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7년째 이어지는 한진 제주생수 증산 논란, 왜?

제주 지하수 둘러싸고 한진ㆍ시민단체 ‘물분쟁’ 격화… 결론 미지수

한국공항 “93년 허가받은 200톤으로 환원 원할 뿐”

시민단체 “지하수는 공공자원…사기업에 혜택줄 수 없어”

제주경실련 “원희룡 지사 증산 계획 없다더니 말 바꿔”

청정환경을 자랑하는 제주도가 지하수 때문에 시끄럽다. 한진그룹 계열사 한국공항이 요청한 지하수 증산을 놓고 한국공항과 시민단체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공항은 지난 4월 “항공 승객 증가에 따라 먹는샘물이 부족해 서비스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제주도를 상대로 1일 지하수 취수량을 100톤에서 150톤으로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지난 7월 21일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는 취수량을 150톤에서 130톤으로 수정하는 부대조건을 첨부해 통과시켰고, 25일 본회의에서 ‘한국공항㈜ 지하수 개발·이용 변경허가 동의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여론이 커졌고 결국 해당 안건은 본회의 상정이 보류돼 다음 회기로 넘어갔다.

한국공항의 지하수 증산 시도는 이번이 다섯 번째다. 첫 번째 시도는 2011년이었다. 당시 한국공항은 지하수 취수 허가량을 1일 100톤에서 300톤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해 제주도 지하수관리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도의회 상임위에서 동의안을 부결했다. 같은 해 11월 한국공항은 취수 허가량을 1일 200톤으로 늘려달라고 두번째 요청을 했지만, 이번에는 지하수관리위원회 심의에서 무산됐다.

3번째 증산 요청은 2012년에 이뤄졌다. 당시 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는 두 차례 동의안 심사를 보류하다가 이듬해 지역사회 공헌 등의 부대조건을 달고 1일 120톤으로 증량하는 것으로 동의안을 수정 가결했다. 그러나 박희수 당시 제주도의회 의장이 직권으로 동의안 상정을 보류했고, 9대 도의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동의안이 상정되지 않아 결국 자동 폐기됐다.

작년에는 1일 200톤으로 4번째 증량 신청을 했으나 지하수관리위원회에서 부결됐고, 올해 다시 1일 150톤으로 증량 신청을 했지만 도의회 본회의 상정에도 실패했다.

이처럼 한국공항의 증산 시도가 번번이 무산됐던 것은 지하수 증산 허용이 사기업에 의한 지하수 사유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지역사회 각계의 우려 때문이다.

제주도는 지하수 공수(公水)화 정책에 따라 지하수를 공공자원으로 규정하고, 먹는샘물로 판매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제주는 육지와 달리 강이 없어 먹는 물, 생활용수를 모두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로 인해 제주에서 먹는 샘물은 지방공기업인 제주도개발공사(삼다수)에 의해서만 개발해 공급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공수화 정책이 수립되기 전인 1993년 취수를 허가받은 한국공항은 지금까지 제주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다.

한국공항 “93년 허가받은 200톤으로 환원 원할 뿐”

한진그룹 계열사 한국공항이 제주 지하수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4년부터다. 한국공항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제주 칼(KAL)호텔을 건설할 당시 상수도가 없어 지하수를 끌어올려 호텔에 공급했다. 그런데 이 물이 수질을 비롯해 미네랄 함유가 높아 반응이 좋았고 생수사업을 시작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후 칼 호텔에서 생산된 생수는 대한항공 기내에도 공급됐다. 당시 대한항공은 해외에서 생수를 구입해 기내에 제공했으나 수질이 좋고 생산원가도 싼 제주 지하수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물량이 늘어나자 장소를 옮겨 1991년 공장을 만들었고 제주도는 1993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 따라 한국공항에 1일 200톤(월 6075톤)의 지하수 취수를 허가했다. 이후 실제 사용량을 근거로 1996년 1일 100톤으로 감량해 현재까지 취수량을 이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공항 측은 항공 수요 증가 등으로 먹는샘물 물량이 부족하다며 2011년부터 5차례에 걸쳐 증산 요구를 해왔다. 기자와 통화한 임종도 한국공항 상무는 “1996년 이후 생수시장이 커졌고, 항공 물동량도 늘어나면서 2010년을 전후해 생산량이 한계에 다다랐다. 허가된 하루 100톤의 95~96%에 육박하는 수치”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거에 허가 받았던 200톤으로 다시 되돌려달라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한국공항은 법원 판결을 근거로 ‘200톤 환원’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공항 측은 “1995년 공기업만 먹는샘물 사업을 하도록 한 이후 한국공항의 먹는샘물 판매가 공적 관리에 위배된다고 반대 단체는 주장하고 있지만 1996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법원은 한국공항의 먹는샘물 판매가 지하수 관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면서 “한국공항의 먹는샘물 사업을 공수화 위배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공항 측은 또 “1995년 제주도특별법 개정 전부터 인정된 허가량을 제한하는 것은 소급입법금지 원칙에 위배되며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합리적 근거 없이 최소한의 증량조차 불허하는 초법적 판단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국공항은 생수사업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임 상무는 “생수 판매를 통한 매출의 96%가 대한항공을 포함한 한진그룹사다. 직원 복리후생, 호텔·식당 등 고객 응대 등의 용도로 쓰인다. 한진그룹에 생수를 납품한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항공 제주퓨어워터의 연 매출액은 160~17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증산을 통해 생수 시장에 진출하려 한다는 주장에는 “그럴 일 없다. 생수를 일반인에게 판매하게 된 것도 수익 목적이 아니라 제주퓨어워터를 접했던 승객과 고객들이 판매를 요청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2008년부터 시작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한국공항은 주 소비층이 일정해 판매량 변동이 크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시민단체들은 제주퓨어워터의 가격이 지방공기업인 제주개발공사가 생산하는 제주삼다수보다 약 65%이상 비싼 가격에 시판되고 있어 제주삼다수가 저가품으로 전락, 브랜드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서는 “생수 공장이 200톤 생산규모로 설계됐는데 실제 가동률은 40% 수준이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가가 상승하게 된다. 그룹사에도 똑 같은 가격으로 납품한다. 일반 생수 가격으로 판매해서는 공장 운영이 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한국공항은 그러면서 "한진그룹은 제주도와의 상생을 위한 노력으로 제주도 교육기관과 지역발전을 위한 지원기금 조성, 성금기탁 등을 토대로 현재까지 100억 원 가량을 지원해 왔다"며 "앞으로도 제주도와 상생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증산요청이 승인되기를 에둘러 내비쳤다.

시민단체 “지하수는 공공자원…사기업에 혜택줄 수 없어”

한국공항의 주장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제주지역 19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도민의 공공자원이자 생명수인 지하수 증산 문제는 제주의 공적 자원을 사적 이익으로 내줄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라며 “찬성표를 던진 도의원에 대해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낙선운동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연대회의가 증산에 반대하는 이유는 지하수를 공공자원으로 규정하고, 먹는샘물로 판매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는 지하수 공수화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안이라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회의 측은 “이 같은 원칙이 무너지면 제주에 대규모 토지와 사업장을 가진 대기업들이 지하수를 사유화하며 이윤을 극대화시킬 것이고 제주도민의 생명수인 지하수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 주장한다. 문상민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도의회의 결정을 지적하기도 했다. 문 대표는 “이번 지하수 증산안의 핵심은 이용객 증가에 따라 기내에 필요한 만큼의 양을 늘려달라는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항공은 먹는 물을 그룹사와 인터넷용으로 나눠 판매하는데 인터넷 판매량을 줄이지 않고, 항공수요에 맞게 증산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만약 환도위에서 이 사안을 충분히 협의했다면, 인터넷 판매를 기내 수급용으로 돌리는 방안도 거론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양시경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익지원센터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양 센터장은 본지 통화에서 “한국공항은 국내취항 외국항공사 20여 곳에 기내공급용으로 막대한 양을 판매하고 있다. 팔기 위한 목적이라고 솔직하게 밝혀야 하는데 자사 기내공급량이 부족해서 지하수를 증산하겠다고 진실을 감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이 아니라면 자료를 공개해야 하는데 말로만 아니라고 피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 센터장은 대기업의 지하수 사유화도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연말 신세계 이마트가 ‘제주소주’를 인수하면서 하루 150톤 지하수 취수 허가권도 받았다. 만약 한국공항 취수량을 늘릴 경우 나중에 이마트가 똑같이 취수량을 늘리겠다고 한다면 어떤 명분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양 센터장은 원희룡 제주지사의 애매한 태도도 비판했다. 그는 “지하수 증산은 도지사 직권 사안이다. 증산안이 제주지하수위원회 의결을 거쳐 도의회로 넘어갔다는 것은 원 지사의 의중이 많이 반영됐다는 의미”라며 “원 지사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한국공항 지하수 증산 불허 공약을 내세웠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원 후보는 처음에는 “지하수 정책에 대한 재검토와 물자원에 대한 조사 등 종합적인 검토를 한 후에 증산을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한국공항 지하수 증산에 대해 찬성하는 것처럼 비췄으나 그것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면 반대다. 지하수는 공공자산으로 한국공항의 경우 특별법 이전에 허가를 받아 인정하는 것이지 추가 개발권은 가질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공항 지하수 증산 논란이 7년간 이어지는 상황을 놓고 양 센터장은 “한진그룹의 제주도에서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주 내 한진그룹 직원은 1600여 명에 달한다. 제주사회에 가장 영향력이 센 집단”이라며 “한진그룹은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혈연 지연 학연 이권 일자리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활용한다.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양 센터장은 “안건 재상정을 위해 한진 측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다. 이에 굴하지 않고 제주도민의 생명수를 지키는 일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통화 말미에 양 센터장은 “얼마 전 제주시 노형동 중심가에서 30년 이상 운영되어온 대형 사우나업체가 영업을 중단했다. 그간 별 문제없이 사용해온 지하수가 최근 흙탕물로 변해 영업이 불가능해졌다. 해안변 용천수가 말라버린 곳도 허다하다. 제주 지하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라며 “한국공항 지하수 증산 불허와 함께 도청이 지하수 관리에 중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할 때”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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