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배송전쟁에 직원들 ‘희생’

오픈마켓 성장으로 온라인 쇼핑몰 경쟁 치열

이마트, 보정 물류 센터 통해 온라인 쇼핑 강화

롯데마트ㆍ홈플러스, 온라인 쇼핑 배송 속도 줄이는 중

마트 근로자들, 빠른 배송 위해 ‘눈코 뜰 새 없어’

미국 유통업체 월마트가 최근 경영난에 처해 있다. 온라인 거대 공룡 아마존의 배송 서비스에 밀렸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지난해 실적이 사상 최초로 감소하는 ‘굴욕’을 당했으며 올해 전 세계 296개 점포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월마트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온라인 배송을 강화하는 등 뒤늦은 대처에 들어갔다.

국내 유통 업계 역시 ‘배송 전쟁’에 몰두하고 있다. 국내에선 오픈마켓 쿠팡의 선전이 눈에 띈다. ‘쿠팡맨’과 ‘일일배송’으로 배송 질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대형마트들 역시 월마트가 IT 회사에 밀린 것처럼 오프라인 매장에 기대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을 이미 내렸다.

대형마트의 온라인몰은 오픈마켓, 홈쇼핑몰의 성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연스레 배송의 질을 높여야 함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빠른 배송’을 위해 희생당하는 마트 근로자들이 생기게 됐다.

스마트폰으로 오전에 장 보면 오후에 받아 보는 시대

유통가의 ‘핫 이슈’를 몰고 다닌 오픈마켓 쿠팡은 배송의 강화로 유통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쿠팡은 배송 기사들을 ‘쿠팡맨’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고용했다. 쿠팡이 배송 기사들을 직접 고용한 후 고객들 사이에선 배송 서비스의 전반적인 질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배송의 속도도 앞당겼다. 일일배송을 시작해 전반적인 속도를 높여 소비자들의 만족감을 채워주고 있다. 온라인 쇼핑의 약점으로 평가 받았던 쇼핑 속도가 빨라지면서 소비자들은 더욱 손쉽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유통 업계가 배송에 더욱 공을 들이게 된 것은 비단 쿠팡의 영향만은 아니다. 이미 유통업계는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온라인 시장의 성장으로 오프라인 매출액 침체라는 고민을 안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주력 시장이 옮겨가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 자체 온라인몰을 개편해 배송 서비스 강화에 나서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우선 온라인 구매 상품만 취급하는 물류 창고의 문을 열어 온라인 주문을 따로 관리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6월, 경기도 용인 보정에 온라인 전용 물류 센터를 열었으며 지난 2월에는 김포에 2호점을 열었다. 특히 이마트는 보정 물류 센터를 통해 온라인 주문을 효과적으로 관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보정물류센터는 자동 피킹, 콜드 체인, 고속 출하 슈트 등 최첨단 설비와 자체 개발한 ECMS(Emartmall Center Management System) 물류시스템을 갖췄다.

롯데마트 또한 김포에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준공했다. 롯데마트는 향후 온라인 전용 물류 센터를 계속 늘려 수도권 당일 배송 시대를 열어갈 계획이다. 홈플러스 역시 오토바이를 통해 주문 1시간 이내에 고객에게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 수도권에선 일일배송의 시대가 문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빨리진 배송만큼 바빠진 마트 직원들

그러나 ‘당일 배송’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소비자들이 편리를 추구하게 된 만큼, 마트 근로자들은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됐다.

몇 년 전 한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 부서에서 일했다는 근로자 A씨는 “당일 배송으로 고객에게 물건을 가져다 주기로 약속한 시간이 있는데 배송이 밀리거나 날씨가 궂을 땐 이 시간을 지키는 게 매우 어렵다. 그럴땐 고객의 항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물론 배송 시간은 고객과의 약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송 시간을 어겨 항의하는 고객들을 비난할 순 없다 마트 근로자들 또한 이러한 항의는 업무에서 생기는 고충으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처우는 개선돼야 한다. 빠른 배송 속도만큼 일의 노고가 커지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는 근로자들이 배송 시간을 잘 지킬 수 있게끔 근무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을까?

대형마트의 배송은 택배 업체에게 의뢰 되는 시스템이다. 쿠팡 또한 자사의 쿠팡맨이 모든 배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택배업체가 배송을 담당하기도 한다.

대형마트는 온라인 부서를 운영하며 온라인 주문을 전담 관리한다. 이 배송 관련 부서에는 ‘픽커’라는 직종이 있는데 픽커들은 고객의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매장에 가서 직접 물건들을 챙겨오는 직원들을 말한다. 또 픽커에게 받은 물건들을 배송 기사에게 주는 ‘팩커’들도 있다. 고객이 온라인을 통해 물건을 주문하면 픽커가 매장에 내려가 주문 상품을 챙긴 후 팩커에게 전달하며 다시 팩커가 배송 기사들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이 ‘픽커’와 ‘팩커’는 일일 배송 이후로 가장 바쁜 직원들이 됐다. 밀려드는 주문 물량에 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픽커와 팩커들은 무기계약직으로 고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대형마트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마트 직원들 중 계약직과 정규직의 비율은 약 7:3으로 계약직의 비율이 훨씬 높다. 특히 픽커와 팩커가 기피 직종이 된 것은 상품 진열과 계산 업무를 맡은 다른 계약직 직원들과 처우는 같지만 업무량은 훨씬 고되기 때문이다.

온라인 시장 진출 초기만 해도 픽커와 팩커의 비중이 적었지만 현재는 전체 근로자 중 15% 정도로 비율이 높아진 상태다. 향후 대형마트들은 온라인 배송을 강화하기 위해 픽커와 팩커 고용을 늘릴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과정에서 마트 노동자들의 처우가 얼마나 개선될 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트 노동조합은 이러한 직원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으려 하고 있다. 오는 11월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3개 노조가 합쳐진 ‘마트산업노조’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 현재는 준비위원회를 통해 통합에 필요한 세부 사항을 조율 중이다. 김영주 민주롯데마트 노조위원장은 “마트 노조가 통합되면 좀 더 효과적으로 마트 근로자들의 부당한 대우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