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 또 생겨… 실적 악화 불보듯

‘황금알’ 대신 쌓여 가는 적자

참가 유력했던 중견기업들, 발걸음 돌려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 늘어나는 면세점에 ‘여유만만’

여행사 통해 중국인 관광객 모셔오기, 부작용 우려

연말, 면세점 업계는 네 곳의 신규 업체 지정을 앞두고 있다. 신규 지정을 두고 면세점 업계관계자들의 걱정은 더 커지고 있다. 안 그래도 포화상태인 면세점 업계에 새로운 업체가 들어온다면 실적이 더 떨어질 것이라 전망되기 때문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비춰졌지만 지난 연말 신규 면세점이 곳곳에서 문을 열면서 실적이 예상보다 적자 면세점 업계에서는 당황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서울 중구를 중심으로 비슷한 위치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비슷비슷한 매장들이 입점한 면세점에서 관광객들이 차별화를 느끼지 못했다”라는 분석에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지적 때문인지 대기업들은 강북에서 강남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재 호텔신라, 현대백화점, 신세계 등은 서울 강남 지역으로 신규 면세점 입지를 준비해 두고 있다. 또 비슷비슷한 면세점들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차별화된 아이템을 발굴하는 것에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 면세점들의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대형 면세점과 여행사, 브랜드 사이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되는 형국이다.

악화되는 면세점 실적, 경쟁자 더 늘어나는데…

지난 5월 문을 연 서울 중구 신세계면세점은 4개월 동안 1212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지난해 연말 문을 연 한화그룹의 여의도갤러리아면세점63은 올해 9월까지 1934억원의 매출, 30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신세계, 두산그룹의 신규 면세점이 문을 열자 영업이익률이 17%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이 동대문에 문을 연 두타면세점은 3분기 실적을 밝히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두타면세점의 상반기 매출은 104억원, 영업손실은 106억원으로 알려졌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면세점들 또한 적자 위기를 걷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 면세점은 말할 것도 없다. 하나투어의 SM면세점은 올 3분기 누적 매출은 711억원, 영업손실은 20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영업이익률이 -29%인 수준이다.

지난 1970년부터 광화문 자리를 지켜온 시내 면세점의 ‘터줏대감’ 동화면세점 역시 지난해 매출 3226억원, 영업이익 15억5800만원으로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78% 급감했다. 거듭되는 시내 면세점의 신규 오픈으로 지방 면세점은 인천과 대구 등 광역시를 제외하고는 매출이 전무한 수준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운영 중인 대표적 중소 면세점은 SM면세점, 펜타스면세점, 시티플러스, 삼익면세점 등이 있다.

연말로 예정된 면세점 추가 지정 세 자리에서 한 곳은 중견기업의 몫으로 분류돼 있다. 당초 이 자리에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전망됐던 SM면세점은 기존 매장인 인천공항과 인사동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유력하게 후보로 거론됐던 형지 역시 면세점 업계의 저조한 실적을 지켜보며 도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유진기업 역시 지난 10월, 연말 면세점 입찰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호텔 레저 사업을 영위하는 파라다이스그룹 역시 추가 입찰에 도전하지 않는다.

유력 후보자들이 난색을 표하면서 현재 중소ㆍ중견 면세점 입찰에 뛰어든 업체는 엔타스, 탑시티, 정남쇼핑, 신홍선건설 컨소시엄, 하이브랜드의 다섯 곳으로 알려졌다.

중국 단체 관광객, 유치할수록 손해?

면세점들을 울리는 것은 저조한 실적뿐이 아니다. 면세점 수가 많아지면서 여행사와 명품 브랜드의 콧대가 높아지는 것 또한 큰 문제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9월, 중국 여행사 17곳과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현대백화점이 면세점 특허 신청에 성공한다면 유커 200만명의 한국 방문을 유치한다는 내용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면세점 업계가 중국 관광객들의 유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시내면세점들이 중국 여행사에 지불한 송객수수료는 4790억원으로 알려졌다. 지난 한해 전체 송객 수수료인 5729억원의 80%를 이미 넘어선 금액이다. 면세점들이 송객 수수료를 과다 지급하면서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선 ‘한국 여행은 지상비(비행기값)만 지불하면 추가 비용 없이 저렴하게 올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일부 면세점들은 중국인 단체 여행을 주선하는 여행사에게 과다 수수료를 지급해 손님을 끌어 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사태가 지속되면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끌어와도 이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서울 시내 대기업 면세점들이야 비즈니스 관광객이나 개인 관광객 등 다양한 수요가 있지만 중소 면세점은 상황이 어렵다”고 밝혔다.

면세점 증가로 인해 웃는 것은 여행사뿐이 아니다. 명품 브랜드도 있다.

지난해 대기업들의 신규 면세점들이 속속들이 문을 열면서 면세점들 사이에선 이른바 ‘3대 명품’이라 불리는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을 입점시키는 데 경쟁이 붙었다. 루이뷔통 입점에 제일 먼저 성공한 HDC신라면세점은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2287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16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7%대에서 -5%대로 높아지는 추세다.

HDC신라면세점 측은 다음 분기에는 흑자전환을 자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HDC신라면세점의 실적 호조를 명품 브랜드 입점만으로 연결 지을 순 없으나 ‘최초 입점’이 갖는 효과도 무시할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명품 브랜드들의 콧대가 높아져 고가의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다. 면세점 업체 두 곳이 명품 브랜드와 손해 보는 계약을 맺었다는 ‘설’도 돌고 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 유치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현재 제도처럼 급속히 문을 여는 것은 정책적으로도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1년간 협상을 통해 수수료를 정해야 하는데 현재처럼 경쟁자는 많고 6개월 안에 문을 여는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계약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규 면세점 입찰 공고로 걱정은 더해가고 있다. 업계는 매출 분산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관세청이 면세점 입찰을 추진하면서 중소 중견기업을 껴 넣는 것은 보여주기식 생색에 불과하다. 중소면세점을 살릴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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