게 맞춘 것은 좋았지만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통신비와 단말기값은 전혀 줄지 않았다. 단통법 전에는 더 많은 보조금을 주는 대리점을 찾아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휴대폰을 사는 게 가능했지만 현재는 모든 소비자들이 비싼 돈을 내고 휴대폰을 사는 상황에 부딪힌 것이다.

대형 이동통신사의 직영점이 늘면서 영세업체들이 경쟁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세 휴대폰 대리점의 도산 또한 문제로 떠올랐다. 대리점 관계자는 "소비자들 입장에선 대리점 골목상권이나 공식 대리점의 휴대폰 가격 차이가 없어지면서 이왕이면 더 큰 시설과 쾌적한 환경을 갖춘 공식 대리점으로 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단통법 시행으로 보조금이 통일되면서 예전에는 대리점들이 가격 경쟁을 하는 게 가능했지만 현재는 경쟁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폰파라치'또한 영세업체들의 발목을 잡는다. 최대 1000만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폰파라치 제도는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과정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이 공시지원금을 초과하는 돈을 지원하는 경우, 이를 신고하면 불법 지원금 액수에 따라 1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이를 이용해 일반 소비자로 위장한 뒤 휴대폰 가격을 물어보며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지 체크하고, 판매점이 보조금을 더 주겠다고 하면 신고하는 방식으로 포상금을 타내는 것이다. 지난 3월 정부가 폰파라치 보상금을 확대하겠다고 하자 전국이동통신유비통협회는 "폰파파라치 제도는 직업형 폰파파라치를 양산하여 결국 골탕을 먹는 것은 서민이며 악성 폰파파라치 등장을 부추겨, 불법 행위를 신고 하겠다고 협박하는 등의 상황이 전개될 것이 크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도하게 높게 측정된 포상금으로 폰파라치가 더 기승을 부리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저가 단말기도 결국엔 대형 이통사 배만 불려

이렇게 소비자와 영세업체들이 모두 불만을 토로하는데 과연 '단통법'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전문가들은 단통법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통신업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단통법의 덕으로 SK텔레콤과 KT는 실적 안정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SK텔레콤의 3분기 실적을 안정적이라 예측했다. 한국투자증권의 양종인 연구원은 "지난해 도입된 단통법이 안착하면서 단말기지원금과 리베이트가 규제되고 있어 가입자 유치비용이 줄고, 구조적으로 마케팅 비용이 감소해 수익이 호전될 것"이라 밝혔다. 또 SK텔레콤의 향후 실적에 대해선 "3분기 영업이익은 4분기만에 5000억원대를 회복, 하반기 영업이익은 상반기보다 25.1% 늘고, 내년은 전년대비 13.4%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KT 역시 마케팅 비용이 줄어 3분기 안정적인 실적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득을 보고 있긴 하지만 이통사들은 보조금을 늘릴 계획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달 22일 단통법 시행 1년을 맞이해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업계 관계자 및 소비자단체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롯데 하이마트 운영 담당자가 소비자들의 단말기 가격 체감 부담이 높다며 공시 지원금 상향 검토를 요청했으나 각 이통사 마케팅 담당 임원들은 어렵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통사들은 전반적으로 단통법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윤원영 SK 텔레콤 마케팅 부문장은 "경쟁력이 있고 저렴한 단말기를 도입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단통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구형 단말기가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SKT가 TG앤컴퍼니와 함께 출시한 44만9000원 '루나'와 LG 전자의 39만9000원 보급형 '클래스'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저가 단말기 또한 단말기 가격을 내리는 데는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루나와 클래스 모두 대형 이통통신사인 SKT와 LG전자가 출시한 것으로 여러 단말기 제조 업체가 뛰어들어 경쟁을 통해 가격을 낮추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저가 단말기도 대형 이동통신사들의 배를 불린다는 지적이다.

갈수록 단통법에 대한 원성이 커지자 국회에서는 단통법을 수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분리공시제 도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분리공시제란 고객에게 제공되는 단말기 지원금 중 삼성전자, LG전자 등 제조사가 지원하는 금액과 SKT, KT 등 유통사가 지원하는 금액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단통법 출발 시 포함될 예정이었으나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나 단통법으로 소비자들의 실질적 통신비 부담이 줄지 않으면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을 중심으로 단통법에 대한 개정 사안은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다. 우 의원은 "모든 사용자가 차별 없이 투명한 가격에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통법의 취지는 좋다. 그러나 현재 지적되고 있는 높은 통신비와 단말기 가격을 낮추기 위에선 수정되어야 할 사안이 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단말기 가격을 낮추기 위한 분리공시제 도입과 이동통신비 인하를 위한 기본료 폐지에 대한 법안을 내놓은 상태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측도 단통법의 미비한 점을 미래부와 꾸준히 의사소통하며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종천 이사는 "단통법과 관련해 미래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향후 미비한 부분 역시 차차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부 측도 일단은 단말기 보조금을 통일했다는 점에서 1차적인 수확을 거뒀다고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단통법 시행과 관련된 미래부의 정책 시행이 지나치게 '탁상행정'이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제 돌을 맞이한 단통법의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